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가 또 큰 쥐를 잡아 아침 마당 한가운데에 자랑해놓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한껏 고무된 눈빛이다. 백구가 쥐를 잘 잡기는 하지만 요즘의 눈부신 활약이 의심스럽다. 닭 모이를 노리는 참새 떼가 부쩍 늘었다. 진돗개들의 사료를 챙겨들기 바쁘게 낯선 직박구리들이 먼저 소란을 피운다. 여기저기 사람 떠난 이웃에서 몰려든 난민들임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집 앞 감나무 밭에 나가 망연히 서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몇 군데 자생하고 있는 까치무릇을 따로 챙겨보리라 작심한다. 한창나이라서 보추가 있어 뵈는 오갈피나무, 살구나무, 복분자나무, 석류나무, 뽕나무들은 대토로 옮겨갔다. 저마다 고향의 흙 한 삼태기 머리에 이고 좋은 날을 잡아 사십 리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늙은 감나무 밭은 내버려둘 요량이라 탱자나무 울타리와 함께 순장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비운을 알았는지 담장에 기대선 늙은 목련은 가지마다 짙은 녹음을 가꾸며 애써 태연하건만 슬픈 표정이 역력하다. 텃밭의 저 우람한 비파나무 형제, 짚 앞 전봇대보다 더 높아 뵈는 화단의 종려나무 한 쌍은 어찌해야 좋으냐. 난감하고 딱한 노릇이다. 진돌이와 한송이의 진돗개 다섯 식구는 어디로 데려가야 하느냐. 저 돌절구통과 한 섬들이 물두멍과 올망졸망한 장독대는….

  파묘(破墓)를 하던 중 관 뚜껑에 얼핏 칙칙한 진펄 기운이 비치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일꾼들이 난처한 얼굴이 되어 멈칫거리더니 목이 긴 고무장갑을 챙긴다. 함께 삽질을 하던 나는 열댓 걸음을 물러나 지레 외면하였다. 6년 반이 지났건만 수렴(水簾)을 받아 육탈(肉脫)되지 못한 아버지의 그슬린 듯한 유체가 검은 구름 위태로운 하늘 아래 길게 누여졌다. 나는 ‘발복(發福)’이다 ‘동기감응(同氣感應)’이다 하는 풍수학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저 육신에 아버지의 영혼이 77년을 함께 하였다는 생각이 스치자,  파헤쳐진 봉분 가장자리에 한참을 얼어붙어 아버지의 유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친정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어드려야 한다는 아내의 강단(剛斷)으로 장인어른 산소 지척에 아버지를 모시고서 돌아서는 눈앞에 금방 안개가 내려앉았다.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아버지는 제금을 나셨다. 아버지는 청년시절 두어 달 ‘어깨너머 야학’ 이 글공부의 전부라고 하셨다. 나는 그 아버지한테서 온전히 ‘가갸거겨’를 배웠다. 온 식구가 등잔불 아래서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가 손수 바람벽에 써 붙여놓으신 가갸거겨를 차례차례 대나무 잣대로 짚어나가실 때마다 형과 나는 큰소리로 따라 외웠다. 이제 아버지는 고향산천 한 자락 걸머메고 먼저 떠나신 것이다.

  동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무거운 물동이 머리에 이고 힘겹게 고삿을 돌아오는 새색시 형수님이 안쓰러워 무작정 부엌 앞마당을 파기 시작했었다. 날마다 구덩이는 깊어가건만 물빛 없는 깊은 바닥은 사람의 애를 태우고 그렇게 한달을 시커먼 무저갱과 싸우며 15미터를 파내려갔었다. 두 달 고생 끝에 새벽녘의 우물 속에서 들려오는 ‘풍덩’소리에 귀를 의심하며 뛰쳐나갔었다. 그러나 팔방미인 지아비의 역마살 함흥차사에 생이별의 모진 세월을 이겨내지 못한 형수는 끝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거두어가고 말았다. 아흔 가구 우리 동리에서 가장 깊은 이 우물도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나는 청려장 만들 실한 명아줏대를 집 모퉁이에 세워둔 채 병든 어머니를 낯선 요양시설에 떠맡기고 이따금  잠시 찾아뵙는 불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비 맞은 명아줏대에는 거뭇거뭇 곰팡이가 피었고 돌보지도 않은 남새밭에는 튼실한 명아주가 또다시 지천이건만 이제는 거동이 불가한 어머니를 슬퍼하며 나는 지팡이 만들 생각마저 잃었다.

  사람들은 도시생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옷장과 서랍장, 침구와 웬만한 옷가지를 다 내버려두고 밥상마저 두고 갔다. 고물상이 훑고 지나간 빈집들의 바람벽은 여기저기 처참하게 파괴되고 알루미늄 새시며 창틀이 뜯겨져나갔다. 유리파편이 낭자한 주인 떠난 이웃집 마당가에는 늙은 감나무가 홀로 남아 변함없이 푸르다.

  사람들만 떠나면 그만인 줄 알았다. 집쥐도 도둑고양이도, 길섶과 들녘에 숨어살던 야생동물들도 다 떠나야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들만 타관에 나가 터 잡고 살면 되는 줄 알았더니 오래된 나무들은 고향과 최후를 함께 해야 하리라는 것을 나는 생각지 못했다.

 ‘꼬랑뜸’사람들 절반이 빠져나갔고‘뒤첨’은 벌써 적막에 묻혔다. 그들은 저마다 고향 한 조각 씩 이고지고 별다른 말도 없이 가버렸다. 400년 터전, 사방 2킬로미터의 강역 내 고향 ‘삼동마을’은 변죽에서부터 무쩍무쩍 비어져나가고 있다. 내가 쟁기질을 배우던 아버지의 웃골 들도, 지긋지긋한 오뉴월의 뙤약볕을 피해 옥수수 대궁이로 갈증을 달래시던 장인어른의 ‘깨금밭등’도, 폰남젱이․서재밑․꾸정물․건너물․안뜰․자시랏․개명창․사네미․애모리 들녘도 멀지 않아 내 가슴 속에만 남아 저물어 가리라 하였다.

   오직 한 곳, 마을 앞 전봉산 서북 능선 끝자락의 ‘굴바위’는 능히 천년 세월을 견디리라. 그곳은 마냥 수줍었던 내 손길이 첫사랑의 심박동을 범하였던 곳. 내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던 첫사랑의 산마루. 우리들의 풋사랑은 두 아들로 성장하고 숱한 아픔과 모진 세월의 비바람을 오래 참음으로 견디어 이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절대자께서 바라시는 아름다운 열매로 익어가고 있으니 굴바위는 능히 천년의 증인이 되리라. 내 너를 보러 늙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반드시 돌아오리라. 그러나 세월은 무정하고 오직 천상의 진리만이 영원함을 깨달은 바에야 한사코 돌아올 그날을 따로 기약하지는 않으리라. 

(수필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