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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월간문학 7월호 발표)

최서해 작가의 넋을 위하여

최 복 희

  망우산에 갔다.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는 곳, 한식을 앞 둔 주말이라서 그런지 성묘객들의 발길이 붐볐다.
 
  말끔히 단장된 봉분 앞에 제물을 놓고 공손히 절을 올리는 성묘객들을 보고 있으면 무덤엔 죽은 자의 혼이 머물고 있는 것만 같다. 문득 찾는 이 없어 잡초가 무성한 최서해 묘가 생각났다.
 
  최 작가의 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4년 7월 9일 서거 72주기를 기념해 ‘우리문학 기림’ 회원들이 문학 비를 세워놓은 뒤였다. 그의 소설 몇 편을 감명 깊게 읽은 터라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문학 비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반가웠다.
 
  하지만 비탈에 제비집처럼 붙어있는 묘를 찾아내곤 아연 실색 했다. 비좁은 배계절(拜階節)엔 상석도 없고 소박한 봉분 앞엔 볼품없는 작은 비석 하나 달랑 서 있다. 비석 뒷면에 ‘그믐달, 탈출기 등 명작을 남기고 간 서해는 유족의 행방도 모르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누웠다가 여기 이장되다. 이장위원’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망우산에 묻힌 역사의 족적을 남긴 작가와 정치인, 독립운동가 들의 묘는 잘 가꾸어져 있는데 그곳만은 잡초가 무성해 돌보는 이가 없다는 것이 역력했다. 한 때는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인데 점점 잊혀져가고 있어 안타깝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최서해(曙海)의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다.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城津)에서 출생한 그는 1923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해서 1932년 사망할 때까지 두 권의 단편소설과 한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평론, 수필, 시 등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고 한다.
 
  가난한 농군의 현실을 그린 <탈출기>는 자신의 상황을 그린 만주 간도에서의 체험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이며 대표작이다. 그 외의 작품 <홍염> <큰물 진 뒤> 등에도 질곡의 삶이 질펀하게 펼쳐져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작가들 중엔 가난, 질병 등에 시달리면서도 치열하게 창작 활동을 하다간 사람들이 많다. 그 또한 일본 강점기 때 나라 잃은 설움과 곤궁한 삶 속에서 학교 수업도 제대로 못 받고 문학의 열정을 불태웠다. 결혼은 네 번이나 했으나 아내의 사별, 가난으로 이혼을 반복했고, 1932년 7월 9일 위문협착증(胃門狹窄症)으로 32세에 요절했다. 약자 편에 서서 좋은 사상을 가지고 글을 써 문학적으로 성공은 했지만 가정적으로는 불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을 여러 번 해 자손도 있으련만 어찌된 일일까.
 
  지금 그가 누워있는 곳에선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이 병풍처럼 두른 동부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빌딩숲이 들쑥날쑥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이 명멸하는 거대한 서울을 보며 그의 넋은 무슨 생각에 잠길까.
 
  나는 심신 단련을 위해 망우산을 찾아 걷기 운동을 하며 그곳을 자주 보게 된다. 문학 비를 세운 사람들도 어느새 그를 잊었나보다. 벌초를 하지 않은 봉분은 마른 잡초가 뒤덮여 있어 가난에 찌든 초췌한 작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끼니 걱정 않고 명이라도 길었으면 더 좋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기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자전적 소설을 읽으면서 암울한 시대에 빈곤한 삶이 처절하게 느껴져 가슴 답답했는데, 죽어서도 무덤 앞에 술 한 잔 따라주는 이 없으니 서해의 혼은 지금도 굶주림에 떨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봄이 되면  무덤 앞에 풀꽃도 꺾어다놓고, 가끔 새 먹이를 들고 가 비석 앞에 뿌려놓고 산새들을 불러 모은다. 외로운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줄까 해서.
 
  죽은 자의 혼은 그를 기억해 주고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갖는 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찾아오지 싶다. 내가 최서해 작가를 만난 적 없어도 작품을 읽고 영혼과 조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풍요 속에서 무명 명작가로 사는 내가 세상을 하직한다면 내 무덤을 찾아 주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살아있을 때 가족은 물론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과 많은 정을 나누며 세상에 좋은 글을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 이곳에 들를 때마다 게으른 내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러다 발길을 돌리면 작은 산새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혼령의 소리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