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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권섭 |
날짜 : 13-09-27 16:39
조회 : 2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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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껍질
우리 집 옥상에 나일론 빨랫줄이 있다. 젖은 빨래도 어느새 잘 건조가 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디맑은 가을의 푸른 하늘 일 때는 탈수기를 거친 빨래는 한 시간이면 말라 버린다. 과년한 장녀가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어쩐지 혼자만 외떨어져 있는 것 같은 외로운 생각이 들었던지 추석에도 오지 않더니 추분 날 불시에 서울에서 집에 왔다. 남매 동생들도 출가를 하여 애들이 있는데 맏이가 미혼이니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 40이 가까운 여식을 보며 〈도연명〉의「귀거래사」를 읊조렸다.
‘돌아가자! 이제껏 내 마음은 몸의 부림 받았거니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는가?(歸去來兮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조각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일렁이고 바람은 훨훨 불어 옷깃을 날린다.’(舟搖搖以輕 風飄飄而吹衣)
‘여수에 오겠다.’는 통화가 있는 후 불과 몇 시간 만에 왔다. 성수기가 아니라 쉽게 비행기를 타니 불원천리다. 백로도 지나고 추분이 되니 그 무더웠던 더위도 언제 더웠느냐! 하는 것처럼 조석으로는 싸늘하다. 밤이면 벌써 이불이 그리워진다. 딸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더니 이불이 무겁다고 한다. 이불을 들어보니, 과연 그간 장롱 속에만 보관해 두어서 그런지 처음과 같이 않다. 만져보니 눅눅하다. 이불을 옥상 빨랫줄에 널었다. 일반 옷을 널 때 보다 빨랫줄이 축 늘어진다. 수평이던 빨랫줄에 이불이 옥상 바닥과 입맞춤할 지경이다. 한 낮이 지나고 오후 세시 경에 이불을 걷었다. 애초보다 가볍고 보송보송하여 쾌적하다. 그간 머금은 습기가 말랐다. 그런데 늘어난 나일론 빨랫줄은 이불을 넌 후 축 늘어졌다. 늘어난 빨랫줄을 풀어서 있는 힘을 다해서 팽팽하게 맸다.
어찌나 팽팽하게 맸던지 줄을 튕기면 곧 ‘팅팅’소리라도 날 것 같다.
옥상에서 내려와 아내에게
“빨랫줄이 느슨하여 팽팽하게 죄었더니 아주 짱짱해요!”
했다. 내심으로는 ‘잘했군요!’ 할 줄 알았는데,
“원래 당신이 빨랫줄을 못 매어 느슨한 것이요.”
한다. 지금 까지 짱짱한 빨랫줄이었지만 무거운 이불 때문에 느슨한 것인데 내가 잘못 매서 늘어졌다고 한다. 실컷 사용했으면서 그러니 어이없다.
마늘을 한참 수확하는 6월에 마늘을 구매했다. 추석을 쇤 후 밖에서 집에 들어오면 마늘 냄새가 지독하여 혹시 마늘이 썩지는 않는지 궁금하여 마늘을 담아 놓은 상자를 열어보니 일부가 썩어 있다. 작년에도 12월 초순 김장을 하려고 마늘을 까려고 하니 많이 썩었다. 김장을 하려면 아직 날이 많이 남아 있지만 썩은 것이 나오기 전에 마늘을 까서 냉동시키려고 결심했다. 마늘 한 쪽이 어떤 것은 열 조각 이상으로 형성된 것도 있다. 다리를 쭈크리고 앉아 까니 발도 저리고 허리도 아프다. 세 시간 이상을 앉아서 마늘을 까니 화장실도 그립고 목도 탔다. 특히 까고 나니 마늘 진이 양손가락에 배어, 불이나 뜨거운 것에 살을 덴 것처럼 화끈 거린다. 마늘을 혼자 다 까고 나니 몸은 불편하지만 뿌듯하다. 까놓은 소복한 하얀 마늘 조각이 볼 수 록 탐스럽다. 흐뭇하여 아내에게 깐 마늘을 내 밀며 보여주니 하는 말,
“당신이 마늘을 까고 나서 바지에 붙은 마늘 껍질을 잘 털지 안 해 현관에 마늘 껍질이 뒹굴어요! 제발 바지도 잘 털고 양발도 빨아요!”
실컷 고생한 후 듣는 말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기대했다. 남의 허물은 보기엔 쉬워도 자신의 허물은 보기 어렵다.
아내는 딸이 모처럼 서울에서 왔으니 가고 나면 마늘을 까라 했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하루가 다르게 썩은 마늘이 늘어난다. 알고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마늘을 까면 잘 마른 것은 엷은 껍질이 깃털이 되어 사방 날아다닌다. 그러니 작업하고 즉시 쓸고 닦아도 나중에 보면 얇은 껍질이 보인다. 나비 날개와 흡사한 마늘 껍질은 깃털이 되어 날아다니니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비는 공중으로 날아가지만 엷은 마늘 껍질은 밑으로 떨어진다.
마늘 까고 느슨한 빨랫줄 매고 가사에 힘쓴 결과가 결국 빈 껍질 신세가 되었으니 서운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내 마음이 아름답고 고울 때에 하늘은 나에게 정답고, 내 마음이 탁하고 거칠 때 외로움은 배가 된다.
어느 날, ‘헤밍웨이’가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물건을 포장하는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게 보였다. 가슴에 ‘Breakable'이라 새겨진 문구를 보며 자신의 무릎을 쳤다. ‘아하! 사람은 깨지기 쉬운 존재로구나!’
그리고 지나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다시 보았는데, 등에는 ‘Be Careful'이라는 글을 보고 다시 한 번 무릎을 두드렸다. ‘맞아, 사람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거야!’
이제 나는 갖지 못한 것을 바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만족 할 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운명을 생각하며 정성껏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남쪽 창에 기대어 평온하게 있노라니 좁은 방이지만 자유로워 편하기 그지없다.(倚南窓以寄平溫 審小房自由易安)
지금은 가을, 오곡백과가 영글어 가는 좋은 계절 주위 영혼들이 성숙되어 가기를 기도한다.
(201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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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3-09-27 1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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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참 다복한 가정을 가지셨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모님이 보기에는 아직도 김선생님은 나이먹은 아들이고 남앞에 내놓기가
불안불안 모습이 그냥 보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남편에대한 애정이 깊이 깔려있는
관심의 모양입니다. 다만 큰 따님에 대한 부모의 걱정이 진솔한 표현에 그대로
느껴집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나날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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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8 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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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정진철선생님 뭐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젊어서는 그렇지 않더니만 아내가 회갑을 지나더니 변했어요!
집안의 평화를 위하여 조용히 참으며 살아감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드리며,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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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7 2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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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하여 김선생님이 얼마나 가정적인 분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마늘까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던데, 그런 일을 도와주시는 걸 보면 알만 하지요. 말로는 빈껍데기 신세라고 하지만 다복한 가정을 일구시고 계시는 걸 아는 사람은 짐짓 얼살이라고 할 것입니다. 휘밍웨이의 말을 이용한 것이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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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8 0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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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祖考, 先親께서 祖妣,母親께 도와주고 일한 모습을 배운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 같습니다. 보고 배운대로 자기도 모르게 행합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그러니 말입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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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9-27 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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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마늘을 한 20개 깠습니다. 아내는 마늘을 먹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제가 먹을 마늘을 제가 깐 것이지요. 저는 아내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남편이 살았을 때는 원망하며 살다가, 남편이 죽으면 그리워하며 사는 이가 아내
남편 살았을 때는 그 결점만을 보며 살다가, 남편 죽고 나면 장점만을 보며 사는 이가 아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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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8 0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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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마늘이 좋다고 하여 마늘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될 수 있으면 常食해야 겠다고 여겨 늘 챙기고 있지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모습이 교훈입니다. 늘 주옥 같은 말씀 은혜의 단비입니다.
감사의 말씀 드리며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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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9-28 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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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파도 다듬어 주고 설겆이도 하고 마늘도 까주고 다져주기고 하고
그래도 핀잔을 들으며 삽니다. 아내가 없다면 핀잔들을 일도 없겠지요.
얼마나 적적할 까 생각하면, 마냥 아내가 옆에 있다는 것이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참새처럼 쉴새없이 이야기 하는 아내 그 아내가 있기에 더욱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김권섭 선생님! 더욱 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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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8 0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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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선생님 저도 똑 같은 생활을 누리며 삽니다.
인간이란 천부적으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몸도 쇠약해져 가고 은퇴의 신세가 되고보니
남편되는자 아내 섬기기를 하늘같이 여겨야 가정에 평화가
유지되리라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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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9-28 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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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우리는 무한히 내면을 채우려 애쓰고 살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빈껍질 뿐이군요. 마늘도 그 맵고 알싸한 맛으로 채웠지만 결국은 빈껍질이 되어 훌훌 날아다니게 되는 것이고요. 아내들은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남편을 껍질로 보고 자식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는가 봅니다. 결국은 남편에게 의지해야 되는 것을 말입니다.
이런 섭리를 자꾸 깨우치면서 빈껍질인 백수생할 1달을 보냈습니다. 선생님 글 공감입니다. 그런데 왠지 씁쓸하네요. 더욱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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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8 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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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진심을 다해 충성을 해도 속을 몰라주니
야속하더군요. 저의 분지 복이라고 자위하며 살고자합니다.
다 같이 껍질만 남은 인생들 불평한들 무슨 소용이있겠어요!
격려의 말씀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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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09-28 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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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로 가는 여생에 점점 가벼워지는 여러 선생님, 마늘까기 팁 알려 드립니다.
1. 마늘 먼지를 털고 통채로 물에 담그어 놓고 잊어버린다.
2. 불려놓은 마늘 생각이 나니 깜짝 놀라 달려가서 대충 비벼서 껍질을 걸러낸다.
3. 여러 번 물을 갈아줘도 안 떨어지려는 껍질만 가볍게 칼로 뜯어 낸다.
4. 이제 먹는다.
일박이일 여행에서 돌아오니 남편은 메론 두 개 사다 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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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8 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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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혜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마늘까기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손이 화끈거리고 불에 덴것 같은 고통이 있다면
대부분 가정주부들이 어떻게 마늘을 까서 김장을 했겠어요!
김장철이 많이 남아있고 물에 젖지 않게 까서 냉동처리해 놓았다가 12월에
사용하려고 용감하게 깠던 것이 빈껍질 신세가 되었으니 푸념해 봤습니다.
격려해 주시고 좋은 방법 가르쳐 주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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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3-09-30 1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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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나님들께서
껍질의 중요성을 진정 깨닫는다면
그리 박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껍질은 온갖 풍상 다 겪으며 가정을 지키고 생명의 씨앗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 몸을 희생하지 않는지요.
선생님,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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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30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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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선생님 고맙습니다.
먹는 마늘도 껍질의 보호 속에 알맹이도 잘 보존되고
가정도 껍질같은 남편이 있을 때에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 안될 것입니다.
기막힌 격려의 말씀 감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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