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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동호 |
날짜 : 11-06-24 11:03
조회 :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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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의 소리
정동호
경상도 최남단 거제도 몽돌해수욕장. 여름 내내 뜨겁게 달군 조약돌의 열기도 사그라지고 수많은 반라의 인파도 모두 떠난 초겨울의 쓸쓸한 해변을 거닌다.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해변. 조약돌을 밟으며 자글자글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긴긴 세월, 모진 연단을 통해 구슬처럼 곱게 다듬어진 알짜배기 검은 돌멩이들. 입맞춤 하고 싶도록 예쁜 그들과의 교감은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전이된다.
저 멀리 수평선에 그리움을 띄운다. 끝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마음은 바다가 된다. 오욕과 번뇌가 푸른 바다 품으로 사그라진 자리에 갈매기가 전설되어 끼어들고, 잔잔한 물결이 은빛 건반을 타고 사푼사푼 뭍으로 걸어온다. 더 갈 곳 없는 물결이 해변을 때리고 물러가고를 쉼 없이 반복한다.
‘쏴 - 철석!’ ‘쏴 - 철석!’
하얀 물거품을 토할 때마다 몽돌 구부러지는 소리가 파도와 화음을 이룬다. 백만 화소로도 담을 수 없는 아름답고 기이한 소리다. 자연의 소리, 한국인의 숨소리다. 이 바다가 생기면서부터 시작된 가락이리라.
‘쿠르르르르 쿨, 도글도글도글 자글자글자글 두루루루루 루‘
엄마의 치마폭에 쌓여왔던 것들이 넘어지고 구부러지면서 치마끈을 놓지 않으려 울부짖는 애잔한 소리다. 말라비틀어진 빈 젖꼭지를 물고 배고파 울어대는 어린아이의 몸부림이다.
반상과 빈부, 적서의 차별에 가슴치고 남녀차별에 설움 받던 조선여인들의 한(恨)맺힌 가락이다. 광대와 고수와 추임새가 어울려 판소리를 만들 듯, 파도와 조약돌이 하모니를 이루어 삶의 애환과 응어리를 노래하고 있다.
몽돌이 구부러지는 소리는 민요가락처럼 정한(情恨)도 넘쳐흐른다. 작자도 없고 전수자가 없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선조들의 삶의 편린이다. 악기와 반주가 없어도 목청을 떨면서 부르던 민중의 노래다. 모내기와 김매기 보리타작 같은 중노동은 고달픔과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농요를 만들어 불렀다. 아녀자들은 베틀노래며 길쌈노래 시집살이노래로 시름을 달랬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여가요가 생겼고 교훈하는 노래도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지혜로운 민족이요 흥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음에 틀림없다.
몽돌들이 서로 보듬고 구부러지면서 어깨를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듯, 우리 조상들은 두레를 만들어 서로 도우고 품앗이도 하면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왔다. 그래서 한국인의 소리에는 끈끈한 정(情)도 흐른다.
우리민족을 매운 고추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몽돌에 비유하고 싶다. 작은 체구라도 당차고 야무진 사람, 때려도 아플 곳 없는 사람, 자빠져도 오뚝이처럼 홀로 설 수 있는 사람, 만질만질하면서도 밉상스럽지 않은 사람을 흔히 ‘냇가 돌 같다’고 한다. 그런데 그 냇가 돌보다 더 몽글고 더 알찬 돌이 몽돌 아닌가.
몽돌이 어찌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가. 숱한 세월 파도에 휩쓸려 구부러지고 떠밀리며 닳을 대로 닳아야한다. 모나고 거친 것은 갈고 닦고 작은 생채기의 흔적까지도 다듬어야한다. 짠물에 간을 하고 또 하고, 씻고 또 씻어야 한다. 끝없는 인내와 연단 끝에 만들어진 몽돌은 분명 우리민족의 표상이다.
우리는 건국 이후 일천 번도 더 넘는 숱한 외침을 받아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침탈과 민족상잔의 통한할 잿더미 속에서도 뿌리를 살려내 꽃을 피운 민족이다. 파도에 부딪기고 해일에 곤두박질 당할수록 몽글몽글 다듬었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더욱 끈을 조여 왔기에 이제는 당당히 세계 10대강대국 대열에 들어 선 것이다. 바로 몽돌근성 때문이리라.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휩쓸 때에 거제도 몽돌해수욕장은 그 중심에 있었다. 큰 산모롱이가 사태(沙汰)로 무너지고 인근 마을들이 해일에 덮쳐 날아가는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몽돌해수욕장은 그대로 버티었다.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태풍이 어찌 매미뿐이겠는가.
거제도 몽돌해수욕장에 가면 한민족의 소리를 듣는다.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중 다섯 번째 소리다.
동아세아 대륙 남단 길쭉한 반도의 나라, 대륙에 눌리고 섬나라에 할퀴고 서양에 찢기면서도 몽돌처럼 반질반질 다라진 나라 대한민국!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두루루루루 루‘ 몽돌의 노래 한 아름 귓전에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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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1-06-28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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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작품을 감상하고나니 어떤 의문이 다시 연기처럼 피어오릅니다.
바위와 돌의 경계는 무엇일까 하는 예의 그 어리석은 의문입니다.
바위>바윗돌>돌덩이>돌>자갈>모래
이런 부등호로는 구분할 수 없는 우리말의 깊이가 따로 있는 듯합니다.
저는 고집을 부려보았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돌'이라는.
집집이 돌절구통을 쓰던 시절에는 몽돌이 필수품이었습니다.
신새벽이면 어머니가 절구통에서 몽돌로 보리쌀을 갈던 광경이 어제런듯 선합니다.
그 몽돌들이 다 고향찾아 바닷가로 갔는가봅니다.
몽돌은 온전하여 제잘난 멋에 살아가기에 도무지 함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데
저토록 무리를 짓고 하나 되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있으니 자연의 섭리를 알듯 모를듯
제 머리도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며 몽돌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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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1-06-28 2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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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감사합니다. 거제도 몽돌 해수욕장의 추억울 다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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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07-03 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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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보니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백령도에는 색색의 바둑돌 같은 몽돌, 캐나다에서 뒹굴어 주워온 무늬석의 몽돌 등이 생각납니다. 최남선의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파도 소리도 들려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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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7-04 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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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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