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줍는 아내의 모습에서 문득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따로따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오늘은 함께 보내고 싶었다. 밖으로 나도는 남편으로서 집안일에 파묻혀 사는 아내에 대한 보상이랄까.아무튼 가을을 같이 타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모처럼 점심 외식도 하고 고궁으로 발길을 향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들어서보니 차량 왕래가 많아 예전의 호젓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궁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무슨 집회가 있는 것 같아 경복궁으로 돌렸다. 경복궁도 만원이다.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다가 그 옆에 있는 현대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눈에 띄는 것은 ‘당신에게 정원이 있습니까’ 라고 걸려 있는 주제였다. 작가들이 표현 하는 것처럼 만남과 쉼터가 있는 마음의 정원이 있다면 삶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미술전시회 좋아했잖아”

“전에는 그랬지만 사느라고 다 잊어 먹었어요.”

“오늘은 어땠어?”

“나와 보니 참 좋네요. 기분이 상쾌해지네요.”

밖에는 곧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 전시회가 있다는 포스터가 보였다.

“당신, 조르조 모란디가 어느 나라 화가인줄 알아?”

“중동 사람인가 이름이 그러네”

“아냐. 이태리 화가야. 세잔느라고 들어 봤지?”

“그럼 내가 아무리 무식해졌어도 세잔느를 잊어 먹었겠수?”

“우리 전에 프랑스의 생폴드방스 가봤잖아.”

“그런데요.”

“그 아름다운 곳에 세잔느 그림들 많이 걸려 있잖아 정물화 말야.”

“네, 봤어요.”

“풍경이나 과일등을 그리는데 색채가 무척 화려하잖아,”

“그랬어요.”

“세잔느는 색채의 변형을 통해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내려고 했어. 그런데 조르조 모란디는 세잔느의 영향을 받은 화가이지만 눈에 보이는 풍물들을 간결하게 그리면서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라고 했던 작가야.”

 아내는 열심히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골똘하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 먼 옛날 문학을 이야기 하면서 데이트하던 추억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모처럼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가을에 꼭 맞는 대화를 이어 가는데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듯했다.

“여보, 지금 시간이 손주 유치원에서 데려 올 시간인데 큰일 났네. 우리 빨리 가요.”

 이런 된장,  아내는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며 당신 참 대단하네요라고  칭찬해주지 않을까 하는 남편의 은근한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려 버렸다.  기껏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시간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상이몽에 쓴 웃음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