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며느리가 손녀를 낳아 벌써 22개월이나 됬습니다.지난 봄부터 학교에 복학한다고 고집을 부려 현재 대학 3학년인데. 장모 되는 분은 신앙생활에 심취하여 외손녀를 봐줄 형편이 안되고 , 시어머니도 힘이 들어 봐주지 못한다고 하여 우리집은 아침부터 전쟁터 같습니다.

아들놈이 변변치 못해 아직 독립을 못하고 부모 그늘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바람에 놀이방이라는 곳에 데려다 놓는데,

그놀이방에서도 우리 손녀가 제일 어리다는군요, 며느리가 아침준비도 해야 되고 저 학교에 늦을까봐 허둥대는걸 보면 아주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슬쩍 빠져나오는게 상책이라고 판단하여 아침 일찍 동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9시쯤 들어오면 집에는 벌써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식탁에 내가 먹을 밥상을 준비해놓기야 하지요. 어떨때는 혼자라 홀가분하게 김치하나라도 자근자근 씹어 가며 맛을 음미하다가도 홀아비도 아닌데 이게 무슨 꼴이야하는 생각이 들면 돌씹는 기분도 들고 거참 기분이 묘하대요.

며칠전. 지난 금요일이던가. 아침에 보니까 며느리는 일찍 학교에 가버리고 아들이 출근하면서 손녀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려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인 모양인데 식탁이 좀 어지럽더라구요. 그래도 내가 이해를 해야지 하면서, 왜냐하면 어린 며느리는 학교에서 돌아 오면 부지런히 빨래도 하고 이 큰집을 혼자서 청소도 해야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제 공부도 해야하는데 시어머니가 별로 예쁘게 보지 않는 눈치라,나라도 좀 생각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거던요, 그렇지만 내놓고 그런 마음을 보이면 또 시어머니가 뭐라고 할것만 같아서 조용 조용 살고 있습니다.

마침 시간도 있고 해서 밥을 다먹고 반찬그릇이라도 냉장고에 넣고 나가려고 하는데 설거지통을 보니까 이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아주 뒤죽 박죽 요란하게 쌓였더라구요. 시어머니한테 또 한소리 듣겠구먼 하다가, 갑자기 내마음에 동그라미가 퍼지는 거에요.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퐁퐁도 있고 해서 손을 걷어 부치고 밥그릇이며 솟단지며 찌개 그릇이며 숟가락 젓가락 물컵까지 깨끗하게 닦아놓고 찬장을 열고 제자리에다 놀것은 놓고 그러고 밖에 나갔다 왔지요.

그사이학교에 갔던 며느리가 놀이 방에서 손녀를 데리고 들어오고 부엌에서는 시어머니가 흐린날 구름낀 얼굴로 아침에 내가 닦아놓은 그릇들을 전부 꺼내놓고 다시 닦고 계시더라구요. 며느리는 어머니 제가 할께요. 이때 시엄니께서는 놔둬라 너는 그릇 닦을때 기름끼도 하나 못닦냐 하는데 며느리는 안절 부절하고 나는 또 그거 내가 닦았수 할수도 없고 참 난감하더라구요. 그게 물로 잘닦은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 갖다 놓아야 하는데 물이 뚝뚝 떨어지는채로 집어 넣다 보니까

깨끗하지가 않는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제권은 아직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놈들이 대하는 태도를 보더라도 어머니가 아버지 보다 상위 시대라 이젠 젊은날의 객기는 슬며시 죽어가고  누구 말마따나 집안에서 잔소리 많이하면 내쫒긴다는 말, 좀 더 나이 들면 부인께서 무슨 옷을 입고 어디를 가던지 물어보거나 특히 째려 보다가는 그냥 그날로 노숙자로 내몰린다는 말.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 80이 넘어가면 아침에 내맘대로 눈뜨다가 왜 눈떳느냐고 하니까 부인이 계신지 아닌지 눈치를 살핀다음 없을때 빨리 눈을 뜨고 일어나서 잔 이부자리 빨리 개고 냄새안나도록 이빨닦고 얌전히 차려주는 밥상 기다리는 신세가 요즘 남자의 모습이라는데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요 나라고 별수 있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