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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3-07-17 06:43
조회 :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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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원짜리 화해
1학기 보충수업이 끝났다. 며칠간은 0교시 수업이 없다. 아가들이나 우자愚子나 다 홀가분하다. 8시 50분 쯤 조회를 하러 들어갔다. 이야기할 것이 참 많다.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 설문 조사도 해야 하고, 2학년인 아가들에게 3학년 교육과정도 일러 주어야 한다. 설문조사는 어제 설문지를 내 주었기 때문에 걷어 오기만 하면 된다. 3학년 교육과정을 미리 알려 주는 이유는 2학기를 위한 학습 계획에 필요할 것 같아서이다.
설문지를 걷었다. 아가들이 뒤에서부터 죽 걷어 왔다. 세어 보았다. 서른일곱 장이다. 이런! 열두 명이나 안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아가들의 생활이 왜 이렇게 태만해졌을까? 순간, 아가들이 아가들로 생각되지 않았다. 속이 뒤틀렸다. 다시 세어 보았다. 마찬가지이다.
“안 낸 사람 일어서 봐. 왜 이렇게 안 낸 사람이 많지?”
“…….”
두 사람이 일어섰다.
우자愚子의 일그러진 얼굴을 봐서인지 착한 아가들 얼굴이 완전히 똥색이다. 그런데 나머지 열 명이 안 일어선다.
“얘들아, 열 명은 왜 안 일어서는 거야?”
“…….”
“얘들아, 뭐 대단한 거라고 거짓말을 하니? 없으면 다시 써 내면 되잖아? 일어서.”
나는 아가들의 이미지를 위하여 애걸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안 일어선다. 큰일이다. 이 아가들이 지금 큰일을 저지르고 있다. 이건 나에게도 나도 짐이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어떻게 끝내야 하나? 이 정도를 가지고 벌을 준다면 정말 좀생이 중에 좀생이가 된다. 안 일어선다. 하긴 일어설 사람이 없다. 우자愚子는 점점 진짜 화가 났다. 우리 2학년 2반 아가들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얘들아, 운동장으로 나갈까? 정말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우리 학급이 왜 이렇지?”
나는 울고 싶었다. 아가들에게 이렇게 화가 나 본 적도 없다. 아가들이 몇몇이 저희들끼리도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친구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중에 제일 올곧고 결 바른 정자貞子가 호소한다.
“야 얘들아, 정말 너무하다, 뭐 이러니? 빨리 일어나자.”
그 때 정말 다시 한 번 세어 보자. 나는 세면서 내가 잘못 센 것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맞는다. 서른일곱 장, 열두 장이 모자란다. 열 명이 안 일어난 것이다.
“이거 봐. 맞잖아. 열두 장 없잖아.”
반장인 현자가 되물었다.
“선생님 몇 장이예요?”
“서른일곱 장”
“그럼 맞잖아요. 둘 더하면 서른아홉 장.”
아뿔싸, 맞아! 우리 반 아가들이 서른아홉 명이지. 이런 이걸 어쩐다? 나는 꼭 마흔 아홉 명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맞아! 맞아. 내가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았던 15년 전엔 마흔아홉 명이었지. 이런, 이걸 어떻게 수습한다?
“그러네. 맞네.”
이런 낭패. 나는 얼버무리고 서둘러 교육과정을 설명하고 쫓기듯 연구실로 돌아왔다. 뒤가 따갑다. 15년 전에 학급담임을 맡은 이래 이런저런 보직 때문에 학급 업무와는 멀어졌다. 오랜만에 예쁜 여고 2학년 아가들의 담임교사가 되고 보니 실수 연발이다.
“아, 뭐예요. 선생님 뭐예요 정말”
아, 치매인가? 이런 착각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착한 아가들이 나를 속이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가들을 나쁘게 보는 것은 항상 어른들이다.
2교시에 국어다. 부반장 명자明子를 조용히 불러 아이스크림을 사오라 했다.
“선생님 왜요?”
짓궂은 명자明子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어처구니없이 화를 냈잖아. 이걸로 그냥 너희가 잊어줄 수 있지?”
“애들한테 얘기할까요? 깜짝 놀이로 할까요?”
“말하지 말고…….”
“그럼 깜짝 놀이로 할게요.”
기특한 명자明子는 우자愚子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지 아주 싸고 큰 놈으로 사왔다. 그리고 거금 일만 원을 되돌려 준다. 1인당 일금 오백 원으로 무난히 해결은 된 것 같다. 이른바 오백 원짜리 화해이다.
그러나 곰도 동굴 안에서 불견일광不見日光하면서 마늘과 쑥만 먹어야 사람이 되는데, 이렇게 단 것을 먹여 순수한 아가들을 의심한 나의 죄나 덮으려 하니 언제 수성獸性을 벗기고 인성人性을 기르겠는가? 그러나 걱정 없다. 이 아가들에게 인성교육은 필요 없다. 원래부터 인성을 지니고 났으니까.
(2010.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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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7-17 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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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오랫만에 사랑이 넘치는 교육현장을 보는 것 같아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제자 사랑이 이렇게 절절하니, 참 교육자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보람된 삶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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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7-19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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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자기 변명에 급급한 걸요. 학교에 와 보시면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스럽기 마련이지요.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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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7-18 2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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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뛰고 계신 이방주 선생님 부럽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현장에서 뛸 때가 제일 좋은 때이지요. 저도 현장에서 뛰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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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7-19 0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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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이제 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은 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요. 나중에는 오늘이 그립겠지만 말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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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07-22 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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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명자明子는 우자愚子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자 사랑이 얼마나 큰지 궁금하면 500원! ^^*
인성은 원래 지니고 태어났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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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7-23 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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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혜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인성교육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원래 사람이거든요. 있는 그대로 두면 그냥 사람인데, 세상의 요구가 아이들을 화나게 하는게 아닐까요? 더위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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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7-24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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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생님과 같은 선생님만 학교에 계시면 학교가 전혀 문제가 없을듯 합니다.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이야 말로 최고의 교육자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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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7-25 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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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저로서는 재미있는 교단의 일화인데 교단일기라고 이름붙여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읽는 분들이 좋은 말씀만 해 주시니 제자랑하는 것 같아 낯간지럽습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고 아이들과 지내는 즐거움이라 이해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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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7-26 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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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저는 헬스장에 2년 가까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한 사람들 일부에게 마음에 상처를 받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학벌과 교양과 생활이 비슷한 교직원들과 평생을 함께 한 세월들이 행복한 나날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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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7-29 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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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저도 최근에 다른 일을 하는 문학 모임에서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안타깝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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