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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11-05-17 14:04
조회 :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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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히 바라보며 귀 기울이면
이 진 화
우연히 알게 된 유리공예가가 있다. 수 년 전 내 생일에 친구들이 그 작가의 작품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후로 이삼 년마다 한 번씩 생각치도 못한 때와 장소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 때마다 그녀는 며칠 전에 만난 듯이 지나온 일들을 소상하게 이야기 해주었고,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못 만나는 동안 전시회에서 한 외국인을 소개받고 한 눈에 마음이 통하여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알프스 가까운 이탈리아의 북부의 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호숫가에 있는 아름다운 집에는 객실도 마련되어 있으니 꼭 와서 묵으라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자기는 일 년 중에 두 달 정도만 한국에 머무는데 그 때마다 우연히 나를 만나는 것이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녀에게 궁금한 것은 남편과의 만남과 소통에 관한 것이었다. 중년을 넘긴 나이에 전혀 언어가 다른 동서양의 남녀가 만나 전격적으로 결혼을 하다니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정말 처음엔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바라보았지요. 그랬더니 그 마음을 다 알 수 있더라고요. 말이 안 통하니까 더 몰두하고 깊이 알게 되는 거지요.”
사람들의 의사소통 중에 언어적인 것은 7%에 불과하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 그밖에 억양이나 음조, 몸짓과 표정이 나머지 소통의 요소라는 것도 증명되는 셈이다. 집에서도 가끔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되는데 13년이나 키워온 반려견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는 바가 많다. 시츄 종인 코코는 늘 조용하다. 성대 수술을 한 것도 아닌데 생전 짖는 법이 없다. 그런데 묘한 것은 우리 가족들이 코코의 속마음을 저절로 알아버린다는 것이다. 배가 고픈 건지, 우울한 지, 어디가 아픈지, 그 눈빛과 표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코코는 소리 한 마디 안 내고 자신의 기분과 형편을 전달하는 특이한 녀석이다. 유심히 관찰을 해보니 코코는 언제나 가족들에게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고, 가족들도 코코에게 집중을 하여 그의 판토마임에 '아하, 그랬구나. 밥 잘 먹었네.'하고 말로써 맞장구를 쳐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가 하면 분명히 같은 언어를 쓰고 단어의 뜻을 모두 알아듣는데도 전혀 다른 내용으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같은 일에 대해 전화를 하고, 직접 만나고, 이메일까지 주고 받았는데도 사실을 왜곡하고 오해를 한다. 그런 이들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 본인의 가치와 신념만을 강조하는데 , 그와 비슷한 유형의 리더나 가장이나 상사를 만나는 경우에는 집단 전체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심전심으로 통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열정이 식고 관심도 줄어든다. 그래서 오랜 연애기간을 거쳐 부부가 된 사람들끼리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고민을 한다. 오죽하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존재라고 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며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여야 그나마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 글로든 말로든 몸짓으로든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깊디깊은 사람의 속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남편이 병이 나서 사흘 동안 응급실에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모든 일상을 접고 포기한 채 그의 곁을 지켜야 했다. 응급실에서 보내는 시간에는 오직 사람과 생명에 몰두하면서 평소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마치 조난을 당한듯이 최소한의 것으로 견뎌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단 몇 마디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수십 명의 환자들이 신음하는 응급실의 극한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은 강한 염원과 집중력 때문이다. 비록 중환자라 할지라도 간병하는 가족이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주면 안도의 빛이 감돈다. 바로 옆자리에서 밤새 고함을 치던 치매 환자가 남편의 부드러운 달램에 몸을 웅크리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짐짓 모른 척 하면서도 영감님의 말과 손길을 듣고 느꼈나 보다.
사람의 귀는 최후까지 열려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잘 듣는 것을 ‘거룩한 경청’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내가 지치고 힘들거나 격려가 필요할 때 누가 내 이야기를 귀와 눈과 마음을 열고 들어주었으면 좋겠고, 누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때문에 절규하고 낙심할 때 그것을 듣고 보는 마음의 눈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서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 전하는 이야기에 종종 귀를 기울여 본다. 자연 속에서는 언제나 서로를 키우는 사랑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된다. 고개를 젖히고 바라보니 밝은 햇빛과 촉촉한 빗줄기 속에서 넓어지는 5월의 잎새들이 티없이 맑고 푸르게 자라고 있다. 벌써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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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5-17 1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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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잠잠히 바라보고 귀 기우리면 다 알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절규와 안도, 그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비로소 사랑이라는 생각또한 하게 됩니다. 눈부시게 푸르른 오월, 맑은 글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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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7 2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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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경청은 입으로 듣는(?) 것이랍니다.
맞장구 말입니다. ㅎㅎ..
제 글에 댓글로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임병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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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05-18 0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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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선생님, 경황없는 가운데도 좋은 글을 주셨군요. 무엇보다 부군의 예후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두 분의 말없는 교감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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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8 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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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고통이 유익한 것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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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5-18 0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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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없이도 마음만 통한다면 눈빛으로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참사랑으로 다져진 사람, 즉 가족끼리는 알게된다고~ 제가 알고 있는 전라분이, 급하게 뭔가 말하려면 '거시기'란 말부터 나오는데, 그의 아내는 그 말만 듣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챈다고 하며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하더라구요. 부군께서 아프시다는 말씀 듣고도 병문안 가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이가 들으니 모두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는 데가 많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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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9 0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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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는 참 요긴한 말입니다.
친척 중에도 그 말씀을 잘 쓰는 분이 계신데 가족들은 별 불편이 없는 것 같더군요. ㅎㅎ..
박원명화 선생님, 작가회 사무국장 일을 맡아하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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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05-18 0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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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부군의 건강은 괜찮으시겠지요. 정신 없는 가운데 이렇게 좋은 글을 쓰셨군요.
오래 같이 있다 보면 말은 없어도 서로 통하게 되지요. 좋은 수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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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9 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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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회복 중에 있습니다.
가장 큰 사랑은 곁을 지켜주는 것이겠지요.
모르는 말 있으면 사모님께 질문을 한다는 말씀이 참 듣기 좋습니다.
두 분이 대화 나누시면서 좋은 글도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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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05-18 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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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군요.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바깥 선생님께서 갑자기 편찮으셨다는 소식 듣고
걱정했는데 이제는 좀 안정을 취하셨나보군요.
특히 남녀의 소통은 많은 문제를 낳게 되지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결혼상담 교육을 받을 때
강사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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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9 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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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예비부부 결혼 상담을 하면서 대화법만 미리 알려주어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늘 보람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생활하시는 선생님을 뵈면 마음이 푸근합니다.
행복한 5월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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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1-05-18 1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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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의 급환으로 무척 당황하셨을 것 같군요.
지금은 좋아지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건강도 챙기면서 간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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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9 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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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약속을 드려놓고 문학기행을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랜 세월 사모님 간병하느라 애쓰시는데 선생님도 건강 지키시며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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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1-05-18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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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사랑은 세상 모든 것을 다 들을 수 있고 볼 수도 있는가 봅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蘭과 대화를 나누고, 성벽에 쌓아 올린 돌에서 역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쾌차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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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9 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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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난과 돌, 그리고 여러가지 음식을 통해서도 자상한 이야기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글에서 많은 정감을 느낍니다.
5월의 뜨락에 꽃들이 많이 피었습니다.
행복한 대화 나누며 좋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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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1-05-18 2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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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찬찬히 풀어가는 글솜씨에 매료됩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문제는 때로는 매우 심각해 지기도 합니다.
엉뚱한 해석으로 속마음과 멀리 떨어지는 태도를 보면 기가 찰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침묵이 약입니다. 상대를 안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 되나요. 현명한 카운셀러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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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19 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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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원 선생님, 제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는 강원도광역자활센터의 상담사들을 위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가졌는데
역시 대화와 경청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열차를 타고 원주로 가는 길에 아기 모가 심겨져 있더군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여름과 잘 사귀려고 합니다.
더워지는 날씨에 강건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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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1-05-19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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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잔잔한 인생관이 꽃향기 되어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여수에도 이르렀습니다.
사람의 의사소통에서 말의 비중은 7%에 지나지 않고
눈빛과 표정과 몸짓 언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심전심은 의사소통의 최고경지이지만 저같은 중생으로선
그 모든 언어가 집약된 정화 입술을 열어 고백하는
한 마디 말이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는 집착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벗들에게, 동료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입술로 시인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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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23 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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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이 한 마디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아카시 향기 흩날리는 5월에 날마다 즐거운 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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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1-05-20 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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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바깥 선생님이 응급실에 가 계셨군요.
선생님의 글을 읽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살아있을 때 옆에 있을 때 서로가 잘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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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5-23 0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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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선생님, 그렇습니다.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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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1-06-01 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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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진화 선생님 글은 아름다와요
전체적이 내용이 참 아기자기하고 짜임새가 있고
어떤글을 쓰시던 잔잔하면서 차분한 느낌들고요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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