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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서 임진년으로 바뀐 지 벌써 6일 째다.
흰 토끼 해에서 흑룡의 해로 명칭과 의미를 달리하여 새로운 한 해는 드디어  막을 열었다. 매스컴은 새로운 흑룡의 해를 설명하면서 이조 선조대의  임진왜란을 거론하기도 하고, 반드시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 어떤 징후와 관련한 이야기들도 쏟아 놓는다. 이일 저일, 큰일 작은 일, 기쁘고 언짢은 일 다 일어나지만 아직까지는 우주의 순환질서에 별다른 변동이 없는 듯하다

365일이란 숫자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하루 24시간도 길게 느끼면 한없이 길고 숨막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하루라는 시간의 단위가 365번씩이나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과연 내가 한 일은 무엇이 있는지. 고요히 한 번 짚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 나이들어  봐라. 세월 가는 게 눈 깜짝할 사이란다."
라고 하신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정말 그럴까?  살아온 경험은 사는 일을 수월하게 해주는 것일까. 아무리 멀고 험한 산 길도 올라갈 때에 비해서 내려올 때는 훨씬 빠르고 덜 힘이 드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올라가면서 보아 둔 정경이 눈에 설지 않고 정상을 올라갔다는  성취감도 있어서일 것이다.

흘려버린 시간 앞에서는 언제나 자괴와 자책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
뚜렷히 내세울 삶의 공적이 미미해서일까. 년초에 계획했던 일이 게으름과 사소한 일상에 휘둘려 본의 아니게 방기되고 순서조차 망각되어져서인가.

아침 산보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기쁘게 하하 웃고 사는 게 건강과 장수에 좋다고 말한다.  '하하하'  하고 혼자서 큰 소리로 웃는다고 한다. 얼굴의 주름살이나 검게 탄 피부며 왜소해 보이는 그 할머니의 웃음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 주려해도 웃음이 아니라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아무도 귀 기우려주지 않는 자기만의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가.

그런데 묘한 것이 그렇게 억지 웃음이라도 '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게 되면 인체의 내부 기관들은 정말로 웃는 웃음인 줄 알고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난다고 하던가. 언젠가 한가한 아침에  TV 에서 들은 얘기다.
그렇다면 해놓은 일도 없이 해가 바뀌어 다소 후회스럽고 ~걸 하는 미련과 아쉬움에 젖어 있기 보다는 가식적이라도 그냥 거울 앞에 서서 '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어 보는 것인가.

기왕 아무 일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과거지사로 흘러간 마당에 애끓는 심회로 자신을 힐책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흑룡해에 정신을 일신하고 다시금 허무와 회오에 젖는 일이 없도록 미리 각성하고 스스로를 향하여 격려와 희망을  부추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외출 대신 오늘은 뜨끈한 한약 한 봉지 덮여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추스리는 날로 정하자. 내가 쳐지면 다른 무엇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무슨 일을 이루는 때에 있어서  그 때가  '늦은 때' 라는 것은 결코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새털 같이 많은 날이 나에게도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음을 자각하자.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와 얼어죽는다는 날, 오늘의 기온은 어제보다 한결 푸근해 보인다. 하늘 또한 맑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