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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10-09-29 01:14
조회 : 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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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밥상
박 영 보
결혼을 한 후 장모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은 딱 한가지뿐이다. 무엇이든지 잘 먹는다는 것. 그러나 사실은 무엇이든지 잘 먹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 재료에 따라 가려가면서 먹는 음식이 몇 가지는 있다. 예로 돼지고기의 경우, 엷게 썰어 놓고 매콤하게 끓인 김치찌개나 고추장을 섞은 양념장에 버무려 구운 삼겹살을 제외하고는 그것이 일류 요리사가 만든 천하 일미의 고급요리라 해도 나에게는 달갑지가 않다. 내가 그나마 이런 종류의 돼지고기라도 먹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마흔이 다 돼서부터였다. 단체로 캠핑을 갔을 때 그 자리에는 다른 것이 없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선도 ‘생선 매니어’라고 할 만큼 아주 좋아하는 편이지만 흔히들 고급으로 여기는 비싸고 귀하다는 것들도 나에게는 별로이다. 최근 들어 건강식으로도 인정도 받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생선회도 최근에 들어 조금씩 입에 대는 정도이다. 값도 비싸지 않고 귀하지도 않은 꽁치나 고등어구이 또는 생태찌개 정도면 나에게는 진수성찬이다. 어려웠던 시절 흔한 싸구려 음식으로만 길들여진 식성 때문일까.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결혼 전에 손님처럼 들려 몇 차례의 식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며칠을 머물게 된 적은 없었다. 식사를 할 때 사기그릇에 담긴 다른 식구들과 비슷한 분량의 밥이 나왔다. 그릇의 위쪽 끝 부분까지 담길 만큼의 분량이었다. 식구들 중에는 식기에 담긴 밥의 절반가량이나 삼분의 일 정도를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이것이 처가로부터 나의 식성이나 먹는 분량에 대한 감을 잡는 기준으로 삼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다음부터는 나의 분량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연구라도 하는듯한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약간 많은 양이 그릇의 위 부분에까지 소복하게 싸여 있었다. 그렇다고 쌀 한 톨이라도 남길 내가 아니었다. 다음 날에는 다른 사람들의 분량에 비하면 두 그릇에 해당될 만큼의 분량이었다. 누가 옆에서 재채기라도 한다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높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제까지 먹어 치운 나의 분량을 감안해서 ‘이 사람은 주면 주는 대로 먹어 치우는 식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식구들의 분량은 왜 달라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즉 반 정도를 남긴 사람, 삼분의 일 정도를 남긴 사람들에게도 그만큼의 분량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제는 한마디쯤의 말을 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의 분량을 다 먹어 치운다면 그 다음의 분량은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해 봤다. 나의 양을 측정하려면 다만 한 스푼의 분량이라도 남겨야만 나를 위한 양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이번에도 그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러고 나서 “어머님, 이러다가는 내일 아침엔 제 밥은 더 큰 냄비나 세수대야에 담아 주셔야 할 것 같네요” 라고 말했다. 식구들은 무슨 말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였는지 잠잠했었다. 잠시 후에야 그 말뜻을 알아차린 듯 웃음바다가 됐던 일도 있었다. 이 한마디는 그 이후 서먹했던 처가식구들과의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장모님께서는 “식사를 하는 품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고 하신 적이 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은 성격이 까다롭거나 모나지 않고 수더분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를 그런 품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셨다면 장모님의 판단은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을지 모르나 꽤나 까다로운 편이고 융통성이나 너그러움도 없으며 수더분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용서나 이해를 하는 것에도 인색한 편이다. 십 수 년 전에 당했던 일, 즉 누구에게서 억울한 일이나 섭섭한 일을 당했던 일, 또는 자존심을 심하게 상하게 했던 일 들은 웬만해서 잊혀 지지가 않는다. 나에게 그러한 상처를 줬든 사람의 모습들이 지금껏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걸 보면 내 성품이 그렇게 유들유들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아내가 “당신의 얼굴에는 좋거나 싫은 표정이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난다.”며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한다. 여기에는 단지 겉으로 나타나는 얼굴 표정만을 지적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행여나 나라는 사람은 다분히 이기적이고 자기본위로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에게 누를 끼치거나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자신 있고 떳떳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러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상대방을 자기 입맛에 맞게 길을 들이려는 모습이 발견될 때가 있다.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손끝 맛도 중요하다지만 적당한 비율로 배합한 갖은양념과 요리의 시간 등을 잘 조화시켜야만 한다고 한다.
음식에서의 손끝 맛을 사람의 본성이라고 친다면 갖은양념과 조리 방법은 작으나마 자기희생과 베푸는 마음의 조화로 관계가 유지돼 나가야 할 것이라는 비유를 해 본다.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다보기도 한다. ‘몇 가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것은 가리지 않고 모두 잘 먹는다’는 말은 말로써의 설득력이 없다. ‘모두 다’라는 말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완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완벽이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적지 않은 불편과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은 마음만으로 라도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작은 배려가 있다면 모두에게 맛있는 한 상의 푸짐한 잔치 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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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9-29 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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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 장모님의 사랑이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구십이 넘으신 장모님께서 생존해 계시고 지금도 처가에 가면 융숭한 대접을 받는데 이제는 제가 효도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처가에 자주 들르고 효도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음식 가리지 않고 잘 먹기는 저를 따라올 사람이 있을라구요. 그래도 항상 비쪅 말라있으니 더 이상 할말을 없읍니다. 마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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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0-10-01 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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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장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던 때의 일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이곳에 오셨을 때 1센트 짜리 동전 따먹기 민화투 놀이를 하던 일도 그렇고. 머리색깔이 새 하야진 이 나이에도 그분들이 계신다면 아양을 떨어보고 싶은 생각도 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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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10-06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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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 글 보니 반갑습니다.
선생님은 장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우선 손수 지은 밥 한 그릇을 비운다는 자체가 어른들이 보시기에 흐뭇하거든요.
구수한 옛이야기를 듣는 심정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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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0-10-08 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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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 집니다. 말씀이 별로 없으신 분이었지만 지긋한 눈빛을 통해서도 그분의 사랑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이곳에 방문하셨을 때도 뒷마당에 나가셔서 푸성귀를 뜯어다가 각종 나물들을 직접 만들어 주시던 모습들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많은 기쁨을 드리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도 있고 후회도 많습니다만 지난 날의 많은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니 기쁨의 순간들도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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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 |
10-10-17 0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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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정감이 듬뿍배인 글 잘읽었습니다. 저희 사위에게도 그런말을 제가 종종하는데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말인듯 싶네요. 저도 자꾸만 밥을 많이 퍼주게 되더라구요. 오늘아침 푹운한 수필한편 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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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0-10-24 1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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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고 싶은 그런 마음들이 느껴질 때마다 한국의 어머니 상을 그려봅니다. 얼마 있으면 일흔이 될 나이의 제가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이 떠나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린 <고아>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장모님이 사기 그릇에 담아주신 밥과 손수 무친 산채 나물이 생각나고요. 아내에게 "여보, 우리 같은 고아~" 운운 하고 말을 하기도 한답니다. 사위님께 퍼주시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내심 기뻐하며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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