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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오정자 |
날짜 : 13-08-12 14:38
조회 : 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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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오정자
자연사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진귀한 돌을 보았다.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이 사용했다는 돌화살촉인데, 기원전 약 8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야말로 태곳적 신비가 숨 쉬는 듯 느껴졌다. 사냥을 좋아하는, 전직 역사 교사인 미국인의 집에서 본 것이다. 브로치 같은 문양의 보석처럼 빛나는 하얀 돌과 푸르스름한 돌, 까만 돌화살촉을 보노라니 짐승을 사냥하며 생활한 그들의 삶이 연상되었다. 또한, 각각의 돌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에서 부족민들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었다.
돌화살촉을 보면서 문득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몽돌이 생각났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고 여기며 애지중지한 돌멩이다. 책상에 달린 책꽂이 한가운데에 두었는데, 쌓아둔 책 때문에 그만 그 존재감을 잊고 살았다.
오랜 세월 살아온 몽돌이 말없이 앉아 있다. 이 돌은 십수 년 전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에서 주워 왔다. 호숫가를 수놓은 수많은 조약돌 중에서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은 돌이다. 나는 이것을 조약돌이라기보다는 ‘몽돌’이라 부르고 싶다.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타원형으로 반들반들하면서 촉감이 매끄럽다. 생김새는 고운데, 가로로 금이 두 줄 가 있다. 굵게 파인 선은 영락없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노인의 이마 주름살과 닮았다. 그의 삶도 녹록지 않았으리라. 거친 풍랑 속에서 버티다 파도에 휩쓸려 해안으로 밀려 나왔겠지. 시련이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또 다른 고난이 닥쳤으리라. 길둥근 모양으로 거듭나기까지 주위의 수많은 돌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울퉁불퉁한 자신을 갈고 닦았을 것이다. 그런 삶의 여정에 결코 분노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또 큰 바위에 몸을 부딪쳐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지기도 했으리라. 그러면서 가끔은 철썩이는 파도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상념에 잠기기도 했겠지. 문득 몽돌들이 구르는 합창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이 돌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단아한 여인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계란형의 형상이 신기해 주워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질박하고 변함없는 돌의 속성에 매료되었다고 할까. 또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내공을 쌓았으면 모난 데 없이 저토록 동글동글한 걸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돌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련과 고난 속에서 꿋꿋이 고비를 넘어선 인간의 삶을 보는 듯하다. 그 고통은 인간의 삶의 흔적과 흡사하다. 삶도 자연도 아프면서 성장하나 보다. 아무튼, 몽돌은 쉽게 상처받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남편과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생김새며 성격, 식성, 취미, 사고방식까지도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렵다. 딱 한 가지, 노래 부르기를 제외하곤 늘 엇박자인 그와 나는 삶의 평행선을 달린다. 자기주장이 강한 그가 콩을 팥이라고 우겨 대면 당할 재간이 없다. 한술 더 떠 불같이 화를 내니 그야말로 대화 불통이다. 까짓것 국회 청문회도 아닌데 그냥 두루뭉수리로 넘어가 주면 좋으련만. 고지식하고 도량이 넓지 못하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치기가 일쑤다. 설왕설래 시시비비하다 부부싸움으로 번진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가 기선을 제압하면, 파죽지세에 밀린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럴 때면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도인 같은 몽돌에 시선이 오래도록 머문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돌은 언제나 말이 없지만, 어리석은 나에게 삶의 지혜를 온몸으로 일깨워주고 생각하게 한다. 살아가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올바른 처사인 줄로만 알았다. 옳고 그름을 따져 뱉어 내고 쏘아 댄 말들이 상대방의 정곡을 찔러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또한,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도 읽어 내지 못했다. 매사 민감하게 촉수를 곧추세우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살라 한다. 자연의 침묵과 여유로움을 배워야겠다.
어느새 나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 “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라는〈조약돌〉의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와 나는 시방 어깨동무 중이다.
- <동리목월> 2013년 여름호 게재
오정자 (吳貞子)
* 2004년〈한국수필〉등단,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논픽션 당선
* 수필집《짝눈》
* 재외동포문학상,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원종린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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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8-12 1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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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자 선생님 몽돌 잘 읽었습니다 우리내 인생이 그렇게 몽돌 같은 삶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더러 아내와 부딛칠 때도 있지만
이제는 되도록이면 코드를 맞추려고 많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정자 선생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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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13 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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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여물지 못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천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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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8-12 2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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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생님, 작품을 통해 이렇게 만나게되니 반갑습니다. 작년이었던가요? 작가회에서 양동 마을 다녀왔던 때가~ 그 후 건강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지면을 통해 좋은 글 만날수 있기를 기대하며 늘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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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13 1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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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반갑습니다.
건강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지만, 그 고통이 창작 에너지라 생각하니 견딜 만합니다.
일상에서 늘 큰 웃음 주시는 강 선생님을 떠올리면 실실 웃음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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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8-12 2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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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자 선생님 반갑습니다. 몽돌은 오정자 선생님께 그러니까 '반려사물'이군요!
근데, 세상에나. 오정자 선생님께 불같이 화내는 분이 계시다니는 것이 당최 믿어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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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13 1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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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요즘 강의 준비로 바쁘시겠어요.
옆지기의 성격이 강하고 급한 데 반해 저는 부드럽고(?) 온화한 편이나 할 말은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지 못하다 보니 지혜롭게 넘기질 못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제는 ‘져주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루뭉수리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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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8-14 1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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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정자 선생님의 성품이 과연 그러합니다! (저 또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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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8-13 0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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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사랑하시니 반갑습니다.
잘 계신지요.
제 글방에 최근 돌이야기를 하나 올려놓았는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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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13 1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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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염천 더위에 안녕하신지요.
작은 돌멩이 하나도 자연의 이치를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수석에 조예가 깊으신 선생님께서는 오석을 들여다보시고 칠흑 같은 밤하늘과 달의 형상을 떠올리셨으니 그 심미안과 상상력에 탄복합니다. 저는 언제쯤 그 경지에 이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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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08-13 0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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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 중이라는 마지막 말이 날쌔게 와서 박힙니다.
몽돌은 백령도와 거제도에서 보았는데 동글동글 납작한 돌의 감촉이 좋았답니다.
~~~불구하고 좋은 수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하여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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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13 1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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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혜 선생님, 반갑습니다.
가능하면 오래 묵혔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급히 쓴 글이라 여물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원고 청탁을 받고 안 쓰는 것보다는 뭐든 써야 발전할 것 같아 펜을 들었습니다.
응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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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8-13 1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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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이란 시 한 수 몽돌을 좋아하는 오정자님께 드립니다.
갔다 와서도
다시 또 찾아가서도
언제나 바위처럼
산과 함께 살고 싶어
산처럼
바위를 곁에 두고 싶어
산길에 뒹구는
돌맹이 하나 주워 왔더니
오석(烏石)이 아니라 한다.
경석(景石)도 아니라 한다.
물형(物形)도
석질(石質)도 없는
나 같은 평범한 돌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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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13 1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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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성철용 선생님, 깊은 울림이 있는 좋은 시 감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마지막 연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석이 아니라 한다/ 경석도 아니라 한다/ 물형도/ 석질도 없는/ 나 같은 평범한 돌멩이라 한다"
염천 더위에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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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3-08-19 1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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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힘든 상태에서도 이렇게 좋은 작품을 쓰는 오선생님의 저력! 행동하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달콤 짭쪼롭한 감칠맛을 느끼곤 합니다. 어짜피 부부란 서로 다른 성격이 만나 살면서 조화를 이루는데,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늘 건강 잘 챙기시길 기원하며, 오랫만에 신선한 바람을 맞은 듯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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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자 |
13-08-23 1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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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선생님, 반갑습니다.
통증에 시달리면서 글을 쓸 때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수필이 사랑스러워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언제나 처음 품은 마음처럼. 부부 사이도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동행이 되겠지요.^^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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