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려나봅니다.

보도블록 틈새로 꿉꿉한 물기가 배어납니다.

벚나무들은 오후의 고즈넉한 해안 길을 따라 저리도 숙연합니다.

길섶의 망초와 억새마저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바다는 거울이 되어 더욱 깊은 침묵에 잠깁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리운 혈육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이 품어 안은 물은 본디 하늘에서 온 생명입니다.

나뭇잎과 풀잎에도 어느 날의 천락수 숨결이 넉넉히 스며있습니다.

바다는 서서히 짙은 안개를 피워 하늘을 마중합니다.

안개는 끈질기게 구름을 채근합니다.

가벼운 바람이 동 끝에서 일어 나지막한 구릉을 넘어옵니다.

가녀린 나뭇가지들이 잎사귀들과 함께 살랑살랑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안개는 산록을 타고 여러 산봉우리에 오릅니다.

나는 시간을 잠재우는 바다의 묵도에 숨도 쉬지 못합니다.

섬과 섬에 어둠이 깃들고 우윳빛 바다도 저물어갑니다.

그때 후드득 후드득 비가 내립니다.

어스름 속에서도 나뭇잎과 풀잎들이 파르르 떠는 모습이 보입니다.

잦아지는 빗소리는 밤들도록 즐거운 노래입니다.

단비는 그렇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평선 너머에도 때를 맞춰 비가 내립니다. 

억조의 초목이 한마음 되어 비손한 공덕입니다.

대초원은 일제히 푸른 생명의 노래로 화답합니다.

사람들이 소떼로 초원을 짓밟습니다.

엄청난 양들은 초원의 살육자 메뚜기 떼와 한 가지입니다.

초목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웁니다.

생명이 소멸된 초원은 쓸모없는 사막이 되고 맙니다.

사막은 게걸스럽게 비를 받아먹곤 남김없이 어둠에 쏟아버립니다.

사막은 타락한 바람을 타고 생명의 땅을 뒤덮습니다.

하늘은 비를 내려주지 않습니다.

구름을 거두어 떠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뉘우치지 않고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끝내 하늘을 저주하다가 죽어갈 것입니다.

 

  비는 열대우림을 껴안고 축가를 불러줍니다.

드넓은 아마존은 풍성한 활력으로 하늘을 우러릅니다.

비는 자주 내리고 아마존은 세상의 녹화를 꿈꿉니다.

숲속에는 온갖 길짐승과 날짐승이 번성하고 강에는 물고기들이 유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끼와 기계톱과 장총을 들고 숲으로 향합니다.

비가 내리면 죽은 나무는 속히 썩을 뿐입니다.

살아있는 나무에 내리는 단비는 축복입니다.

내 마음 속의 나무는 늘 푸른 나무이기를 소망합니다.

  하늘이 무너져 며칠이고 쏟아지는 비가 원망스럽습니다.

하늘에 홍수가 나니 일월성신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해와 달과 수많은 별이 휩쓸려 땅에 떨어져버립니다.

 

  비가 개니 햇살은 산록에 빛납니다.

산록이 입을 엽니다.

비에 씻고 나서 빛을 받으니 세상이 새롭다합니다.

나는 한사코 굴속을 고집하며 비를 피합니다.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 독감에 걸려 죽는다고 했습니다.

빗속에는 몸에 해로운 방사성 물질과 여러 가지 독소가 들어있다고들 했습니다.

비에 씻으라한 산록을 처단해야 한다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는 두려움에 떨기만합니다.

용기 있는 몇 사람이 나아가 비를 맞았습니다.

어느덧 그들은 환골탈태하여 ‘무궁화’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 비의 효험에 놀랐습니다.

비를 맞지 말라던 자들은 딴소리를 하다가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그제야 나는 단비를 기다리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