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소슬 바람을 타고 소리 없이 스며든다. 이 바람에 취한 가슴으로 단풍잎을 바라보노라면 고운자태에 가을이 황홀하게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렇게 가을을 타는 마음으로 가을의 글을 쓰고 싶다.

 꽃샘바람이 불던 지난날에는 시냇가에서 버들강아지의 꽃 몽우리를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봄맞이를 했다. 한겨울을 견디고 깨어진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위에 터질듯 말듯 비추는 꽃 몽우리는 환희였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기지개 피는 오솔길 위에서 흩날리는 하얀 꽃비를 눈 섶으로 맞으며 봄맞이 글을 썼다. 파란 장미꽃을 사든 여인에게 꽃말을 희롱하면 수줍음을 보이는 모습도 봄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한 여름에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둘이 걸으며 파도에 지워지는 발자국에 사랑을 담기도 했다. 진주 빛 파도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은빛 모래알 같아 뜨거운 정열을 읊기도 했다. 밤바다 모래사장에 앉아 시원한 마파람에 더위를 식혔다. 광활한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세며 시계를 정지시키는 여유를 만끽한다. 문득 달빛이 바람 안고 별빛 사이로 가버리면 아픈 내 가슴 누가 만져주려나 하고 철 이른 고독의 글을 쓰기도 했다.

 온몸으로 느끼는 감각으로 계절을 타는 마음을 옮겨야 공감할 수 있다. 목련과 개나리꽃을 바라보며 오감이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때 봄의 교향곡이 탄생하고 북풍한설 속에서 문풍지의 떨리는 소리를 득음할 수 있는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푸른 젊음을 노래하고 바바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오색이 물든 단풍의 운치를 즐겨야 제격이다.

 이와 같이 가을에는 가을의 글을 써야한다. 가을이 아닌 글을 쓰는 것은 장삼에 중절모를 쓰는 투박함이고 한복 입은 새색시가 구두를 신는 어색함이다. 벌써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때 이른 낙엽이 뒹군다. 푸르른 들판이 누렇게 변해가고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본다. 자연의 섭리를 깨달으라는 교시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높은 하늘과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가 너무 멋지게 어울리는 계절이다. 이렇게 가을을 타는 마음으로 가을의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