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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11-06-17 16:25
조회 : 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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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의 꿈
이진화
저녁 산책길,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뒷동산 오솔길에는 개망초도 드문드문 피어 있다. 유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말간 얼굴을 드러내놓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에다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고 셔터를 눌렀다. 마치 메추리 알 노른자에 하얀 꽃잎을 붙인 듯한 풀꽃은 여름날의 더위나 햇볕에도 끄떡없이 생글생글 웃음 짓는다.
종종 ‘좋아하는 꽃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해바라기’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개망초를 들어다보니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연상된다. 유난히 작고 여리지만 야생화처럼 당찬 면이 있었다. 한낮에는 까마종이 열매를 따먹으며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고, 밤중에는 달을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당에 아이들을 모아 각본과 연출을 도맡아 하며 놀이삼아 연극공연을 펼쳤다. 무엇이 될 지 알 수 없는 개망초 소녀의 눈에는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었고, 세상은 재미로 가득하고 무엇이든 가능한 곳이었다.
개망초를 잊고 해바라기만 바라보게 된 것은 초등학교 입학을 할 무렵부터가 아니었을까. 바라는 것은 모두 손이 닿을 만하면 멀어지고 그 시대 중산층이 겪는 궁핍함은 끈질기게 발꿈치를 따라붙었다. 낡은 운동화를 신고, 참고서를 빌려보며 다니는 학교는 별로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얌전했지만 매양 운동장 한 쪽에서 담장을 훌쩍 넘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큰 키와 튼튼한 줄기와 풍성한 씨앗에 매혹 당했다. 내게 있어서 높은 담장을 뛰어넘는 길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뿐이었다. 백일장 나들이는 대부분 즐거운 상으로 돌아왔고 은빛 트로피는 반짝이며 줄을 이었다.
해바라기와 키를 재며 꿈을 키우던 개망초는 초여름에 접어들면서 찔레꽃밭을 만난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 옆에 무심히 피어나는 찔레꽃은 향기도 아련하고 모양도 애잔하다.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기 전, 슬그머니 향기를 지우며 꽃잎을 떨구는 찔레꽃 옆으로 덩굴장미가 미색을 뽐내며 담장을 오르기 시작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는 화려한 자태의 작약이 피어난다.
나는 때때로 해바라기, 찔레꽃, 더러는 덩굴장미나 작약의 역할을 하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은 햇빛이건, 물이건, 거름이건 스스로 취하고 살며 어떤 가뭄이나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개망초이다. 두해살이풀인 개망초의 어린 잎은 식용이 되고, 한방에서는 학질과 각종 감염성 질환을 잡는 특효약으로 쓰인다. 특이하게도 개망초에게는 두 번의 생애가 있다. 늘 시행착오로 점철되는 삶 속에서 다시 한 번 주어지는 생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 애틋할까. 두 번째 생애가 있다면 첫 생애 때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자기만의 색깔과 모양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몰두할 것이다.
무슨 식물이건 자신의 꽃을 피우고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소나무가 장미가 될 수 없고 국화가 튤립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단체로 피어나기를 강요당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닦달을 해봐도 늦여름에서야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남보다 느지막하게 꽃을 피우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쉬엄쉬엄 꽃잎을 떨어뜨린다. 한창 열매를 키우는 모과나무 맞은편에 있는 매끈한 몸매의 배롱나무는 아직까지도 꽃소식이 감감하다. 하지만 모든 꽃이 지고 난 쓸쓸한 뜨락에 꽃불을 당길 배롱나무 꽃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우리집 배롱나무가 꽃필 무렵에는 개심사 세심교 옆에 피어있는 배롱나무 고목에도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 시간이 자신들의 차례라는 것을 아는 것일까.
지금은 개망초의 계절, 문태준 시인은 노래한다.‘개망초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일견 슬퍼 보이지만 꽃별의 꿈은 넓디넓은 우주 속에서 변함없이 빛난다. 여름에 태어난 나는 찬란한 두 번째 생을 꿈꾸는 개망초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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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1-06-17 1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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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제일 싫어 한다는 개망초
아무데나 막피어나서 농부들이 그꽃을 태워버리기까지
했다는데 이진화 선생님때문에 비로소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했습니다
전에는 이른 봄부터 일찍 피었대요. 어떨때는 모심기;전 부터 논두렁에
개망초가 피어 반겼는데도 농부들이 그 꽃만은 별로 예뻐하지를
않았나 봐요. 더 자연을 사랑하는 농부들이었을텐데 왜 그리도 개망초를 싫어했는지
요즘들어 어떻게 된일인지 여름에 활짝
피어난다는데 이것도 기후탓인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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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6-19 2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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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를 닮은 개망초가 농부들에게는 밉상이군요. ㅎㅎ...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랄 데 없이 예쁘던걸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이지만 식물들은 그저 제 모습 그대로 살 뿐이겠지요.
정진철 선생님, 더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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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6-17 2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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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개망초 소녀의 꿈, 문득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소년이 생각납니다. 소년은 커가면서 자꾸만 달라지는 세상을 보고, 세상 구경을 마친 소년이 돌아왔을 때, 늙은 나무는 다시 소년에게 앉을 자리를 내어줍니다. 나무도 소년도 다시 행복해집니다. 한 생이 두번 시작되는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여름에 태어나신 선생님, 나무처럼 소년처럼, 아니 망초처럼 두번째 피우는 아름다운 꽃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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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6-19 2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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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문 선생님, 글은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읽는 사람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는 말이 생각 납니다. 선생님께서 성의껏 읽으시고 다시 잘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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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06-18 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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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저희도 가평으로 이사 와서 어디서든 터를 잡고 생명을 풀어내는 끈질긴 잡초, 개망초를 먹는다는데 놀랐고, 무쳐먹으니 그 맛에 놀랐으며, 큰 키에 작고 앙증스러운 꽃이 예뻐 놀랐습니다. 그런데 약으로 쓰인다니, 예사로 볼 들 풀이 아니군요. 워낙 감성이 풍부하시니 흔하디 흔한 잡초로 부터도, 끌어 내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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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6-19 2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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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가평에 계시는군요. 저도 장차 가평 북면에 작은 둥지를 틀어볼까 생각 중입니다만... 벌써 개망초 맛을 보셨네요. 유유자적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행복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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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06-18 1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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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라다 보니 주위 분들도 나와 같은 분이라. 꽃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화투에 있는 꽃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합니다. 일산에 수로가 있어 낚시를 다니다 보면 길가에 그 꽃이 수없이 피었는데 농부 몇에게 물어도 그 꽃의 이름을 모르던군요.
그런데 그 이름이 흉칙해요. "개"란 '야생의', '참것이 아닌', '변변치 못한' 등의 사전적 의미보다 더 거시기한 뉴앙스가 있는 천한 말인데. '망초'라는 두 해 살이 꽃에 '개'자 붙은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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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6-19 2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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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전적 의미를 말씀에 주셔서 '개'라는 접두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개나리, 개살구, 개떡 앞에도 붙는군요. 아름답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개망초 만나거들랑 이름이 흉칙하다 마시고 그냥 저 혼자 피는 야생화로구나 하고 예뻐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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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1-06-18 2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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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그렇게 두 번 활짝 피어난다고 믿습니다.
배롱나무(목백일홍) 수십 그루가 자리잡은 길가 화단에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개망초는 농부에겐 성가신 존재입니다. 번식력이 좋아 한눈을 팔면 온 밭을 점령해버리기도 하는데
소도 먹지 않으니 그야말로 잡초죠.
우리 고장에서는 '풍년대'라고 부릅니다. 여기저기 유난히 개망초가 눈에 띄는 걸 보니
올해는 대풍이 들려나봅니다.
선생님께서도 활력풍년, 작품풍년, 보람풍년 맞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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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6-19 2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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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활력풍년, 작품풍년, 보람풍년의 덕담 감사합니다.
개망초에게 풍년대라는 긍정적인 이름도 있었군요.
올해 선생님께서도 대풍의 기쁨 누리시길 바랍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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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6-19 1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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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라고 하기엔 어딘가 초라한 개망초꽃! 그러나 그 개망초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면
여름의 코스모스처럼 느껴집니다. 한 여름의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가녀린 대를 세워놓고 이리흔들 저리흔들, 마치 그 모습을 보면 '저 좀 보세요' 라고 손짓하는 것 같은 게......비록 이름은 천할지라도 어디서든 자랑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는 개망초의 당당함을 보면 똑똑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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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6-19 2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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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에 이어서 피는 구절초도 들국화의 일종인데 훨씬 우아하고 아름다워보이지요. 모두 같은 국화과의 꽃들인데 사람이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저는 야생화만 보면 접사로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어요. 가만히 관찰해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하나도 없더군요. 대나무 같이 꼿꼿하고 푸르른 박원명화 선생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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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06-27 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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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의 글이 단연 화재가 되고 있군요.
글이란 독자가 공감을 하고 감동과 무엇인가 얻어지는
내용이라면 더욱 시선을 끌게 되는가 봅니다.
개망초꽃은 저희집에선 화초예요.
특별히 꽃밭도 가꾸지 않고 야생초꽃을 즐기고 있지요.
한동안 애개똥풀이 현관으로 들어오려고 목을 빼도
그냥 두고 즐겼으니까요.
개망초꽃을 보고 초등학생인 우리 손녀가
서양에서는 계란꽃이라고 한다며
'에그 플라워!' 라고 불러 한바탕 웃었어요.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이끌어낸 글 솜씨가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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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7-04 1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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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플라워', 이름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하도 작아서 메추리알 꽃이라 불러보았습니다.
늘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최복희 선생님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수필의 날' 뵙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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