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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09-11-19 23:33
조회 :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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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달력을 보니 내일이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소설(小雪)이다.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잎씩 달려있던 나뭇잎이 어느 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가 스산하다. 도로 위를 밤새 촉촉이 적셨던 가을 비는 아침이 되자 잠시 멈추며 햇살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꾸물거리며 또다시 가는 빗방울을 뿌려댄다.
떠나는 가을과 오는 겨울의 분명한 선은 그어져있지 않아도 겨울은 어느 새 우리 곁에 다가와 여기저기 점령군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가듯 사람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산골짜기마다 곱게 불타던 단풍잎과 그 위로 숨 가쁘게 선회하는 헬리콥터의 카메라를 향해 흔들던 수많은 사람들의 손,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비추던 텔레비젼의 단풍 소식도 이제 더 이상은 나오지 않으리라.
아내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빈 교실에서 문득 아내를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산을 좋아하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아내는 특히 꽃이 필 때와 단풍이 들 때면 조금만 집 밖을 벗어나도 감동했고 어린애처럼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내장산의 단풍이 좋다고 우리도 한 번 떠나자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말해오면서도 정작 자신의 희망 사항쯤 까마득히 잊은채 일속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문득 애처롭고 안쓰럽다.
어려운 숙제를 뒤로 미루는 아이처럼 아내는 매번 `형편이 좀더 나아지면-` 이라는 말로 내일을 기약하지만 기실 그렇게 말하는 아내 자신 구체적인 계획을 떠올리거나 실천할 의지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란 것을 나는 안다. 그런 탓에 나 또한 무덤덤하게 듣고 넘기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일도 아니었다.
가까운 교외면 어떤가.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아내와 함께 차를 몰면 아내는 또 그럴 것이다. `아, 좋다! 참 좋다!` 그러다가 피곤에 지친 아내는 이내 잠 들것이다.
4시간밖에 안되는 만남이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북새통을 이루며 혼을 쏙 빼놓는 아이들이 요즘 따라 부쩍 힘에 부치고 밉다는 생각에 훌쩍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그럴 때면 큰 죄라도 지은 듯 서둘러 머리 속의 생각을 털어 보지만 궁금한 것은 처음부터 이런 마음이었다면 3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어찌 아이들과 함께 지내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저학년은 가르치는 맛이 덜하다며 굳이 고학년 담임만을 고집했던 자신이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손에 쥐어주기 위해 온갖 몸짓까지 섞어가며 일인 쇼를 마다하지 않던 정열과 잘못된 이웃반 아이들의 생활 습관까지 막고 나서며 호랑이 선생님으로 자처하던 억척또한 나름대로는 소명 의식이 있었기 때문일 터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권태기였다.
눈앞에 다가온 정년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곳곳에 자리 잡은 나태함.
복도와 휴게실에서 마주치는 젊은 교사들을 볼 때면 그래도 가르치는 의욕 하나만큼은 아직 뒤지지 않는다며 애써 자신을 추스르다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호기심과 새로운 시도를 만나면 모든 것이 심드렁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무관심은 차라리 죄악이었다.
아이들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선배 교사들을 누구보다 경멸했던 자신이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어느 새 그 자리에 서 있다니 그야말로 인생무상인가.
간간히 울리던 복도의 발자국 소리와 조금 전까지 문방구 쪽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웅성거림마저 사라지니 사방이 더욱 괴괴하다. 2교시 수업이 끝나면 같은 학년 교사들끼리 모여 잠시 차 한 잔과 함께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하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에다 그나마 5분이 채 못 되어 울리는 종소리의 기세에 눌려 쫓기듯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고 나면 퇴근 시간까지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 어려운 이웃 반 교사들과의 사이에 놓인 벽이 오늘따라 높고도 멀다.
불도 켜지 않은 교실에서 컴퓨터의 모니터만을 응시하고 앉아 있으려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37명의 아이들이 펄펄 살아서 움직이던 교실이었다.
잠시라도 담임교사의 통제가 소홀하다 싶으면 무슨 일이든지 기어이 터뜨리고 교실을 비운 채 5분만 떠나있다 돌아와도 저마다 호소할 이야기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그토록 끊임없이 신경을 흔들고 자극하던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평화를 느끼는 것도 잠시, 이내 몰려오는 이 외로움은 또 무엇인가.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산자락 끝에 걸린 비구름 한 조각이 빠르게 모습을 감추는데 뒤를 잇는 하얀 구름 사이로 밝은 햇살이 옅게 퍼지고 있다.
산으로 가는 듯 몇 무리의 여자들이 양 손을 바짝 위로 붙인 채 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거기에 아내의 얼굴이 겹쳐온다. 이번 휴일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물리치고 함께 앞산이라도 꼭 다녀와야겠다.
-2005년 1월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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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11-20 0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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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정년을 맞이 합니다. 정년은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요. 거기에 비하면 정년을 넘기지도 못하고 물러나는 안타까운 일들도 있는 세상이고 보면 정년은 축복입니다. 저도 정년을 마치고 나오니 세상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감동스럽습니다. 부디 좋은 곳 여행도 다니시고 즐거운 나날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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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0 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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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도 가장 먼저 찾아주신 임재문 선생님, 반갑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년, 누구나 쉽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우선 건강이 받쳐주고, 재직중 크고작은 사건,사고 없어야되고~ 늦게나마 `한국수필`에 둥지를 틀고 여러 선배분들 만날 수 있게된 점, 축복이라고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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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09-11-21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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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반갑습니다. 특히 美男隨筆家가 우리한국수필 작가회 멤버로서 합류하게 된 것은 매우 잘된 일입니다. 특히 저에게는 이심전심 잘 통하는 性情을 가진 분이라서 흐뭇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文友의 情을 가꾸어 나갔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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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1 2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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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님, 감사합니다. 스스로 돌아봐도 내놓을 것 전혀없는 결점투성이 인간입니다. 늦게 맺은 인연이지만 많이 사랑하고 이끌어주십시오. 윤행원 선생님을 알게된 것은 저에게 행운이라니까요~ 다음 달 9일, 노래 한 곡 기대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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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희 |
09-11-22 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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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반갑습니다. 지난 번 남양주 세미나에서 작가회에 입회 하신다고 하여 기대했는데, 역시 활발히 활동을 하시는군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십시요.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담담히 써 나간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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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2 2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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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한결 힘이 납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문단의 대선배님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저 나름대로의 일방적인 행위이니 한 선생님의 사랑을 받기는 틀렸지요? 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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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자 |
09-11-22 1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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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셨군요. 교실이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38년 반을 웃고 울고 지지고 볶던 그시절도 10년 너머로 멀어져 갔네요. 생각해보면 참 답답한 공간이었는데도 거기엔 순수가 있고 웃음이 있었지요. 이제 수채화처럼 연한 색깔로 희미하게 채색되어있지만 그 시절도 지나고보니 참 아름다웠네요. 퇴직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줍니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랍니다. 많은 추억을 꺼내보게하는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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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2 2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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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자 선생님. 두번째 만남이지요? 감사합니다. 같은 길을 걸어오신 선배선생님을 대하니 한결 마음이 푸근하네요~엊그제는 마지막 근무했던 학교의 교실을 찾아가 혼자 이생각 저생각 잠기다 왔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만 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젊은 마음으로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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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11-23 1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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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신 지 벌써 6년이 되었으니
지금은 사모님과 함께 즐겁고 뜻깊은 시간들을 엮어나가고계시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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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3 2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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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희순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확히 4년10개월입니다. 선생님의 글은 최근 `수필계 가을호`를 통해 접했습니다만 범상치가 않더군요. 야심만만한 글의 내용이 주목받는 작가로 조명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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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11-26 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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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상 잘 읽었습니다. 계절의 이야기라서 언제 읽어도 좋을 것 같군요.
잔잔한 글 속에 정감이 묻어납니다.
요즘 생활을 어떠신지 더 좋은 작품을 쓰셨겠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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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6 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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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인상적이시던 최복희 선생님, 작가회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낯가림이 많습니다만 좋은 선생님들, 관심가져 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둥지를 제대로 튼 기분이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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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1-28 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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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희망인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봉직해 오신
그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지금부터는
즐거운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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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09-11-28 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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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번 출판 기념회때 먼발치에서 뵈었습니다만 체격 좋으시고 호남형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선생님의 글 몇편 읽었습니다만 선뜻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앞으로 지면을 통해서나마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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