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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라 아직 마르지 않은 산길을 한가롭게 오르고 있는데 어디서 반가운 향기가 풍겨온다. 주위를 둘러 보니 넝쿨속에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칡꽃 한송이가 아는체를 한다.
엊그제 도로가를 지나다가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장마나 끝나고 말복이나 지나서 피는 칡꽃조차 계절을 잊은듯 이렇게 일찍 나온 모습을 보니 앞으로는 계절따라 느끼는 자연에 대한 감흥도 그 맛이 점점 덜할 것 같다.
제 계절을 잊는게 마치 치매가 찾아 드는것 처럼 불행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원래 그대로의 자연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인가.
문득 같이 가는 친구에게 인생이란 본래 불행한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것인가 하고 물었다, 친구는 뚱딴지 같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날씨가 덥기는 더운가 보다하고 빈정대면서 대꾸를 안하고 가던길을 묵묵히 오른다.
산길이 가파르다면 오르는데 힘이 들어 생각할 겨를이 없을텐데 좀 평이한 길이라 잡념이 들기 시작하고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답하는 여유를 부린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것이지 불행해지고 싶어서 사는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생활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게 없고 행운이라는것은 내 인생에는 없다고 체념하고 싶은 사람. 아무 희망도 없고 기대하는것도 없지만 주어진 생명이니 마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도 기다리는 마음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특별한 기대를 하고 어떤 대상을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 연명해가는 것도 결국은 본능적으로 희망을 품는 같은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을 기다린다는 말인가 .그냥 사는것 같지만 벌거벗었던 때의 모습이라도 찾을수 있다는 기다림이 살게만든다
기도하는 마음이나 수도하는 정신은 때묻은 오욕을 버리고 원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그 참모습을 찾는게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이나 인간의 참모습은 행복의 근원이다.
그래서 불행이 오는 것을 멀리 하려고 하지만 사노라면 예상치 못하게 계절을 잊고 아무렇게나 피는 치매 걸린 꽃들처럼 불행도 찾아 오게 되는데 그럴수록 기다림을 가지고 이 불행을 한꺼풀씩 벗겨 내면서 원래의 행복을 찾아 고행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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