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강원도 춘천의 모기관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처자식은 서울에 남겨두고 나홀로 내려가 있었는데 셋집 대신 깨끗한 여관을 숙소로 정하고 있었다. 여관은 깨끗했지만 지금처럼 방마다 욕실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화장실과 세면장이 공동으로 밖에 있었고 방은 1호실, 2호실.. 모두 똑같은 모양이라 술이라도 한잔 한날이면 가끔 엉뚱한 방을 열고 들어가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거의 요즘같은 무렵인 어느 여름날 밤 나는 직장에서 회식을 마치고 여관으로 들어와 공동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고 소변도 보고 방으로 들어가서 잠에 떨어졌다. 얼마후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남자 목소리였다.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 반경쯤 되었다. 바지를 주워 입고 방문을 열고 내다 보니까 하사관 계급장을 부친 30세 가량의 젊은 군인이었다. 그는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 하면서 사람 좀 찾아줘요 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여관 주인도 달려 나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자기 색씨가 없어졌단다. 너무 황당한 말이라 연유를 물었다. 충청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근무처인 강원도 화천으로 색씨와 가는 길에 너무 늦어서 하룻밤 묵고 가려고 여관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너무 피곤하여 잠에 곯아 떨어졌다가 목이 말라 눈을 떠보니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색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갔나 하고 나와서 찾아 보아도 없고 날씨가 더워서 혹시 밖에 나가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주위를 샅샅이 살펴 보았는데도 없다는 것이다. 주인도 이리 저리 창고까지 뒤져 보았으나 흔적도 없었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주인은 나보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딱한 얼굴로 묻는데 나라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대체 무슨 수로 찾는다는 말인가. 혹시 날씨가 더워서거나 아니면 방을 못찾아 빈방으로 들어가서 쪼그리고 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인에게 방이 모두 몇 개인지 그리고 오늘 빈방이 몇 개냐고 물어 보았다. 방은 모두 12개인데 장기 투숙 손님이 6 오늘 저녁 들어 온 손님이 젊은 군인 부부를 포함해서 3 나머지 3개는 빈방이라고 했다. 나는 주인과 젊은 군인과 함께 빈방을 모두 열어 보았으나 불행히도 색씨는 없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주인에게 모든 투숙객들을 깨워서 밖으로 나오도록 하라고 시켰다. 요즘 같으면 인권이다 뭐다 해서 먹히지도 않을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춘천은 군인 도시라 여관 검문도 심했고, 특히 장기 투숙자들은 비교적 점잖은 사람들이었는데 내 신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놓고 불만을 터뜨리지 못하고 뭉기적 거리면서 모두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주인이 점검하던중 젊은 군인 방 다음 다음 방에 투숙한 사람이 나오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그 방에는 젊은 남자가 혼자 투숙했다고 했다. 나는 주인 보고 빨리 깨워서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왠 기가 막히다가 뒤집어질 일인가. 그방에서 정말로 파랗게 겁에 잔뜩 질린 색씨가 얼굴을 감싸고 나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방에 투숙해 있던 젊은 사내는 얼떨떨한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간발의 순간 젊은 군인이 다짜고짜 그 젊은 사내에게 달려 들어 손, 발, 머리로 들이 받고 난리를 부리는 것을 여럿이서 간신히 뜯어 말렸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우리들은 그 사내가 색씨의 애인쯤 되는 걸로 의심하면서 뒤따라 왔다가 남편이 잠든 사이에 색씨가 몰래 그방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왜냐하면 그당시는 부모가 당사자 의사와는 상관 없이 소한마리 값을 받고 억지로 결혼 시킨다든지 하는일이 있어서 종종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나름대로 쓴 소설같은 추리이고 나중에 밝혀진 전후사정은 이러했다.

젊은 부부는 고된 신행길임에도 아마도 운우(雲雨)의 정을 나눴던 모양이다. 잠을 자다가 소피를 보러 색씨가 화장실로 나오면서 방을 못찾을까봐 문을 살짝 열어 놓았다. 일을 마치고 비몽 사몽간에 자기 방을 찾아 들던중, 마침 혼자 투숙한 젊은 사내도 날씨가 더워 문을 조금 열어 놓고 잤는데 색씨가 이방을 자기 방인줄 알고 들어가서 사내 옆에 누웠던 것이다. 젊은 사내는 여관 조바가 남자 생각이 나서 찾아 들어 온줄 알았단다. 사내가 가만 놓아둘리가 없었다. 색씨는 힘도 참 좋으세요 하더란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잠에 곯아 떨어져 버린 것이다. 어쨌든 젊은 사내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정도로 흠뻑 두드려 맞으면서 살려 달라고 빌었다.

젊은 군인은 팔짝 팔짝 뛰었다. 날이 밝는대로 색씨를 고향으로 보내고 이혼한다고 했다. 같이 못산다고 했다. 색씨는 얼굴을 감싸고 울기만 했다. 왜 안그러겠는가. 졸지에 날도둑놈한테 정조를 도둑 맞았으니 어찌 제 정신이겠는가. 자..어떻게 한다. 수습 또한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소동이 일어난지 2시간 정도 흘러서 어언 새벽 5시 가까이 됬다. 나는 젊은 군인을 불렀다. 조금 진정된듯 보였다. 서울가는 첫차는 새벽 6시인데 색씨를 보내려면 첫차를 태우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너무 황당한 일이고 이왕 이렇게 된것 우리들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니 나쁜 꿈을 꾼 것으로 생각하고 묻어두라고 달래면서 화천가는 첫차가 6시 30분에 있으니 그차를 함께 타고 가라고 했다. 신랑은 완강했다. 서울가는 첫차로 색씨를 보내겠단다. 주인과 나는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더 이상 관여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새벽 5시 50분경쯤 젊은 군인이 다가왔다. 내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다. 어, 그런데 일단 색씨는 화천으로 데려 가겠단다. 어쩻든 잘 결정했다고 다둑거려 주었다. 남의 정조를 훔친 젊은 사내는 내가 특별히 관리해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우여 곡절 끝에 젊은 군인 부부는 6시 30분 화천가는 첫차를 탓다. 물론 손을 잡고 가지는 않았지만 차를 타는 모습은 내눈으로 확인했다. 몇 년후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친구는 그후 어떻게 됬느냐고 물었다. 나는 뭐가 어떻게 돼 이친구야,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지 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