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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3-08-22 06:43
조회 :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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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편린(片鱗)
임병식
. 나는 어떤 시를 떠올리면 구체적인 그림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그려진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하거나 마음속에 상정하고 그려보는 풍경은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계기가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은 실체없는 소설속의 한 장면. 적막한 가운데 까닭없는 그리움에 목말라 망연히 시선을 던지는 풍경이다.
분위기는 비가 하염없이 추적이는 속에서 주인공이 방문을 응시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고작이다. 한데 나는 왜 그 장면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벌써 반백년도 넘은 세월속의 그림이 아닌가. 그렇지만 연유를 모르거나 감을 잡지 못한 건 아니다. 실은 그림 보다는 어떤 시문에 먼저 눈이 꽂혔던 것이다.
그날은 하교하던 길이었다. 산마루턱에 이르렀는데 풀밭에 신문지 한 장을 집혀있었다. 누군가가 깔고 앉아 쉬다가 그대로 놓고 간 것 같았다. 안쪽으로 오긋하게 짓눌린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얼핏 보니 거기에 연재글이 보였다. 제목과 이름이 한자였다. 爐邊情談(노변정담) 鄭飛石(정비석). 이름에 끌려서 집어들었다.
한데 연재글 속에는 시문이 인용되어 있었다.
‘오실날/ 아니오는 사람/ 오시는 것 같게도 맘켕기는 날 / 어느덧 해는 지고 날이 저무네/
이런 시였다. 작가가 쓴 시일까, 아니면 남의 시를 인용한 것일까.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산을 넘으며 그 시를 여러번 되풀이하여 읽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할 즈음엔 솔솔 암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이 시를 거침없이 암송한다. 얼마나 그때 잘 외워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그 이전, 소설 연재를 전혀 본적이 없었음으로 내용은 관심 없고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남자를 기다리는 모습만 연상했다. 상상이지만 가슴이 저릿했다. 비 오는날 , 그것도 마음이 켕기는 날 행여나 오실 님을 기다리는데 나타나지를 않는다. 하루내 문밖만 바라보는 중에 어느덧 해는 지고 날이 저물어간다. 이 얼마나 마음 심란하고 고적한 풍경인가.
나는 나중에 그 시가 김소월의 시 <맘 켕기는 날>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러니까 작가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소월의 시를 인용했던 것이다.
그 신문연재소설을 대한 때가 1965년. 내가 십대 후반시절이었다. 그때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때여서일까. 나는 그때의 그 시의 강열한 인상으로 하여 지금도 그리움을 생각할 때면 그 소설속의 고즈넉한 그 분위기를 마냥 생각하곤 한다.
지금은 나이가 70이 가까워 그렇지는 못하지만 나는 젊었을 적 암기력이 꾀 괜찮은 편이었다. 시험을 보면 영수 물리등에는 죽을 쓰면서도 그런데로 성적을 유지한 것은 암기과목 때문이었다. 국사랄지 세계사알지 지리같은 것은 언제나 만족한 성적을 거두었다.
내가 암기력을 남앞에서 시험받은 적이 있다. 군복무를 할 때에 국민교육헌장이 나왔다. 하루는 상부로 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부대에서 사병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켜놓고 구령대에 차드하나를 내걸었다. 그러면서 일직장교가 하는 말이 누구라도 먼저 암기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크게 외우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일등을 했다. 당연히 제일 먼저 내무반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다. 유치장 근무를 할 때는 1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의 이름을 점호부를 보지 않고도 거뜬히 호명하여 점검을 마쳤다. 그런 능력은 생각하면 내가 글을 쓰는데도 어느정도 부조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다 기억은 못해내더라도 자료가 어디, 어느 쯤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많이 접해보지도, 많이 읽지도 않지만 소월시를 대하면 이분이 한국사람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한 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짧고 쉬우면서도 한번 읽고나면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마음 켕기는 날>. 제목만을 보더라도 얼마나 정감이 가는가. 사전에 보면 ‘켕기다’는 꺼리다, 무언가 걸리는데가 있다 등으로 나와 있지만 핏줄이 당기는 친화력으로도 풀이되고 있음을 본다.
지금은 월말로 접어들었지만 8월의 노염은 여전히 한창이다. 하지만 머잖아 더위는 한풀 겪일 것이고 가문날도 비오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 비오는 날을 택해 그리운 사람을 상정해 두고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어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가당치 않는 일이라고 지레 포기해 버리기 전에 그러한 그리움 하나 가슴에 담고 산다면 그만큼 얘깃거리가 있는 삶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그러한 그리움의 풍경을 설정해 놓고 살고 싶다. 꼭 실현되느냐 안되느냐는 별개로 치고라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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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8-22 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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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을 캐내서 이렇듯 아름다운 글로 엮으시는 것을 보면 태어난 작가이십니다. 내일은 처서, 더위가 멈춘다는 날입니다. 환절기이기도 하니 부디 몸조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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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2 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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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꼭 알아야 할 것은 많이 놓지면서 시시콜콜한 것들은 많이 기억하니 아닌게 아니라 글을 쓰라는 팔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은 제법 공기가 시원했습니다. 생활리듬 잃지 않도록 신경쓰시며 지내시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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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8-22 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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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릴 적에 붓글씨로 김소월의 시를 써서 벽에다가 붙여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소월시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등등을 암송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멋쟁이셨지요. 댄스도 잘하셨고, 얼마나 멋이 있으셨는지요. 어려서 저랑 함께 걸어가면 형제간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께서 저를 이십대초반에 낳으셨으니까요. 군대 가시기 전에 저를 낳으시고 훌쩍 군대로 가셨기 때문에 저는 어려서 비행기만 뜨면 비행기 쳐다보며 아벼지 ! 하고 외치곤 하였지요. 왜냐하면 그 비행기에는 틀림없이 제 아버지께서 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지요. 감사합니다. 임병식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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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2 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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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제 글에서 아버지를 떠올리셨디니 반갑습니다. 이직 노염이 기승을 부리는데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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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08-22 1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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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 시는 중학교 때 시집을 들고 다니면서 외웠습니다.
요즘은 외워지는 것은 갈수록 뚜렷한데, 어떤 것들은 까맣게 지워져 버린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 깊어지는 것은 그간의 추억들이 자꾸 멀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무더위를 식히는 수필 한 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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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2 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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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혜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공감이 감니다. 정말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 깊어진 것은 그간의 추억들이 하염없이 사리진다는 생각이 들기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같이 박복하게 사는 사람이 그나마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것이 글쓰기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얼마전에 아는 사람이 자살을 했는데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하더군요. 그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인데 마음에 병이 들면 돈도 필요없었던것 같습니다. 막바지 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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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8-22 1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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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글을 통해 저 역시 아련한 추억의 저편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노변정담은 작가자신, 아니면 주변 인물이 겪은 여인네들과의 일화를 단편형식으로 엮어나간 신문연재소설이었다고 기억합니다만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무더위에 동력 잃지마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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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2 1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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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저도 노변정담에 대한 것은 그때 우연히 본 신문이 고작입니다. 삽화가 있었는데 비오는 창밖으로 주인공이 시선을 던지고 망연히 바라보던 광경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그리움 표제을 단 수필집을 낸바있지만 요즈음은 더 그리움이 짙어만 가는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학원에 글을 발표했다는 분들이 많은데 한번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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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8-23 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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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사실도 어렸을 적에 강력하게 입력되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을 가슴에 심어 놓고 두고두고 꺼집어 내어 보는 것, 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주는 작은 행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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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3 1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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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읽어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전에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살고 보니 해를 끼친 사람보다는 도움을 준 분들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남자 친구로는 그야말로 죄를 지어도 한참을 감춰줄 죽마고우가 있고, 이곳에 살면서는 죽자사자하는 친구도 있답니다. 그리고 여성으로는 50년지기도 있고 심심하면 문자를 주고받는 젊은 문우들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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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8-25 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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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저도 '기억'에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기억은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제에 우연히 조우하고 습작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노변정담' 기억(!)이 납니다. 소월의 시 '맘 켕기는 날'도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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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5 1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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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서를 소월님만큼 잘 대변해준 시인도 없는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시는 우리의 영원한 문학적 자산이 아닐수 없습니다. 김선생님의 기억력의 비범함은 삼국지를 풀어쓴 글에서 이미 확인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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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8-26 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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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을 읽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기억력이 없어서 늘 고생합니다. 중요한 일도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잊고 맙니다. 좋은 시나 수필 작품도 기억하고 입으로 되뇌여야 그 감동이 진하고 오래가는 것인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선생님의 그 깊고 고졸한 표현력의 바탕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저도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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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26 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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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생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소재를 찾게 되고 또 그것을 파고들어 이야기를 얽으려니 하나의 버릇이 생긴 것이지요. 글은 사물을 골똘하게 보는데서 시작되지 않는가 합니다. 암튼 댓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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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3-09-04 2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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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 그리운 사람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는 그림을
그리시는 것을 보니 18세로 되돌아가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봄날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나이와 맞거든요. 40이 넘어가면 가을단풍이
드는 날이어야 하고 , 비오는 날은 너무 쓸쓸한 것 같은데 좀 젊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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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04 2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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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니 마음속 그리움은 더 짙어만 가는것 같습니다. 그리 예쁘지도 않은 여인이 잔주름살 자글자글한 눈으로 웃어주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습니다. 70이 되기 전까지는 젊다는 생각을 하고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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