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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3-09-24 07:13
조회 : 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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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무짐 갈등
임병식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필연적으로 서 있을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숲이 지형을 따라 경계를 짓듯이 가뭇하게 드나낼 뿐이다. 그런 정경을 바라보는 느낌은 지극히 고요하고 안온하지만 다가가 가까이서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개별적인 나무들이 일매지게 고르지도 않거니와 군데군데에는 부스럼자국처럼 빈곳도 하다하다. 그런 곳은 주로 벼랑이거나 파묘자리인 경우가 많다.
이렇듯 바라보는 사물은 원근(遠近)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리기는 추억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아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지내놓고 본 세월은 아름답게 치장되어 보이지만 그러나 실상은 가까이서 바라본 숲속의 풍경만큼이나 삭막한 경우도 많다.
이점은 내가 고향을 그려보는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흐른 뒤 멀리서 돌아보는 고향은 치장되어 있지만 기실은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린 날 보던 이웃의 사이는 화합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늘 다투고 경쟁하며 살았던 것이다.
여기서 느닷없는 불온하고 불칙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산행을 하면서 지름길을 택하고자 오솔길로 오르는데 조금 들어가지 않아서 길이 막히고 말았다. 푸나무가 우거져 도저히 더는 진입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것을 보자니 새삼 쓴 웃음이 지어졌다. ‘이렇게 푸나무천지인데 왜 옛날에는 이것 하나를 두고 이웃마을과 그토록 목숨을 건 다툼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그 옛날이란 것도 표현은 그리 했지만 그렇게 까마득한 시절이 아니다. 불과 5, 60년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때의 농촌 사정은 지금과는 달리 여러가지로 여의치 않았다. 특히 자급자족할 식량이 부족한 것은 물론, 땔나무 확보도 어려웠다. 거기다 화학비료도 부족한 탓에 퇴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베어 올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푸나무 확보가 어려운 마을은 이웃 마을의 말림갓을 침범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자주 시비가 붙었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비교적 산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마을에서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웃마을에서 터 놓고 푸나무를 해가니 이참에 강력하게 말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의 끝에 어떻게든 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노약자를 제외하고 전원 출동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한 결정에 따라 초등학생인 우리도 빠질 수가 없었다. 먼저 마을 일꾼들이 푸나무를 져내리는 이웃 마을사람들을 저지하여 풀짐을 풀어 헤쳤다. 그 과정에서 서로간 낫을 겨누고 위협하는 공포스러운 살풍경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그 결말은 다시는 마을 뒷산의 말림갓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약조를 받는 선에서 끝이 났지만 매우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랬던 풍경인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것은 딴판인 것이다. 푸나무가 지천가 아닌가. 그걸 보면서 푸나무 하나에 목숨을 걸고 다투고 살았던 옛일들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는 농업용수 확보도 큰 문제였다. 벼농사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지라 늘 이웃간에 갈등을 빚었다. 윗마을은 가급적이면 물을 가두려고 하고, 아랫마을에서는 보를 터내리려고 해서 시비가 일어났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젊은이들 간에도 자연스레 화합하지 못했다. 마을대항 배구대회나 기마전, 그밖에 씨름판이 벌어진 날에는 꼭 그 뒷끝이 감정대립으로 치달을 때가 많았다.
그 절정은 항상 정월 대보름날밤에 휘날레를 장식했다. 횟불을 피워올려 세를 과시하고 나중에는 투석적을 벌렸던 것이다.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머리가 터지고 다치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마을을 대표한다는 전사적인 기개로 넘쳤다. 청년들은 보름날이 되면 한낮에 출정준비로 바빴다. 홰를 만들기 위해 적당히 마른 대나무 준비하고 관솔을 구하거나 솜에 석유를 잔뜩 묻혀 놓았다. 마디게 타게 하고 불빛을 밝게 하기 위해서였다.
횃불놀이의 서막은 처음에는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홰에 불을 붙여 일렬로 늘어서서는 한껏 하늘로 치켜올리며 출정가를 부른다.
‘무찌르자 공산당/ 몇천만이냐/ 대한남아 가는길 /거기로구나/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길로/’
당시는 6.25전쟁 휴전직후여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 투석전은 횃불시위가 끝나고 난 후 불을 끈 후 시작되었다.
상호간에 어느 정도는 이격거리를 두어서 돌팔매로 안전했지만 그러나 기습을 감행하는 수가 있어서 불상사도 발생했다. 감정을 가지고 게릴라식으로 은밀해 접근하여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나는 무엇보다도 푸나무의 갈등으로 생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푸나무는 말려서 불을 때는 용도이외에 퇴비의 주재료였으니 불화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적은 물량을 두고 다투다보니 화합은 뒷전이고 미움을 키웠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도 하고 우스운 일이다. 그런 상황을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절체절명으로 여기고 산 그 푸나무가 지금은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것이다. 오직 그런 것을 보고 자란 세대에게만 아픈 기억으로 남아서 씁쓸한 추억을 더듬게 해줄 뿐이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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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3-09-24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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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은 농촌에서 자라나서 남들이 갖지못한 귀한
경험들을 글로 옮겨쓰실수 있어서 행복하십니다
저는 서울에 주로 살았는데 (도중에 잠시 떠난적도 있었지만)
마포구 대흥동에 살때 우리동네 아이들과 산5번지 아이들이
패싸움을 잘했었지요 돌멩이 (짱돌) 던지기가 주로 였지요
그러다가 노고산쪽에들하고 한판붙었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
그랬는지 어떤애가 아이구찌로 찌르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때만해도 아이구찌를 쓰는 것은 의외였지요 그런것 쓰는것은
룰에 벗어난것이었지요, 그이후 짱돌 싸움이 없어지긴는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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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4 1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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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때는 마을끼리 단합하지 못하고 대결과 불화를 지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6.25전쟁의 후유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선생님도 서울에 사시면서 그런 돌멩이 싸움을 많이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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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24 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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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농촌에서 살았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그 때 그 시절 모습은 大同小異 비슷한 實相들입니다.
추억이 새로워지고 鄊愁에 젖어 듭니다.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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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4 1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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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마음마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경쟁을 많이 하던 일이 스쳐갑니다. 그것도 한시대의 풍속도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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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9-24 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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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말씀처럼 마을간으 투석전이나 대보름날 불싸움은 저희 청주 지방에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웃간에 갈등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갈등을 지니고 살만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농촌이 텅 비다시피 했으니까요.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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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5 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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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마을도 인구가 3/1로 줄고 집을 헐어내거나 빈집으로 방치된 집들이 많습니다. 고향 초등학교도 폐교된지 이미 오래고요. 당시의 풍습은 어디에나 똑같았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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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9-25 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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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하기 짝이 없던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 편의 흑백 필림을 되돌리듯 아련한 추억도 그리움과 함께 묻어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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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5 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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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잊혀진 흑백사진 속의 풍경이지요. 그때 그런 갈들을 빚고 지내던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늙은이가 다된것이 돌이켜보면 무상함만 느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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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9-25 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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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저의 아버지께서 면장을 하셨기 때문에 농사는 안했지만, 갈퀴나무는 해다가 땔감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소나무 아래 솔잎이 수북히 쌓여 있으면 아 ! 저기서 갈퀴나무 한짐 금방 하겠구나 ! 하고 지나칩니다. 아련한 추억입니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갈퀴나무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산불이 나면 크게 나곤 하지요. 식목일의 의미가 퇴색해 갑니다. 이제는 나무를 심을 것이 아니라 가꾸어야 합니다. 베어낼 것은 베어내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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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5 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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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퀴나무 하던 일을 떠올리시니 생각나지만, 그야말로 깍지를 지어 덩두럿이 올려서는 지고오던 일꾼들의 모습이 기억에 선연합니다. 장터를 나가보면 그런 나뭇짐을 팔려나온 사람들도 흔했지요.이런 갈퀴나무를 하려면 솔가지를 맨밑에다가 깔아야 하는데 가끔 산감들이 들이닥쳐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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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09-26 0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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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으로 살아가던 시절부터 무조건 양보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양식이 떨어져 버리는 경우를 많이 당해서 어찌하든 비집고 들어가서 탈취해야 된다는 절박함으로 살았던 시절을 겪어 왔나 봅니다.
그 무질서가 싫고 경쟁이 싫어서 늘 멀리 서서 보았던 결과,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겨울호에는 땔감으로 쓰는 나무를 주제로 해야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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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6 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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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이야기를 많이 쓰시는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그런일도 있었나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실이지요. 그때는 푸나무짐 하나에도 사생결단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 피폐한 인심이 돌멩이를 던져 다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요.
땜감이야기는 쓰실 거리가 많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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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9-27 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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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뭇하게, 일매지게, 푸나무, 말림감" 등등 언어의 조탁이 시인 이상입니다.수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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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27 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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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선생님, 읽어주시고 댓들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온차가 심한데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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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3-10-05 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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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작품을 대할때마다 글의 묘미가 보이는 듯 작품을 다 읽을 때까지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특별한 단어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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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10-05 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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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화선생님, 반갑습니다. 작품은 열심히 쓰고 있는데 늘 성이 차지 않습니다. 읽어주시고 댓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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