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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2-09-09 22:02
조회 :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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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아버지 제우스가 세상을 다스리던 아득한 옛날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질투가 죽음을 불러 꽃을 만들어냈다. 꽃들은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원망이 세상에 형체를 드러낸 신과 요정 또는 인간의 지극한 슬픔이었다. 꽃의 슬픔이 아름답다는 것은 비극이다. 판도라가 에피메데우스의 상자를 열지 않았다면 세상에는 슬픔이 없어 정녕 꽃도 탄생하지 않았을 터이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끔찍이도 사랑한 아도니스는 사냥을 하다가 산돼지에게 옆구리를 받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뒤늦게 달려온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피 위에 신의 술을 뿌렸다. 피와 술이 섞여 거품이 일어나고 한 시간 후에 핏빛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 꽃은 바람이 불어서 피어오르고 다시 바람이 불어서 진다고 하여 아네모네 곧 ‘바람꽃’이라 불렸다.
제우스의 양치기 소년 나르키소스는 아름다운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절해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어느 날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매혹적인 그림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는 수선화가 되었다.
물의 님프 클리티에는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모하였으나 아폴론은 응해주지 않았다. 클리티에는 땅바닥에 앉아 엿새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날마다 태양의 행로를 따라 얼굴을 돌리다가 해바라기가 되었다.
태양의 신 아폴론과 미소년 히야킨토스의 사랑을 시기한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히야킨토스는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이마를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이마에서 흐른 피가 땅에 스며들어 꽃이 피어났으니 바로 ‘히야신스’이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청이는 화사한 연꽃으로 태어났다. 춘향의 절개는 한 송이 순결한 옥중화였다. 동방의 꽃들은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과 정절과 충효의 표상이었다.
꽃들은 저마다 은밀한 전설을 가슴 깊이 묻어놓고 오늘도 향기를 더하여 웃음 짓는다. 나는 꽃들의 시치미와 인내를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뇌수를 정화해주는 찔레꽃 향기를 기뻐하고 겸손의 미덕을 수줍어하는 때죽나무 꽃을 편애한다. 문 앞에 마중을 나왔다가도 바짝 다가가면 향기를 허락지 않는 난의 절제에 숙연해진다. 사람들의 사귐에 화기가 넘쳐나는 ‘이야기 꽃’에 매료된다. 그 곳에서 가끔 터져 나오는 ‘웃음꽃’이 행복하다. 들녘에서 소일하는 요즈음 내가 새로이 좋아하게 된 꽃은 ‘소금꽃’이다. 오뉴월 들녘에서 그을린 목덜미의 발제에 핀 깔끄러운 소금꽃이 바람결에 상쾌하다. 그러다가 나는 이월 영등시의 나진포 개에 만발했던 ‘사람 꽃’을 떠올린다. 웬 아낙들인가 하였더니 모처럼 어촌계에서 영을 텄다고 했다. 저마다 좋은 생각을 품고 바지락을 캐고 있었을 것이다. 꽃은 외로움을 서어하니 무리 지어 함께 피어야 제격이다.
세상에는 꽃을 피운 사람들이 있어왔고 꽃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시인과 가객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며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생명의 사랑을 지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외쳤다. 어느 시인의 ‘꽃’이 되려면 누가 와서 이름을 불러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간절한 염원을 품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나도 목 놓아 불렀다. 그러나 사막은 황량하고 꽃의 생명은 초라하다. 이 땅은 ‘꽃다운 세상’과는 너무나 멀리 있는 듯하다.
진정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진대 그는 천하의 어떤 꽃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하고 거룩한 꽃 중의 꽃 곧 ‘사람 꽃’이리라 믿는다. 저마다 인꽃(사람 꽃) 한 송이 피워 올리면 백화가 만발한 화원에 하얀 나비들이 모여들 것이다. 인꽃의 개화 에너지는 생명의 사랑이다. ‘백만 송이 장미’를 피우고 이웃을 자신처럼 아끼는 순수한 사랑만이 인꽃을 피워 올릴 수 있다. 인꽃 속에는 그렇게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어 누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땅과 공중의 어떤 벌레도 아름다운 불꽃이 이글거리는 인꽃을 범하지 못한다. 세상이 인꽃으로 수놓이는 날에 ‘금수강산’ 이루어질 터이니 바로 낙원이요 극락이다. 낙원에 피어난 꽃들은 다시는 지지 않는다. 그들이 곧 낙원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온갖 꽃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보내는 최고의 메타포이다.
나는 누천년 호국의 뜨거운 피를 먹고 줄기차게 피어나는 ‘샤론의 장미’로 화관을 마련하겠다. 새하얀 눈꽃으로 천의무봉한 두루마기를 지어입기 위해 전인미답의 설국을 찾아 길을 나선다. 다시는 지지 않는 꽃의 비밀을 가지고 동녘하늘을 가로질러오는 피닉스의 날갯짓을 감지한다. 이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향기인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오늘 나는 그렇게 한 송이 ‘인꽃’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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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2-09-10 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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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꽃’ 이 피면 하얀 나비 모여들고. 개화 에너지는 생명의 사랑. 가장 아름다운 꽃 人花를 생각하신 착상이 놀랍습니다. 꽃은 시들지만 人花를 이룩한 훌륭한 분들의 덕과 행적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법정, 성철, 김수환추기경, 한경직목사,간디,링컨 같은 '사람 꽃', 볼 수 록 우러러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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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9-22 2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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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은 과연 비단과 같은 아름다운 무엇으로 수놓이는 강산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이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으니 결국 땅을 비단처럼 수놓는 것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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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09-11 1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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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하신 김춘수님의 꽃을 상기시키기도 하고요 저도 아름다운 꽃을 찾아 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느 땐가는 저도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극치의 그 꽃을 피워내고야 말겠지요 이희순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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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9-22 2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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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가 와서 자신의 이름도 불러줌으로써 그의 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누구의 이름을 부르지만 누구의 관심을 받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순수한 생명의 사랑으로 채워 그들의 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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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2-09-22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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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려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있다면 바로 '인꽃'이라시던~ 꽃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게으름 없는 작가 정신이 인꽃(사람 꽃)의 개화된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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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9-22 2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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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 처자를 보고 외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뉘 집 처자가 저리도 고울꼬. 아무렴, 이 꽃 저 꽃 해쌓아도 인꽃이 제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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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2-09-26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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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부분의 꽃은 '눈물 속에 피는 꽃(리멘시타)'이군요, 이희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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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9-27 1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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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런 신화와 전설에 어리둥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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