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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09-12 11:03
조회 :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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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휴가
박 영 보
난파선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의 판때기에 매달려 무인고도에 표류된 21세기의 로빈슨 크루소우(Robinson Crusoe)가 돼보고 싶다. 실제로 그 배가 난파선이었다면 선주에게는 재산상의 피해도 있었을 것이고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말고도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명피해 같은 불행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니 난파선이라기보다는 타고 온 배가 나를 무인도에 덜렁 내려놓고 떠나 버렸다고 해 두자.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나 혼자서 일인용 소형 보트나 뗏목을 타고 가다가 심한 파도에 보트인지 뗏목인지를 잃고 무인고도에 표류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육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게 되는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가족도 친지도 또는 인간이라고는 나 하나 밖에는 아무도 없는 세계에 와 있게 되는 것이며 그 흔해빠진 휴대용 전화도 없는 무인도에서 세상이나 인간과는 완전히 단절이 돼있는 상황에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낯선 생명체가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섬의 터줏대감인 동물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기웃거리기도 할 것이고 물새들은 주변 하늘을 맴돌며 '끼악, 끼악' 소리를 지르며 저들끼리 경고의 신호를 건네기도 하겠지.
밤이 되면 식어져 가는 백사장에 누어 별빛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도 마련이 될 터이니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이런 곳에 혼자 동떨어져 있으면서 한번쯤은 고독이라는 것도, 외로움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거나 느껴보게도 되겠지. 그러다 보면 아귀다툼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세상 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될 것도 같다. 더러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세상을 사는 맛'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마른 풀잎과 나뭇가지를 모아 놓고 부싯돌로 불씨를 만들고 물 속 바위에 붙어 있는 굴이나 홍합 같은 것을 따다가 익혀 먹는 체험도 해 보고도 싶다. 불씨가 일지 않으면 날것으로 먹으면 또 어떠랴. 야생의 열매나 풀도 며칠간의 한 생명을 이어 가는데 도움이 되겠지.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는 해나 달이 뜨고 지는 그 횟수에 의해서만 계산이 가능했던 지난 일주일이 지나고 있을 때 멀찌감치 지나가는 고깃배 하나가 눈에 뜨인다. 나의 존재를 알리 고 구조요청(?)이라도 해볼까 하여 마른풀을 태워 연기를 피운다. 옷가지를 벗어 흔들어 본다. 그 배가 다가온다. 내가 만일 거울을 볼 수가 있다면 햇볕에 그을리고, 텁수룩하고 초췌해진 몰골이 말이 아니겠지. 나 자신도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 볼 수가 없을 만큼 변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주일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을, 아니 나는 본래부터 이곳에서 원시인처럼 살아오고 있었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난생 처음 뭍에 나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나가 보게 되는 것이다. 문화나 문명의 엄청난 차이에 놀라며 어리둥절해 하겠지.
집이라고 돌아오니 몇 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오며 정들어온 녀석들, 기어오르고 꼬리 치 며 아양을 떨던 '진저(Ginger)'와 '코지(Cozy)'가 제 주인도 몰라보고 짖어댄다. 개 짖는 소리에 아이들이 창문 틈으로 삐끗 내다보며 "엄마, 누가 왔어."라며 아내를 부른다. 망할 것들, 제 아비도 몰라본다. 현관문을 빼 꼼이 열고 "누구세요".
제 남편도 몰라보는 마누라.
화씨 백도가 오르내리는 이 무더위에 한번쯤 이러한 상황에 빠져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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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9-13 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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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여름휴가는 이박삼일 길면 삼박사일을 주는데 일주일 동안이나 휴가를 받으셨으니 꽤 괜찮은 회사인가봅니다. 그 일주일 동안 고생이 많으셨군요. 아내도 몰라볼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카페에 자기 소개난에 무인도에 가면 꼭 필수품 세가지를 들라고 하면 뭐 컴퓨터 여자 그리고 뭐 서적 등등 많은데 아무 것도 가지고 간 것이 없으시니 일주일동안 지루 하셨을 듣합니다. 전 무인도가 아니라 여성들만 사는 외딴 섬이 있다면 한 번 잡혀가보고 싶은 생각인데요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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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3 2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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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전 엔
우리가 어릴 적엔 전화가 없더라도
할말은 다 하면서 재낼 수 있었는데
요새는 가는 곳마다 시끄러운 휴대폰
승용차 없을 때도 갈 데는 다 갔었고
십 리길 마다 않고 걸어서 다녔는데
웬 놈의 자동차들이 가는 길을 막고 있나
인터넷 없을 때에 소식을 못 들으면
열흘도 스무 날도 기다려 주었는데
무엇이 그리 급해서 단 몇 분도 못 참나
여름엔 참외서리 겨울엔 토끼사냥
한나절 쌓인 피로 고단한 몸 녹이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단잠이나 자봤으면
<어쩌다 한번쯤 사람의 손끝이 닿지도 않은 오지에서 짧은 동안만이라도 원시인처럼 지내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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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9-14 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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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작품 올려주시니 고맙습니다.
귀한 휴가를 얻으셨군요.
공감과 소통을 위해 다른분들의 글에도 댓글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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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5 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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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같지 않은 글을 가지고 가끔 회원님들이 눈을 피로하게 해 드리는 염치를 무릅쓰고 끼어들고 있는 제 자신이 민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배우는 마음, 가르침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오니 용서 바랍니다. 본 사이트를 통하여 나눔의 시간을 갖게 되니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좁혀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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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09-09-14 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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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무인도에서 겪어보고 싶은 화려한 고독을 꿈꾸고 계시는군요, 참으로 낭만 가득한 부러운 꿈입니다. 저는 그런 곳에 떨어지면 혼자서 책이나 실컷 읽고싶습니다..하하..그리고 상상을 보태 소설 한 권을 쓰고싶습니다. '신 로빈손 크루소 이야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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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5 1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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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뜨고 귀도 열려있는 시간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아무런 생각도 없이 보낼 수 있는 다만 얼마의 시간이라도 갖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여 눈도 감아 봅니다.
귀까지는 막을 수가 없어 조용한 구석방을 찾아 듭니다. 그런데 왜 그리도 많은 생각들이 떠 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인도에 표류되어 밤하늘의 별만 볼 수 있는 눈, 풀벌레 소리나 물소리, 바람 소리만 들리는 귀만 가지고도 작으나마 삶의 의미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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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선 |
09-09-14 1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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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누군가라도 한 번쯤 겪고 싶은 마음속에 내재된 감정의 분출구가 아닌가 합니다. 그속에 갇혀
지독히 외롭고 고독하면 잃어버린 참 나를 찾을지도 모르죠.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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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5 1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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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 잔에 커피를 담아 들고 혼자서 뒷마당에 나가곤 합니다. 철제 테이블위에 놓인 찻잔 속을 들여다 봅니다. 그 안에 달이 잠겨 있습니다. 별도 보입니다. 찻잔 속에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한꺼번에 들이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것을 One Shot이라고 하더군요. 미국에서는 <Buttom Up/잔의 밑바닥이 보일만큼 치켜들어라. 즉 한꺼번에 다 마셔라 라는 뜻) 찻잔 속의 달이, 별이, 우주가 없어졌습니다. 우주 전체 모두가 제 뱃속으로 들어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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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09-15 0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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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그 무인도에서 항상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나이로 쫓겨났지, 자식들은 나 버리고 훨훨 날아가 버렸지. 아침을 뚝딱 먹고 아내는 항상 외출해 버리지. 오직 술 하나가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줄 뿐입니다. 이것이 늙음이 준 외로운 무인도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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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5 1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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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을 한 것이 두 세해 째, 큰 녀석 결혼도 삼사년 전, 작은 놈도 내년 3월이면 결혼을 합니다. 아내는 아직도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낮 시간에는 저 혼자 뿐입니다. 저도 일만 선생님의 일상을 흉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는 술이 저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술을 지켜주고 있다는 점만 다르군요. 뒷당에서 딴 복숭아, 넥타린, 석류, 자두, 무화과, 오디, 체리 등의 열매를 보드카에 담가둔 술이 지하실에 먼지가 쌓인채 보관되어 있습니다. 1 Gallon 들이 병이 아마 2~30개는 될 것입니다. 6~7년에서 10년이 넘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Fruit Wine을 만드는 것은 제가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고 만드는 특별한 목적도 없습니다. 그냥 만들고 싶어서일 뿐입니다. 이를 위해 사들인 750ml 짜리 보드카 값도 꽤 들었습니다만 그냥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회원님들께서 언제 이곳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한잔씩 딸아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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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09-18 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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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가지고 있어도 무인도에서서는 중게소가 없어서
터지지도 않으니 휴대폰은 그냥 문명 서회에서 왔다는 표시로
가져가시기를 바랍니다~ㅎㅎㅎ
아주 재밌는 상상력을 동원하시어 아침부터 상쾌한 기분을 주시네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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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8 1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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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문명사회에서 온 두 발 달린 짐승. 휴대폰으로서 정체성을 밝히는 것도 좋은 착상인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전화기에 끈을 매달아 목걸이 처럼 목에 걸고 다니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무인도의 원 주인들에게 인간과 그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도 그럴싸한 악세사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 졌습니다. 모두들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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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9-18 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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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의 상상의 나래가 아주 넓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사진의 모습은 반백의 노 신사 같으신데
늘 문학 소년, 때로는 문학에 심취한 젊은 작가로 짐작을 하게 됩니다.
글 속에 잠시 빠졌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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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9-18 1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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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의 노 신사', '문학 소년'
최선생님께서는 제가 아주 좋아할 말씀만을 골라 주셨네요. 그런데 얼굴이 화끈 거리고 있는 걸 보면 그나마 부끄러움 같은 것은 탈 줄도 아는가봅니다. 그렇지만 '문학소년'의 모습을 흉내내기 위한 안간힘을 다해 보겠습니다. '노 신사'는 되지 못하더라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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