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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0-07-12 10:07
조회 :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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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바람 거느리고/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 예순 남은 일이/하늘 뜻 그대로였다
삼천 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 …
제헌절 노랫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문리터득(文理攄得)’이라는 네 글자에 신음했다. 깨달음 없이 글을 쓸 수 없다는 나 자신의 올무에 걸려 남몰래 속을 앓아왔던 거다. 담원 정인보 선생은 환웅이 비구름바람을 거느리고 어떻게 인간을 도우셨는지 알아냈을까? 생명과 질병, 형벌과 선악 등에 관한 360가지 법을 선포하여 인간세상을 교화한 반만년의 언약을 오늘날 이 겨레가 새 걸음으로 이룬다는 노랫말이 기이(奇異)하다.
고조선 건국을 신화다 역사다 단정하기에 앞서 나는 그 안에 ‘깊은 뜻’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승 일연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야기가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라는 역사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전설이나 가담항설을 적은 것이 아니라고 명토를 박아놓은 셈이다. 그런데도 나는‘신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선사는 고조선의 건국역사를 ‘기이(紀異)’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선사는 신비스럽고 기이한 데서 나왔다하여 어찌 괴이하다하느냐 반문하고 있었다.
나는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 ‘배경’을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천제(天帝) ‘환인’은 하느님의 다른 이름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이름을 ‘여호와(야훼)’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모슬렘은 ‘알라’를 외친다. 중국인들은 하느님을 ‘상제(上帝)’라고 부른다. 천제의 아들 환웅은 사람이 아닌 신이었다. 그는 인간세상을 다스려보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가 천계에서 거느리고 온 풍백, 우사, 운사나 3천 무리도 당연히 신들이다. 하늘의 신들이 조직을 만들어 세상을 다스리려고 내려온 것이다. 신화이건 실화이건 논리만큼은 정연해야 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단군신화는 비논리의 전형이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오기 전부터 인간들은 세상에 살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환웅이 비구름바람뿐 아니라 곡식을 가지고 내려왔으니 고조선 때에 이르러 농경사회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람이고 초목이고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구름은 바람결에 흘러가고 때에 따라 비도 내렸을 터이다. 인간 세상에 이미 비구름바람이 있는데 환웅이 굳이 비구름바람을 또 거느리고 내려간 까닭은 무엇일까? 삼국유사는 ‘홍익인간’이 다름 아닌 ‘인간교화’라고 기록하였다. 불현듯 나는 풍백, 우사, 운사와 3천 무리가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교화하는 데 필요한 존재였다는 깨달음에 전율한다. 360가지 일 가운데 ‘질병, 형벌. 선악’ 이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세상은 하늘이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였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교화하는 근본 방편은 ‘참된 말’이다. 성경은 내리는 비를 하느님의 교훈이며 말씀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비를 고대하는 연한 풀이나 채소가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헛되이 살아왔다. 비가 하느님의 교훈(말씀)이면 비를 머금은 구름은 무엇이며, 구름을 운행하여 세상에 골고루 비가 내리도록 돕는 바람은 무엇일까? 바람이 일어야 구름이 움직이며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그들은 같은 일을 하는 한조직 아닌가.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베풀고 나라를 다스릴 적에 ‘인간’은 이미 세상에 살고 있었다. 곰과 호랑이가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 할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한테 건네준 ‘신령한 쑥과 마늘’이 과연 무엇이기에 그것을 먹으며 백일을 견디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짐승이 사람이 될 수도 있을까? 곰과 호랑이는 글자 그대로 맹수였을까?
나는 ‘짐승’을 입에 올리며 살아왔다. 아무개는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다, 누구는 사람의 탈을 썼을 뿐이라고도 했다. 때로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성경은, 깨닫지 못한 자를 ‘멸망하는 짐승’이라 하였다. 국어사전은 짐승을 ‘매우 잔인하거나 야만적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설명한다. ‘짐승’은 야만인이며 멸망당할 인생이며 잔인하고 우매무지한 인간이다.
세상의 깨닫지 못한 허다한 ‘인간짐승’ 가운데 간절한 마음으로 진정 사람이 되고 싶은 ‘짐승들’이 있었으니 곰과 호랑이가 아니던가. 두 짐승이 받은 ‘신령한 쑥과 마늘’은 그들을 사람으로 탈바꿈시키는 하늘의 양식 곧 환웅이 천제께 받아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신령한 말씀’이다. 그러나 누구나 말씀을 듣고 ‘사람’이 되는 건 아니리라. 선량하고 우직한 마음가짐으로 날마다 신령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어둠 속에서 백일을 견뎌야 한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좋은 땅’이라 기록하고 있다. 곰은 인내로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여자’가 되었다. 호랑이는 참아내지 못했으니 성경은 호랑이와 같은 부류를 ‘돌밭’과 ‘가시떨기’라 하였다.
이제야 나는 천하에 사람이 넘치는데도 혼처가 없는 웅녀가 매일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비손한 연유를 알았다. 신령한 쑥과 마늘을 먹고 견딘 곰은 하늘이 바라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인두겁을 쓴 ‘짐승’과 혼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가 곰이었으면 어찌 혼인할만한 ‘짐승’이 없었으랴.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로 수태케 하였으니 단군은 ‘사람의 몸을 받은 신의 소생’이다. 성경의 기이한 기록들은 무조건 믿으면서 단군의 탄생은 그저 ‘신화’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 자신을 우물 안에 가두어왔었다.
일연선사가 기록한 ‘고조선 건국 이야기’는 다시 읽어봐도 모순투성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순덩어리 속에서 기원전 2333년 조상의‘메시지’를 읽어내고 싶었다. 나는 고조선의 기원을 내 보잘 것 없는 지식과 경험, 지혜의 그릇에 도저히 담아낼 수 없었기에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조물주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성경의 기록이기에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다는 구절은 아무리 궁리 해봐도 기이하기만 했다. 그렇게 창조된 ‘산 영(생령)’이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이라니 생기를 불어넣기 전의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제 나는 기연을 얻어 경전에 기록되어있다 하여 무턱대고 믿는 것이야말로 천지간에 낯 뜨거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비논리를 맹신하는 것은‘거짓신앙’과 다름없지 않은가.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참’이 아니니 구도하는 내 심중에‘비논리’를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필계' 201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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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7-13 2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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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단군신화에 얽힌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학창시절 이어령 저 한국과 한국인에 일연의 삼국유사를 논하는 가운데, 단군신화를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늘과 쑥으로 환생하는 인간사를 신화라 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우리 인생사와 맞아 떨어지는지를 깨닫고 놀라와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제 선생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더 우리 건국신화를 재조명 해보게 되어 뜻깊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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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07-14 1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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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온전하되 제 자신이 깨닫지 못함으로 인하여
마음 가운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비논리를 남겨둔 채
헛되이 살아왔었습니다. 깨달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항상 후학을 아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후텁지근한 장마철입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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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0-07-14 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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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교문을 들어서면 큰 히말라야시타 나무 곁에 '홍익인간'이라고 쓰여진 팻말이 보였습니다. 선생님께 여쭈어 설명을 들었는데도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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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07-15 1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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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은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으로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시되어있습니다.
어쩌면 법률로 규정한 용어치고 이처럼 두루뭉술한 말도 별로 없을 듯합니다만
교육에 의한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 곧 홍익인간의 이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환웅이 하늘에서 거느리고 내려온 비구름바람과 삼천무리, 360가지 일은 모두
인간교화에 필요한 조직이며 스승이요 이념이요 법이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당시 인간세상은 극히 혼란하고 무질서하여서 그대로 방치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들을 하늘의 도(道)로, 짐승과 같은 상태에서 사람다운 사람들로 환골탈태토록 교화하는 것이 바로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절제되고 세련된 글에 매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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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0-07-16 0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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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홍익인간'이 법에 규정돼 있는 문구이군요. 그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많이 배웁니다. 요즘은 주지적이고 사유적인 글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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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07-21 0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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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글 의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필계 2010 여름호'에서 읽고 다시 읽으니 새롭네요.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영국의 사회학자 스펜서가 말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 말씀에 갸웃할 때가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무조건 믿음인데 그게 잘 되질 않으니 죄인이라고
교회 갈 때마다 용서를 비는 어리석은 백성이지요.ㅋ
늘 격조 높은 글을 쓰시는 선생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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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07-22 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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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작품을 대할 적마다
단편적으로나마 선생님의 활동소식을 전해 들을 적마다
아름다운 실버와 청춘의 개념을 함께 생각게 됩니다.
후학은 선생님의 함자만 보아도 그저 좋습니다.
선생님의 귀하신 답글로 말미암아
의문에 순종치 말라는 경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초복 지난 여름의 절정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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