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난시절 황태자라고 부르던 박모씨가 660억의 비자금을 이리저리 감추었다가  맡겨두었던 사람들이 슬쩍하여 고소를 하고 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보고 문득 생각이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나는 공직생활을 오래한 탓에 친구들 이외에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오는 사람들은 주로 무슨 부탁을 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지식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느날 무려 30 여년만에  동창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학교 다닐때는 꽤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전혀 연락도 없이 지냈으니 친구라고 할수도 없고 그냥 동창이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것 같다. 

나 누군데 기억 나는가?

누구라구?  아..그래 오랜만이다   왠일이냐 ?

그냥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봤어..

이사람아  그래 생각이 몇십년 지나서 났는가 하하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

응   이럭 저럭 살았어. 

난 이친구가 대학 다닐때 열심히 데모 현장을 쫒아 다니다가 모기관에 끌려가서 혼쭐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너  대학 다니면서 데모 많이 했다며?

아. 모두 옛날 이야기지 뭐.

음 , 그래  그런데 어쩐일이냐?

나는 속으로 이친구가 무슨 부탁을 할려고 나를 찾았는지 약간의 부담감부터 느꼈다.

한번 만나서 상의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럼 그렇겠지 ..

내가 보고 싶어 몇십년만에 전화를 걸 리가 있겠나 하고

무슨 일인지 어디 말해봐.

말로는 곤란하고 만날 수 없을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전화로 대답하고 끝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도 요즘 시간도 좀 있고 모처럼 이친구의 얼굴도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만나자는 제의를 거절하는것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일인 것 같아서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이친구는 당장에 만나자고 했다 .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도 마음이 영 부담스러웠다. 30여년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은 한마디로 낯설었다.  이친구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나는 어이하고 손을 들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자세히 살펴 보고서야 옛모습이 조금 생각날 정도였다 . 

빨간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메고 그 위에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왠지 영 어색한 복장이었다.  머리는 염색을 하다가 중단했는지 가수 박상규처럼 하얀 백발이었다. 나는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궁금했으나 가급적 무리한 부탁이면 거절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친구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우선 금전적인 고민을 이야기하는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소송이나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친구는  자기 말로는 대학을 졸업한후  이런저런 생활을 하다가 최근에는 정권의 어떤 실력자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비자금을 관리하게 되었다고 했다. 무기명 채권 100 억원짜리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어딘가에 보관하려고 하는데 마땅치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이지 도대체가 황당한 제의에 어이가 없었을뿐  나는 이친구의 말을 하나도 믿지 못했다. 이친구가 제의하게 된 동기를 말하는데  은행 금고도 안심이 안되고 또 자기나 그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게 되면  추적을 당할 때 틀림없이 발각이 되기 때문에  적합한 사람을 찾다가  나에게 연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를 어떻게 믿고 100억원을 맡긴다는것이며 그리고 몇십년만에 만나서 그런제의를 한다는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에대해서 이친구는 그동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내 소식을 꾸준히 듣고 있었으며  나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하면서 내가 부탁하기에 아주 적합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이친구가 무슨 사기를 치려고 하는 수작이 아닌가 하고 좀 긴장했다. 그래 그 돈을 어떻게 맡아야 되냐고 물었다. 대신 집문서를 맡기라고 하려는건가, 아니면 어떤 보증을 서라고 하려는건가 , 아니면 무엇을 대신 내놓으라고 하는건가. 아니면 있는대로 돈을 역보관하라고 하라는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어쨌든 이상한 요구를 하면 이건 틀림없이 사기치는거니까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이친구는 보관증 한 장만 써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례는 충분히 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거야 별로 부담가지 않는것 아닌가,

음 ..그래, 그 채권 지금 가지고 있냐 ?

아니 오늘은 가지고 오지 않았어 , 자네가 승낙하면 내일여기에서 다시 만나서 보관 시킬게 .

흠. 그렇다면 가지고 와 봐라 .

이 친구는 내가 승낙하는 기미를 보이자 아주 반색을 하며 고맙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밤새껏 한잠도 못잤다. 100억원을 보관하면 나중에 얼마를 사례해 준다는 말인가. 1억 아니면 10억   요것이 우선 궁금했다. 말년에 운수가 트인다더니  내 별명대로 강물 팔아 돈버는 봉잡는 일이 생기는건가보다 . 그런데 막말로 내가 맘이 변해서 100억원을 가로채면 지네들이 어떻게 할건가. 에이 그래도 그럴순 없지,  나를 믿고 찾아 왔다는데  마음이 약한건지  순진한건지 가로채는 것은 도저히 안될것 같았다 .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고  그날따라 밤에 왜 그렇게 소변이 마려운건지...

-2화-

새벽 5시경에 눈을 뜬후에는 아예 세수를 하고 혼자서 싱글거리기도 하고 문득, 아니야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하면서 골똘히 이생각 저생각하기도 하고, 밥먹는데도 집사람이 왜 그러냐고 몇 번인가 물었는데도, 음? 아니야. 하는 말로 얼버무렸다. 약속시간이 왜 이리 빨리 안되는지  십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있다가 1시간도 더 일찍 약속장소로 나갔다. 커피를 시켜놓고 건성으로 신문을 뒤적였다. 다방에 있는 신문이란 신문은 모조리 읽었다.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이 넘어섰다. 왜 이렇게 안오는거지?   혹시 나오다가 누구한테 소매치기라도 당한건 아닌가. 테러같은거 당한건 아닌가,   거의 한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혹시 교통사고를 당한게아닌가 하는 염려로 걱정되기까지 했다. 좌우간 전화를 걸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연결했다. 신호음이 갔다 .

여보세요~~ 왠 여자 목소리가 나온다.

아무개 핸드폰 아닙니까 ?

네 맞는데요.  제가 안사람인데 누구신가요? 
아, 네, 친구인데 이친구 좀 바꿔주실수 없나요? 

지금은 안되는데요.

어디갔는가요?

병원에 계세요.

앗! 틀림없이 교통사고를 당한것 아닐까 하는 내 직감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가요?

그게 아니고 치료중인데요.

무슨 치료인가요? 

.....여긴 정신병원이에요...

네에? 나는 내귀를 의심했다. 

저 혹시 또 이 이가 무슨 황당한 말이라도 한것 아닌가요? 

네?  아..아니 아닙니다..

나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팔뚝을 꼬집어 보았다. 

아팟다. 그럼 여우에게 홀렸나? 

아....100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