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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07-11 17:11
조회 : 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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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컴플렉스
박 영 보
브렌다. 병실의 화장실 안에서 나의 오른쪽 어깨에 키스마크를 남겼던 여자.
브렌다는 본명이 아니다. 본명을 쓰지 않는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래 전의 일이었으니 그녀의 정확한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어서 이다. 그녀의 신상에 관한 기억이라고는 내가 근무하고 있던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지금 왜 갑자기 그녀가 떠오르는 것일까.
1977년 쯤이었나 보다. 테네시 주의 컬럼비아에 있는 카운티 병원에서 NT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NT란 Nursing Technician의 약자로 미국 서부에서는 보조 간호원 (NA/Nurses Aid)에 해당된다. 자격간호원만이 할 수 있는 투약이나 주사 같은 업무를 제외하고 자기가 할당을 받은 각자의 환자들에 대한 일반 간호요원들과 같은 병상업무를 맡게 된다. 이를테면 혈압, 체온, 맥박 등을 재는 바이탈 사인 체크나 침상정돈, 목욕, 식사 등 자기 스스로를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이런저런 일들을 돕는 일들이었다.
정상적으로 배뇨를 하지 못하는 남자환자의 경우 요도에 튜브를 꼽아 배뇨시켜야 할 때가 있는데 내가 마치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나 한 듯 어느 병동을 가리지 않고 나를 찾는 일이 많았다. 섬세한 동양인의 작은 손놀림이 미더웠던지 의료진은 물론 환자들까지도 내가 해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내가 맡은 환자의 차트도 쓰며 업무 교대 시 리포트에도 참석한다. 이런 일을 하는데도 8주간의 교육을 받고 서티휘케이트를 받아야만 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런 일들은 정식간호원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 자체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8주간의 교육은 받았지만 병상업무에 관한 경험도 전혀 없었다. 이런 내가 아무리 허드렛일 같은 일이라도 실제로 환자를 대하게 되니 많은 긴장을 하게 되었다. 나를 한 워드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매일매일 바쁜 병동에 추가요원 형식으로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다. 병원 일에 익숙해 질 때까지 각 병동에서 추가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보충하는 형식의 Floating요원으로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으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날의 환자를 배정받아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Mr. Park, Come to the First Floor please”라는 구내 방송이 나오면 1층에 와서 도와달라는 뜻이다. 브렌다라는 흑인 환자도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다.
정신과 워드는 일반 병실과는 달리 환자의 상황에 따라 병실의 문을 밖에서 잠그도록 돼있는 곳도 있었다. 가끔 발작을 하는 경우도 있어 침대도 없이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아 놓기도 하고 유리컵이나 금속 같은 단단한 비품은 들여놓지도 않는다. 가끔 난폭해진 환자가 자신의 자해행위나 공격용 흉기로도 사용될 수도 있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 정신과 병동이기도 하다. 출입문에는 밖에서 안쪽을 수시로 감시할 수 있도록 조그만 유리창을 붙여놓기도 한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도 하지만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환자 방에 들어간 간호요원을 보호하기 위해 일이 마치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살펴주기도 한다.
“브렌다, 나는 영인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 도움이나 무슨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불러주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우선 바이탈 사인부터 체크하겠다고 하니 순수 히 자리에 누어 팔을 걷어 올렸다. 팀 동료들이 나중에 들려준 바로는 이런 행동은 의외였다고 한다. 평소 바이탈 체크를 하는 것마저도 거부하며 갖은 욕설과 거친 행동으로 간호요원들을 대하고 있어 매번 두 명 정도가 함께 들어가야 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혈압과 맥박 및 체온을 재고 나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환자에게 필요한 서플라이가 제대로 있는가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정리를 하고 있는 중 오른쪽 어깨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세면대 위에 붙어있는 거울 속에 브렌다가 하얀 이를 들어내고 미소를 짓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입술은 유난히도 붉게 그려져 있었다. 한 손에는 마우스 워시 병, 또한 손에는 그 병 뚜껑에 마우스 워시를 따라 들고 서 있었다. 마우스 워시에는 알코홀 성분이 들어 있어 많이 마시면 취할 수도 있어서 알코홀 중독자의 병실에는 이 마우스 워시를 주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것을 쭈욱 들어 마셨다. 그리고는 빈 뚜껑을 다시 채웠다. “영, 당신도 한번 마셔보세요. 마치 브랜디를 마시는 기분이에요”라는 것이었다. 출구를 막고 서있는 그녀를 밀어붙이고 뛰쳐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다가는 그녀를 더욱 자극시키는 결과가 생길지도 몰라 묘책을 세우기 위해 전전긍긍 하다가 건성으로 코에 갖다 대며 냄새를 맞는 시늉을 하며 “아, 냄새 좋다. 그러나 근무 중에 알코홀 성분이 있는 것을 마실 수가 없다”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진짜 위스키를 마시면 어떻겠느냐”고도 해 봤지만 그것도 좋지만 지금 이것도 함께 마시자는 것이었다.
이 광경은 문밖에서 다른 간호 요원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은 되었지만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피할 방법으로 “혹시 누가 밖에서 보고 있을지 모른다”며 살펴봐 달라고 하자 문 쪽을 바라다 볼 때 얼른 뒷머리의 목 부분에 쏟아 버렸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차가운 알코홀의 느낌, 그 고역을 참아가면서도 이런 고비를 넘겨야 했다. 내가 다 마신 것으로 생각한 그녀는 더 마시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안 되니 나중에 다시 시간을 만들어 보자며 순간순간 머리를 굴리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이 병실에 들어가기 직전 “영,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지체 없이 뛰쳐나와야 한다”는 수간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몸의 방향은 가능한 한 문 쪽을 향하고 가까이에 두었다. 여차하면 뛰쳐나갈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가끔 간호요원을 공격하기도 하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 환자의 차트에는 성격이 포악하여 대하게 될 때 특별한 주의가 요망된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끝내고 돌아서려 할 때 나의 손목을 잡으며 “당신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지갑에서 서너 장의 사진을 꺼냈다. 가족사진 자기 독사진, 두 딸의 독사진이었다. “이것 보세요.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모두가 와잇(White)이이예요.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도 백인, 남편과 이 두 딸들도 백인이잖아요”. 브렌다 자신은 물론 사진에 나와 있는 모두가 분명한 흑인이었다. 그녀는 나로부터 무슨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당신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백인입니까. 흑인입니까.” 나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믿겠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바보 같은 것들~”이라고 했다. 누가 바보라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곤 했었다.
목이 마르다 고 해서 이때다 싶어 “그럼 주스 한단 가져다 드리죠”라며 가까스로 그 방을 뛰쳐나올 수가 있었다. 문밖에서 모든 광경을 보고 있던 동료들이 ‘굳 잡’이였다며 어깨를 툭툭 쳐주기도 했었다. 데스크에 앉아 차트를 쓰고 있을 때 팀 동료인 미스 휴즈가 내 어깨를 툭 치며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큰 소리로 껄걸 웃으며 내 하얀 유니폼의 어깨 위에 키스마크가 있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모두들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영, 너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놀려대기도 했다. 잠시 후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카페테리아에 가서도 이들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병원 전체에 소문이 나게 되었다. 다음날 복도에서 만난 그녀의 주치의인 닥터 프라이도 나를 보자 “네 여자친구 어떠냐”며 농담을 하기도 할 정도였다.
브렌다. 그녀는 왜 자기 자신이 백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마음속, 머리 속에,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 어떤 멍이 들어 있는 것이었을까. 자기 자신의 피부색깔로 인한 그녀 자신의 인생에 어떤 불이익이나 심한 상처라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스스로 열등의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녀가 이런 병실에 갇혀 있는 것도 그녀의 피부색깔로 인한 콤플렉스가 요인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시대에 행크 아론, 레지 잭슨, 배리 본드 같은 걸출한 슬러거가 있고, 매직 쟌슨, 마이클 조단,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농구 스타도 있다. 마틴 루터 킹 같은 목사도 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잃은 수억의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기도 하고 세계의 대통령이기도 한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 같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모두가 흑인이다. 무엇이 그녀를 백인 앞에 주눅이 들게 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누르스름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나는 또 무슨 종류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헤어나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너무 길어서 연작 형식으로 2부 정도로 나누어 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리듬이 깨지는 것 같아 무리를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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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7-11 1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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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선생님, 작품 잘 읽었습니다.
남자간호사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색직업에 속하는데
특별한 체험을 하셨군요.
요즘보면 흑인들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것 같습니다.
황색 피부도 그에 못지 않지요.
제가 사는 곳은 오늘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군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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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7-11 1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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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민시에 낮에는 Full Time으로 직장에 나가면서 밤에는 영어 공부도 할 겸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병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겪은 이야기 거리가 많습니다. 예로 컬럼비아 시의 감옥에 불이나서 4~50여명의 사상자가 생겨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었는데 헬리콮터로 옮겨온 시신을 옮기는 일부터 응급처치,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에 의한 필드 추립도 했었고 입원환자가 사망하면 영안실로 옮기는 일 (새벽 2~3시경에 사망을 하는 율이 많은데 그 시간에 혼자서 스트레처에 싣고 지하 영안실로 옮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삼년동안에 제 손으로 옮겨진 시신이 아마 40구는 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어떤 다급한 상황이 다가와도 침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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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7-12 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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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이색체험 현장을 보는 것 같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교도관 생활을 했기에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영역을 체험해서 더욱 더 그런것 같습니다. 교도소 화제는 큰 사고에 속합니다. 더구나 인명피해가 나면 엄청난 사고라고 보지요. 저도 사형수들과 생활도 하고 그들은 집행하는 것도 보아왔고, 시체 처리 과정도 지켜보고 했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며 더울 때는 정신없이 덥고 그렇습니다. 미국은 더 더웁다는데요. 건강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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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7-12 0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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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
거의 90세가 되는 Mr.Cook이라는 환자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의자에 앉혀놓고 아침 식사를 돕고 있는 중에 의자에 앉아 있는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분이어서 의자에 앉히고 침대 시트로 의자에 몸을 묶어놓고 앉혀야 했습니다. 스크램블 에그 한입, 물 한모금, 그리고 빨대로 우유를 주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우유를 빨던 빨대가 끄르륵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빠는 동작이 멈춰지고 고개를 떨꾸었습니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우유를 빨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지요. 생과 사의 갈림을 종이한장의 차이로 비유하는 말을 들어오기도 했었지만 이에 비하면 종이한장의 두께는 그때까지 생각해 오던 것보다 훨씬 두꺼웠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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