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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0-01-24 22:03
조회 :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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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문을 여니 다롱이는 수술한 다리를 높은 곳에 올려놓고 누워 있다가 나를 보고 “선생니임―”하며 우는 소리를 한다. 쌍둥이 언니인 아롱이가 놀라며 “큰아빠다.” 한다. 하얀 붕대로 친친 감은 다리를 만져 보았다. 아픔을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도 예쁘다. 아이들 엄마와 함께 앉아있던 여인이 ‘큰아빠’란 말에 나를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롱이가 ‘큰엄마 모셔다 준다.’며 따라 나선다. 순간 좀 머쓱해졌다. 아이들의 진짜 큰엄마 앞에서 옛 선생인 내가 큰아빠라 불렸기 때문이다.
쌍둥이 자매인 아롱이, 다롱이를 만난 것은 시내 어떤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한꺼번에 문학동아리와 학교신문동아리 지도를 맡게 되었는데, 아롱이는 신문동아리 회장을, 다롱이는 문학동아리 회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신문동아리보다 문학동아리에 더 눈길이 갔다. 자연스럽게 동생인 다롱이가 더 나를 따랐다. 나는 아롱이에게 미안할 것도 없으면서 미안했는데, 자매는 서로 시기하거나 속상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쌍둥이라도 성격은 많이 달랐다. 언니는 목소리부터 작고 다소곳하고 웃을 때도 손가락이 가냘픈 하얀 손을 먼저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동생은 나를 보면 먼데서도 쫓아와서 대뜸 팔짱부터 끼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물론 목소리도 더 크고 항상 덜렁대며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거나 말거나 뒤에서 끌어안기도 하고, 연구실까지 쫓아와서 안마를 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면 ‘아빠 다음에 선생님이에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농담으로 ‘그러면 큰아빠라고 하지?’ 했더니 ‘정말요? 정말 그래도 돼요?’ 하면서 돌아가신 큰아빠가 살아오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애들의 큰 아빠가 되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네 식구가 조문을 왔다. 나는 굴건제복을 하고 그 애들의 아빠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만남인데도 아빠는 아이들보다 한술 더 뜬다.
“아이들이 큰아빠라니 제게는 형님이 아니십니까? 형님이 상을 당하셨는데 인사 오는 게 당연하지요.”
말은 그렇다. 그러나 마음이 당연하니 말로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형님'도 되었다. 그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도 시숙 노릇을 해야겠기에 문병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롱이, 다롱이 자매는 이름보다 심성이 더 예뻤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들의 올곧은 마음씨는 아이들 같지 않았다. 사내 같이 덜렁대는 동생 다롱이는 여자중의 여자인 언니의 언니노릇을 했다. 자상하고 따뜻하게 언니의 하루를 끊임없이 챙기고 또 챙긴다. 언니 아롱이는 동생 다롱이가 없으면 홀로 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롱이는 언니인 아롱이가 없으면 사는 맛도 잃을 것 같았다. 둘은 이름처럼 붙어 다녔다. 자매임에도 다른 아이들이 질투를 느낄 만큼 우애가 있었다.
고3 때 아롱이, 다롱이는 이름을 바꾸어 혜진이, 주현이가 되었다.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롱이’, ‘다롱이’는 예쁘기는 하지만 ‘아롱다롱’이 한 낱말이니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언젠가는 독립해야 할 이들에게 따로 따로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은 바뀐 이름처럼 독립했다. 언니는 청주에서 대학에 가고, 동생은 아주 멀리 해안 도시에 있는 해양대학에 입학했다. 다롱이가 말로는 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했지만, 집을 떠날 때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롱이는 동생 없이도 대학을 아주 잘 다녔다. 꼿꼿하게 혼자 서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그 애들은 어느새 완전히 따로 선 둘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나를 찾아올 때로 따로따로 왔다. ‘아롱이, 다롱이’가 아니라 ‘혜진이, 주현이’이기 때문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대학을 졸업하고 언니는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되었다. 하얗고 예쁜 얼굴에 하얀 가운을 입고 간호사 캡을 쓴 그 아이를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동생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입대하여 여군 소위가 되었다. 평생 꿈이 군인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쌍둥이인 그 아이의 해양만큼 깊은 마음을 잘 안다.
사관학교에서 유격훈련을 하면서 삐끗한 발목을 이번에 수술 받은 것이다. 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이제는 언니의 간호를 받는 동생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우애에 감명을 받았다. 힘들게 야간 근무를 하고 나서도 쉬지 않고 동생 곁에 붙어 있다고 한다. 그런 이 아이들의 모습이 여고시절보다 더 예쁘다.
동생이 없는 나는 ‘형’이란 부름도 ‘오빠’라는 부름도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니 ‘큰아빠’라는 부름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롱이, 다롱이의 만남이 하늘도 내주지 않은 ‘큰아빠’를 선물한 것이다. 아롱이, 다롱이 덕으로 큰아빠가 되었을 뿐 아니라 형도 되고 시숙도 되었다.
다롱이는 장교로 임관되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충성―’하고 소리 질러 경례하던 낯선 군기는 어디 가고, 여고 때 여우같은 소녀로 돌아와 병상에 누워 있다. 내가 가져간 피자를 먹는 아이들이 조카딸만큼 가까워 보였다. 돌아올 때 아빠가 따라와 자기 형님에게 하듯 정중하게 승강기 문을 열어 주었다. 병원을 나오니 온 세상이 하얗다. 눈 쌓인 솔숲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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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0-01-24 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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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아롱이 다롱이와 자상하고 든든한 선생님의 가족 같은 사랑에 가슴이 따스해집니다.
이렇게 사제지간에 정이 있다면 소외되는 아이들도 없어지고 학교가 행복한 곳이 되겠습니다.
이방주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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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25 2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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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만날 대 제자라는 생각보다 그냥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아주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소외되는 아이들은 아주 많습니다. 스스로 담을 쌓는 아이들도 있고, 주변이 쌓아놓은 담을 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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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0-01-25 1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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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연이군요.
선친 돌아가셨을 때, 상청에 나타난 그 아버지의 조문의 말
이 인상적이군요.
추운 겨울날 훈훈한 이야기가 유독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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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25 2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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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 아이들의 아빠가 정말로 자식들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훌륭한 아빠였습니다.
이제 자매가 서로 떨어져 독립한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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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01-25 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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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좋은 인연 길이 간직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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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25 2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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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복이 많은 거지요. 좋은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들의 부모까지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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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1-26 1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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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아롱이 다롱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하시면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정감있는 글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이라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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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27 1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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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전 회장님 안녕하세요
학교라는 곳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고 또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순수한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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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01-26 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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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답고 가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정 많은 선생님이기에 제자들이 많이 따르리라 믿습니다.
문학은 글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행복을 주는 글을 쓰셨으니 작가로 성공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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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27 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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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문학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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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승 |
10-01-26 2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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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들이 엮이고 엮여 아롱다롱 하는 이야기입니다. 쌍둥이인데도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군요. 간호사와 군인, 혜진이와 주현이가 주는 어감만큼이나 다른 것 같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그저 말로만 큰아빠가 된 게 아니라 진짜 큰아빠가 된 것 같습니다.
아롱이와 다롱이의 행복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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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27 1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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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승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람을 알고 사람과 인연을 맺어 간다는 것이 정말 삶의 행복인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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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0-02-18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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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항상 마음 속에 간직돼 있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아니 네가~" 라며 뺨을 때리시는 손길에서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셨던 분입니다. 뺨을 맞게 된 이유는 비밀입니다만 맞을 짓을 했거든요. 아롱이 다롱이의 가슴 속에도 선생님의 사랑이 간직돼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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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3-01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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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요즘에는 아이들 빰을 때리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맞아본 뺨은 별로 좋은 기억이 없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대리는 교육은 별로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원리 참 좋아진거지요.
우리 때야 종아리, 엉덩이, 손바닥, 뺨은 으레 내놓고 살았잖아요.
선생님께서
옛 선생님이 때리시는 손길에서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셨다니
참으로 모범생이셨나 봅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도 참으로 훌륭하신 선생님이셨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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