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광택 /박 원명화  

 

   가을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늦은 밤.

창가에 놓인 책상에 걸터앉아 어둠에 싸인 아파트 숲을 바라본다. 

바둑판같은 창문에는 불 밝힌 집도 있고 더러는 꺼진 집도 있다. 

모두가 그런대로  행복해 보인다. 가로등이 우뚝 서있는 주차장 마당에는 

어느새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반듯하게 정돈된 차량들이 누군가가 

알뜰하게 매만져준 흔적처럼 보인다.  

  그편에서 내 쪽을 보아도 그리 행복해 보일까? 겉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속은 주차장의 차들처럼 정연하지 못하다. 무딘 삶에서 일탈을 

꿈꾸며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 자신을 잔잔히 비쳐보기도 전에 문학에의 의지를 

불태운답시고 결국 잡풀 같은 욕심만 키운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없다. 

꽃이 떨어지는 아픔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에 눈을 

뜨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는지…. 

  책읽기를 좋아했던 게 그 도화선이었다. 책속에 묻혀 있을 땐 내 영혼은 멋진 

연애에 빠진 사람처럼 달콤한 감상에 젖곤 했었다. 역시 하고 싶은 일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며 전류 같은 삶의 환희를 느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나날이란, 그런 행복만을 마냥 이어갈 수 없었던 게 현실의 한계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10대, 소설을 쓰겠다고 덤벼본 20대, 그리고 결혼, 이후 

30여년은 문학공백 시대였다. 이따금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낙서류의 글들을 

끼적거려 보긴 했었다.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렁저렁 사는 동안 나름대로 제법 

추억거리들을 만들었던가 싶다. 그 속에서 행복의 순간들을 건지기도 하고 

문득문득 몸살 같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가랑잎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면 주체할 수 없는 영감(靈感)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글쓰기를 부추겼다. 

  처음 수필 문단에 연을 갖게 된 것은 자의 반 타의반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이 장에 가는데 나도 따라가는’ 격으로 등단을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하면서 차츰 수필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의 글

쓰기는 항상 시작하는 마음자세다. 쓰고 퇴고하기를 여러 차례, 나 혼자 삼매경

에 취해 하얗게 밤을 밝힐 적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미완으로 미뤄지거나 

어쩌다 완성한 작품이라 해도 이튿날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적정치 못한 

문맥들이 즐비하게 눈에 띈다. 그야말로 치졸하기 그지없는 졸문(拙文)을 써 

놓고 나 혼자 좋아한 셈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정신이 맑아지기보다는 탁해져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는 울고 들어와서 웃고 나가고, ‘수필’은 

웃고 들어와서 울고 나간다는 말이 요즘 들어 자꾸만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일상의 삶에 리듬이 있듯 글쓰기에도 리듬이 있다. 내 마음 흐름대로 글을 쓴다 

해도 반드시 그렇게 다 채워지지는 않는다. 수필은 픽션이 아니어서 한결 더 

조심스럽다. 특이한 고해성사라고나 할까.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한 점을 그대로 바탕화면에 깔고 문학적 양념을 알맞게 칠 줄 아는 재능이 

긴요한 작업이다. 작가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그 재간이 내게는 매우 미흡하다는 

생각, 그래서인지 글쓰기가 갈수록 두려워진다. 

  글쓰기는 인격형성의 묘약이라고 여겨진다. 글쓰기 재료들을 대체로 내 주변의 

이야기나 가족, 혹은 이웃들의 생활 속에서 얻기 때문이다. 얘기의 안과 밖의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에게서 끝낸다. 일상의 범주 속에서 감성을 풀다

보니 흔히 말하는 신변잡기라고 꼬집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수필의 

특성상 글감 재료의 대부분이 작가의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던가.  

  주변 이야기를 자주 쓰다 보니 모두가 그게 그것 같다. 그래도 불을 지펴보겠다

는 내 욕망은 멈출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어느새 강산이 변한

만큼의 세월을 훌쩍 흘려보냈다. 나름대로의 보람도 건지고 즐거움도 만끽

했으니 후회는 없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연출에 각색까지 일인 다역을 

소화하며 진실한 내 색깔을 칠하게 될 때, 비로소 나는 작가로서의 내 자신과 

만나는 것을 느낀다. 

  어찌 생각하면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간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기에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서도 희로애락은 이어지고 삶의 질을 변화 

시켜준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평범한 삶속에 재미있고 알찬 글감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아직도 내 가슴에는 

하늘을 날고 싶은 봄이 있고, 심신을 풍요하게 꽃피우는 여름이 있고, 완숙의 

햇살이 스며드는 가을이 있고,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회춘을 기약하는 

겨울이 있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역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애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그릴 때의 그 짜릿한 맛을 뭐라 말로 표현 할 수 

있으랴. 더러는 주연으로 혹은 조연으로 등장한 내 글을 읽으면서 흐뭇해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집안 가득 무엇인가 차오르는 행복이 있음이 즐겁다. 그것이 

기쁨사연이든 슬픈 사연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