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불꽃처럼 살다간 작가 ‘임승렬’

                                                    박원명화

 또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운다. 내 기억에서, 아니 내 수첩에서 이름을 지우며 그 분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흉허물 없이 가깝게 지냈던 분,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박선상! 바쁜 게로구나. 그래도 나랑 통화는 해야지”

엊그제 아침에도 전화를 하셨다. 딸인 경수씨의 안부를 전하면서, 문우들의 안부를 묻기도 했었다. 그리고 모레 있을 000문우의 출판기념식에도 같이 가자는 약속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래놓고 무슨 급한 사정이었기에 그리도 바삐 떠나셨단 말인가.

  저녁 무렵,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놓고 잡다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딩동’하고 메일 알람이 울렸다. 반가운 소식인가 싶어 얼른 메일을 열었더니, 천만뜻밖에 부음소식이 아닌가. 그게 임승렬 선생님이라니….

  울지 말자. 가슴이 아프고, 목젖이 막히고, 눈물이 흘러내릴지라도 울지 말자. 짐승도, 곤충도 식물도 언젠가는 떠나기 마련 아닌가. 애써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저려오는 가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그날 밤 나는 그분과 함께 한 시간들이 생각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전,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며 ‘호주세미나’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 간다고 냉정하게 못을 박았다. ‘박선상 안가는 데 나 혼자 뭔 재민겨, 그럼 나도 안 갈란다’며 아쉬워하던 그 목소리가 환청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빈소의 영정사진. 연분홍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철부지소녀처럼 수줍게 웃고 있다. 언젠가 탄생될 수필집속에 넣을 거라며 예쁘게 찍어 달라던 그 사진이다. 처진 눈썹 아래로 수줍게 웃고 있는 입술에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다. 그런 사진을 보고 가슴 저린 사람이 어디 나하나 뿐일까. 문상(問喪)온 사람마다 슬픔이 녹아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기피하는데 그분은 유별나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 탓이라며 어딜 가나 사진을 찍었다. 특히 특색 있는 풍광은 빼놓지 않고 찍으려 했다. 그리고 왔다갔다는 증표를 남겨야 한다며, 내 손에 사진기를 들려주곤 무조건 찰깍 찍으라며 채근을 해대곤 했다.

  사람의 만남은 대부분 어떤 우연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그 분을 만난 건 문단에 발을 들여놓고였다. 40대 후반, 뒤 늦게 엉뚱하달 수 있는 수필문단을 기웃거린 걸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내게 용기와 격려를 해주고 싶었던 걸까. 당신은 60이 넘어 등단하고 책까지 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분과 내가 처음부터 가깝지는 않았다. 내가 데면데면 구는데 반해 그분은 언제나 내게 살갑고 친절했다. 그런 친절이 오히려 내게는 버겁게 느껴져서 색안경을 끼고 보듯 나는 그 분의 성품을 은근히 경계하고 탐색했었다.

‘진실이면 통한다’고 했던가. 2006년 3월, 당신의 수필집 『먼 곳에서 날아온 엽서』와 『꽃반지 낀 자리』 두 권을 건네주며 읽어보라 했다. 그날로 나는 책 2권을 단숨에 읽었다. 책속에 살아있는 그 분의 이야기가 나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했다. 그 분의 삶이 거기 다 들어 있었다. 그 세대가 겪은 설음과 인습, 전쟁의 아픔, 이별과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단련된 뜨거운 삶을 껴안고 싶어 글을 썼을지 싶었다. 이후 수필집『나의 아버지』『서초일기』 『노랑저고리』를 출간하는 왕성한 필력으로 문우들의 부러움을 샀다.

  어느 날, 지나가는 소리처럼 소설이나 써 볼까나 하는 말을 듣곤 ‘소설은 아무나 쓰나요’ 라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나이면 어제 일도 깜박깜박 기억이 아리송해 허둥대기 일쑤인데, 내내 수필가로 활동하던 분이 소설가로 변신을 한다니,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라던가. 그 분의 열정을 인정하면서도 문우들은 그 분이 과연 장편소설을 써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모여들듯, 그 분은 순전히 글을 쓰기 위해 문단에 들어오신 것 같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 어려운 일을 마침내 해낸 것이다. 큰 키에 물기 빠진 볏짚처럼 본래도 깡마른 몸매, 무려 몸무게가 5k나 빠지는 엄청난 산고의 고통을 겪고 자전장편소설『청양아씨』를 탄생시켰다. 수필집에서처럼 소설 역시 무거운 학문적 언어를 벗어던지고 누구나 편안한 소통의 언어를 구사한 게, 작가 임승렬만의 독특한 문장력이 빛을 보였다. 그 책으로 그는 <충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봄밤은 짧고 봄꿈은 길다” 소설 첫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강산이 바뀌고도 내게는 여전히 낯선 문단. 나는 어떤 작가가 되기 위해 문단을 기웃거렸을까? 나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문장 같았다.

그는 마치 글을 쓰는 게 즐거운 일을 하듯 매주 글 한 편씩을 써가지고 왔다. 식을 줄 모르는 작가로서의 열정은 올림픽의 성화만큼이나 뜨거웠다. 두 번째 장편소설『꽃내 사람들』이 탄생되었다. 그렇게 두 장르를 넘나들더니 얼마 전부턴가 또 다시 시인이 되겠다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작가 임승렬을 보면 ‘꿈으로 가는 도정, 꿈으로 가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글 쓰는 게 삶의 전부라던 그, 문학이 힘을 잃어가든 말든, 문단패거리를 만들어 권좌나 문학상에 혹하여 각 문학회를 기웃거리든 말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길, 자신의 등단지인‘<사>한국수필가협회(월간한국수필)’와 그 동인들의 모임인 ‘한국수필작가회’만을 뿌리로 알고 지낸 분이다.

  마지막 영정사진을 보고 작별을 고한다. 망자와의 이별을 고하고 돌아오는 길, 만감이 교차한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이것이 옳다, 그르다 하며 괜한 일로 아옹다옹 살아온 삶이 문득 덧없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차창 밖을 보니 살아서 숨 쉬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도심의 환상적인 조명, 무수한 한강다리를 장식한 아름다운 불빛,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은하수처럼 달리는 차들의 행렬, 파란불이 켜지기 무섭게 바쁘게 행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