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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3-09-09 09:26
조회 : 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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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소 (役牛) 이야기
임병식
산책을 나서는 길에 보니 가까운 인가(人家) 외양간에 애숭이 송아지가 보인다. 얼마 전 까지도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안보던 어간에 낳은 모양이다. 그 집은 외양간이 대문과 나란히 잇대 있고 저녁을 제외하곤 늘 문이 열려있다. 안을 들려다보니 어미소는 붙박인듯 서서 먹은 여물을 되새김질 하고, 그 옆에서 송아지는 잠자코 있는 법이 없이 연신 나부댄다. 아직은 배냇털이 보송한데 태어난지가 한 달포 되었을까. 그런 녀석의 귀에는 어미소와 똑 같이 노란 인식표가 매달려있다. 벌써 관서에 신고를 해둔 것 같다.
그걸 보노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는 ‘재산적으로 가치 있는 동물’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는 그러기도 할 것이다. 어미 소가 지금은 값이 많이 하락하기는 했다지만 어림잡아서 삼백만원은 넘을 테니 그렇지 않겠는가.
꼭 재산적 가치를 따져서가 아니라 소는 옛날부터 한 식구로 귀히 대접 받아왔다. 우공(牛公)이라는 말은 제후의 등급에 해당하는데 굳이 공(公)자를 부여한 사실만으로도 알수 있다. 내가 과문한지는 모르지만 쥐를 서생원이라고 하여 생원 대접을 해주는 이외에 벼슬을 받은 축생은 아마도 소가 유일하지 않는가 한다.
뛰노는 송아지를 보니 녀석은 잠시도 어미 곁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듯이 어미소의 사타구니로 파고들어 머리를 치받아 젖을 먹는가 하면 요리저리 다리사이를 끼어다니며 해찰을 부린다. 그런 모습을 어미소는 짐짓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흐뭇해 한다.
하지만 녀석에게 그런 단란한 시간은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한 3,4개월이 지나면 이유(離乳)를 해야 하고 7,8개월이 지나면 독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그야말로 가슴아픈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어미소의 새끼사랑을 지독지정(舐犢之情)이라고 하지 않던가. 새끼를 핥아주고 키우는 정이 유별난 것이 소인 것이다.
그러하니 독립하여 헤어 질 때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나는 어렸을적 그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집에서 키우던 소가 새끼를 놓았는데 제법 목덜미가 살이 붙고 뿔날 가리가 가려워지자 뜸베질을 일삼을 무렵에 우시장에 내다팔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보니 어미소는 새끼가 이미 커서 뗄때가 지났는데도 일주일 남짓이나 거의 잘 먹지도 못하고 해만 지면 섧게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가 울을 넘고 온 동네를 질펀하게하면서 가슴을 에었다.
우리집에 최초로 입식한 소는 내가 초등학생 때였다. 집에서 내다판 송아지 만할 것을 사왔는데, 건강하고 씩씩하여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진하여 이 목매기를 먹이는 일에 전담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열심히 꼴을 베어 날랐다. 그렇게 기른 송아지가 어느 정도 크자 아버지는 코뚜레를 준비했다. 느릅나무인지 때죽나무인지는 모르지만 나무를 손질하여 껍질을 벗기고 형태를 잡아서 허청에 매달아 놓았다.
꼴을 베는 일은 그렇게 만들어진 코뚜레가 꿰어지고 한창 농번기에 소를 부려 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해방이 되었다. 고삐를 끌고 나가 들녘에서 직접 풀을 뜯도록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보면 소는 콩잎과 자귀나무 이파리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콩이 심어진 눈두렁과 밭둑을 지날 때는 잔뜩 긴장을 해야만 했다.
방학을 한뒤의 여름철에는 뒷산에다 풀어서 방목을 했다. 고삐를 목에 친친 감아주고 놓아두면 제 스스로 플을 뜯다가 내려오기 때문에 대려만 오면 되었다. 그런지라 소가 풀을 뜯는 어간에는 마음껏 뛰어 놀며 여치도 잡고 풀무치도 잡고 운이 좋으면 꾀꼬리 알을 꺼내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일이 가장 많이 생각나고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집에서는 큰 변고가 일어났다. 어미소가 그만 갑자기 죽고 만 것이다. 들일을 나가신 부모님이 마당에 명석펴고 보리를 말려 놓았는데 그만 고삐를 풀고나온 소가 그것을 잔뜩 먹은 것이었다. 그 바람에 고창증으로 죽어버린 것이다.
신고를 받은 면사무소에서는 직원이 즉시 출동했다. 그러면서 와서 보고는 무조건 파묻으라고 했다. 그렇지만 무슨 전염병에 걸려서 죽은 것도 아니고 뻔히 보리를 먹고 죽은 것을 아는데 어찌 그말을 따를 것인가.
면직원이 떠나기가 바쁘게 굴착이 시작되었다. 한편, 소가 죽었다는 말이 인동에 퍼지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그바람에 해체된 고기는 금방 동이났다. 그바람에 아쉬운대로 얼마간의 돈을 손에 주게 되었지만 가슴아픈 기억은 오래 남았다. 하여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깝고 가슴이 쓰리다.
산책길에서 나는 바로 지나치지를 않고 한참이나 외양간의 송아지를 지켜보았다. 지금은 대량사육으로 소값이 폭락했지만 농가에서는 여전히 살림밑천이 아닌가. 물론 녀석이 귀여워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일말의 기억속에는 당시 충격을 남기고 죽어간 그때의 소가 새삼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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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09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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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도 주위에서 그 귀한 송아지를 보셨군요!
지금은 도시에 살 때나 시골에 가도 소 보기가 힘들더군요!
제가 어려서는 소 한마리에 사람이 꼭 딸렸지요.
저도 어렸을 적 소꼴베기가 싫어 시골을 떠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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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09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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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굿간에 매어있는 소를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한번 써봤습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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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3-09-09 1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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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의 수필을 읽으니 저의 옛날 모습이 떠 오릅니다.
저도 소 먹이러 7부 능선 산에다 풀어놓고 우리들끼리 놀다 해가 질 무렵이면 소를 찾아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집에선 밀과 콩을 썪어 볶은걸 한 자루 주면 가져가서 나누어
먹곤 했습니다.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하면 어느새 가을이 되곤 했습니다.
임 선생님의 수필을 읽고 새삼 옛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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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09 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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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농촌에서 산 사람이면 그런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입니다. 우리마을 뒤산은 풍치산이라고 소쿠리 형태의 안윽한 구능지대가 있는데 소를 놓아먹이기가 안성마춤이었답니다.
소가 풀을 실컷 뜯어먹어 배가 빵빵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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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9-09 2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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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소먹이던 일이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꼴을 한짐 베어야 저녁을 떳떳하게 먹을 수 있었지요. 방학에는 해가 설핏하면 소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풀을 뜯기며 꼴까지 한짐 베어 와서 저녁 밥상 앞에 앉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그게 지겹도록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재미있는 추억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공부에만 매달린 아이들이 과연 소를 비롯한 가축을 가족 같이 여겼던 우리 세대의 생명 사랑을 알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이 시대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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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10 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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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추억을 공유하시니 반갑습니다. 농촌에 살면서 소를 키운 기억이나 꼴을 베던 추억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산으로 끌고 가서 놓아두고 방목하던 일은 그리 많지 않을텐데 사람사는 곳은 똑 같아서 충청도에서도 그리 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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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9-10 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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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은 제가 어릴 때 염소와 닭 그리고 돼지는 길렀지만, 농사를 하지 않은 까닭에 소는 길러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소띠여서 그런지 소에 대해서 애착이 갑니다. 소는 되새김질하는 동물입니다. 되새김질하는 그 모습은 어쩌면 그 옛날을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해서 좋았습니다.
경운기의 보급으로 지금은 소로 쟁기질 하는 것을 보는 것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일소의 몫을 기계가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로 인하여 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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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10 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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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몰아 쟁기질을 해본 작가는 드물것입니다. 그래서 10수년전 '쟁기'라는 작품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지요. 소를 돌봐보지 못한 지금의 아이들은 소가 졿아하는 풀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귀가 앞쪽에 있는지 뿔이 앞쪽에 있는지 아는 아이기 드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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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9-11 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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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작가와 저와는 띠 동갑이네요.그러나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고 살고 있는 저는 소와 남다른 인연이 없네요.가축을 길러본 것은 개가 전부구요.
글 도중, '지독지정(舐犢之情), 뜸베질, 입식한' 등의 접하기 어려운 말들이 옛날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무영을 농촌소솔가라 하듯이 임작가님은 농촌수필가라 부르실만한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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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11 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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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작품 읽어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제 문학의 뿌리는 농촌에 뿌리 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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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3-09-13 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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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일소는 가축이 아니라, 한식구와 같았으니
송아지로부터 어미 소가 될 때까지 꼴을 베고 산에 올려 풀을 뜯겨 키운 과정과 갑작스러운 소의 죽음은 선생님의 추억에서 지워질 수가 없을 듯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에 편승하여 아련한 옛 시절로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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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13 2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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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을 베어 나르던 일, 사타구니에 붙은 응애를 떼어주던일, 소의 숨골을 긁어주면 좋아하던일, 비봅고 거친길도 조심조심 잘 다니던 일이 많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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