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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문 |
날짜 : 10-11-09 09:26
조회 :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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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것이 죽고 그것은 살았다. 그것이 죽던 날, 나는 그것이 산 연유에 몰두해 있었다. 그것은 삶이고 죽음이었다. 진정 삶과 죽음이란 장강(長江)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일까.
산보를 가듯 집을 나선다. 한길을 벗어나 사잇길로 접어들면 이내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도심 속의 옛길, 그 길 따라 저만치 우체국의 둥근 지붕이 보이고 그 아래, 빨간 우편함이 아련한 향수처럼 세월을 잊고 서있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이 오래된 거리는 좁은 포도에 시커멓게 늙은 벚나무들이 하늘을 이고 서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길가의 그 우편함에는 구멍 두개가 나란히 뚫려있고 그 위에는 먼 곳, 가까운 곳이라는 흰색 글씨가 씌어져 있다. 내가 넣어야할 편지가 가까운 곳일 때는 문득 먼 곳이 그립고, 먼 곳일 때는 가까운 곳에 편지를 넣고 싶어진다. 이럴 때면 나는 항상 부치지 못하는 다른 한쪽의 뻥 뚫린 구멍을 바라보며 편지가 더 없음에 허전해한다. 그것은 아마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과 동경 때문일 것이다.
먼 곳, 그리운 그 곳으로 편지를 넣고 돌아서는 순간, 그 평화롭던 고도(古道)의 봄날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정적을 찢는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 그리고 금속성 파열음, 개를 치고 머뭇거리던 차가 급가속을 하고 있었다.
쓰러진 누런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가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튀어나올 듯 커진 동공을 번득이며 개는 고개를 들려 애를 쓰다가 사람들이 다가서자 이내 긴장이 풀린 듯, 사지가 늘어지고 있었다.
짓이겨진 다리 사이로 창자는 벌겋게 쏟아져 나왔고, 흥건한 피는 바닥을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처참했다. 핏발어린 개의 눈을 본다. 죽어가면서도 감지 못하는 황구의 뜬 눈이다.
황구는 정녕 그 눈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면에 이르른 듯 호흡이 잦아드는 개를 보며 발길을 돌리는 순간, 등 뒤에서 단호한 외침이 들렸다.
“어머, 새끼, 새끼가 나왔어요.”
검붉은 창자 속에서 무언가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황구는 만삭의 어미 개였던 것이다. 불현듯 바람이 일었다. 가지는 흔들리고 벚꽃은 눈처럼 내렸다. 아! 지는 꽃잎은 황구의 눈에도, 흥건한 핏물위에도 내려 이내 진홍빛으로 발갛게 물들여지고 있었다.
죽음을 통해 한 삶이 완성되고 생과 사가 하나 되는 그 엄숙한 순간,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섭리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 그것은 분명 축복이고 기쁨이고 서러움이고 애달픈 일이지만, 갈 때와 올 때를 모르고 산다는 것. 죽을 때와 살 때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참으로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알 수 없는 미련이고 인고의 세월이고, 보이지 않는 애착이며 사무치는 그리움이지 않은가.
세월이 가고 봄 따라 황구도 갔다. 그 길 위에 꽃은 피고 꽃은 진다. 하지만 내 가슴에 남은 것은 헛헛한 삶의 미몽(迷夢)이고, 내 기억에 갈수록 목마름으로 천착되는 것은 생(生)에 대한 부질없는 사유(思惟)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유리창 밖 가로등 아래서 야윈 가슴으로 그것들을 생각한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흙이 되던 그 자리, 그 오래된 벤치에 앉아 나는 오늘도 그것들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있다. 잊지 못해 묻는 그것은 삶과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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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0-11-10 1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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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죽음이 또다른 삶을 잉태하고 있었다니 충격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의 기억또한 임선생님의 뇌리에 오랫동안 떠나지않았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느 날 홈페이지에서 사라지셔서 궁금했는데 건재하신 모습뵈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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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11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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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문득 선생님의 그 좋은 글을 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여전히 건재하신 선생님을 뵙게 되서 더없이 반갑습니다.
곧 만나서 인사 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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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0-11-10 2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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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수필을 읽는 느낌입니다. 황홀한 묘사와 표현 그리고 그 깊은 사유의 세계로 나의 초라한 글을 반성하게도 부러워 하게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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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11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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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성철용 선생님,
제 글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해 주신 점,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힘입어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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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11-13 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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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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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15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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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생님,
그날, 선생님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격변의 세월을 사시면서 겪었던 선생님의 그 곡절 깊은 삶에 공감하는 바가 컷습니다.
건강하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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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11-14 1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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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한마리의 죽음과 탄생을 통해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낙엽지는 보도를 거닐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고 보니 지나온 세월들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더 재미나게 살 것인가?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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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15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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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참으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활동이 뜸하시고, 출판기녕회에도 나오시지 않아서 혹여 몸이라도 불편하신거는 아닌가하여, 전화라도 드리러 생각하고 있던차에 선생님의 소식을 접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말씀대로 지난 삶을 관조하며 더 신나는 삶을 생각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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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0-11-17 1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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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바람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듯, 오랜만에 맑은 글 한 편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느끼는 삶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개 한마리의 죽음이지만 생명의 존귀함이 묻어나는 글에서 선생님의 고은 심성을 그대로 보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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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18 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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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선생님,
오랫만에 뵙겠습니다.
졸작 읽어주시고 격려까지 해 주시니 고마움 비할 데가 없습니다.
역시 건재하신 모습뵈오니 그 기쁨 또한 큽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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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0-11-19 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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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끝에 이어지는 생명의 탄생을 보고 느낌이 많았을것 같습니다.
글이 사유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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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20 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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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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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12-22 1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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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있고 박진감 넘치는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탁월한 문장력과 표현력에 빠져 들게 하는군요.
시간에 좇기며 대충대충 읽었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책을 통해
또 여기서 다시 읽으며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소설 같은 수필의 묘미를.
죽음 과 생명!
저도 동물을 많이 키워봐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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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2-29 1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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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님,
졸작읽어주시고, 과분한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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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1-03-17 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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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문 선생님, 서정적인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행간의 문체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지난 해 작가회 내 이름은 시냇물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잔잔하고 차분한 글,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수필의 리듬을 느끼며 읽었습니다.
이곳에서 너무 늦게 읽어 댓글도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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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7-30 1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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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선생님,
저야말로 그만 답글이 늦어버렸군요. 언제 만나뵈면 사과를 드려야만 할 것같네요. 쉬엄쉬엄 좋은 결과로 가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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