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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3-02-19 07:42
조회 :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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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맛 4
- 누나와의 비밀 -
누나가 부른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지은 죄가 있어 못들은 척하고 숨바꼭질에 열중했다. 아주 꼭꼭 숨어버리고 싶었다. 예쁘던 누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담 너머로 보이는 누나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으리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쪽문을 겨우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부릅뜬 눈이 두려웠는데 짐짓 그러는 것 같아 보였다.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누나는 노란 냄비를 소반에 받쳐 들고 뒤꼍으로 갔다.
장독대 뒤로 돌아갔다. 누나가 내 앞에 내려놓은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볶음탕이었다.
“네가 죽였으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말고 다 치워야 한다. 안 그러면 엄마하고 할머니한테 이 누나까지 혼나니까.”
혼나는 것은 나중에 닥칠 일이고 우선 냄새가 황홀하다. 고추장물은 뒤집어쓴 감자가 발그레하다. 닭다리에 붉고 투명한 기름방울이 맺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똥집은 아껴가면서 조금씩 떼어 먹었다. 그 쫄깃한 맛, 오돌오돌한 질감, 이 맛을 눈치 볼 것도 없이 혼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꿈만 같다. 무슨 복에 한자리에서 닭다리를 두 개나 먹으랴. 연하고 부드럽다. 누나가 찬밥 한 공기를 갖다 주었다. 나는 감자 한 조각까지, 뼈다귀에 붙은 살 한 점까지 다 먹고 국물에 밥을 비벼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흡족하다. 눈이 툭 튀어 나오는 기분이다.
정말 내가 저지른 일이었다. 가을을 맞은 약병아리가 털갈이를 할 때는 온몸이 드러나도록 털이 빠진다. 보기에도 징그럽다. 게다가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온몸이 빨갛게 얼어서 보기에도 안쓰럽다. 그렇게 털이 홀랑 다 빠진 닭 한 마리가 뜰에 넣어 놓은 참깨를 찍어 먹었다. 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헤집기까지 했다. '훠이' 하고 쫓아 보았으나 막무가내이다. 나는 들은 척 만 척 고개만 갸우뚱거리는 그 놈이 얄미워 털 빠진 몸뚱이를 덥석 잡았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나는 그대로 한길도 넘는 마당으로 ‘휙’ 날렸다. 날리는 순간에 '아차' 했다. 깃털이 다 빠졌으니 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날개를 잃은 닭은 내던진 것처럼 마당에 '툭' 떨어져 두 다리를 한두 번 버르적거리더니 모가지를 쭉 늘이고 죽어버렸다. '이걸 어쩐다지?' 꾸중하시는 할머니 모습이 검은 구름처럼 엄습했다. 나는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떼고 아이들의 숨바꼭질에 어울렸다. 몇 번이나 집 쪽을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열 살이나 위인 누나가 공범이 되어 재빨리 닭볶음탕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흔적도 없이 먹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닭볶음탕 한 냄비를 뚝딱 비우고 입에 비누칠해서 싹싹 닦은 다음 줄행랑을 쳤다. 어머니께도 할머니께도 닭은 족제비가 물어간 것이 되었고, 닭볶음탕은 누나와 나만의 영원한 비밀이 되었다. 아득하게 세월은 흘렀지만 열네 살 개구쟁이 시절, 숨어서 먹던 그 비밀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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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2-19 1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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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음식에 관한 화두를 붙잡고 매진하시는 끈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보내주신 <에세이뜨락 >창간호 잘 받았습니다. 시간나는 대로 잘 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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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2-20 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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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감사합니다. 음식과 우리 정서 우리 문화를 찾아보려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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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2-20 1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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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 저도 중학교 다닐 무렵 선생님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왜냐 하면요 제 이모할머니께서 제 첵임을 걸머지셨기 때문이죠. 그 무슨 사연이냐 하면요. 저는 어린시절 정만을 둘 때가 더러 없어서 온갖 색조를 한 꿩닭을 제 동무로 삼고 마치 요즘 애완견처럼 그렇게 길들여 키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모할머님께 갖다드리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그 닭과 강아지 처럼 그렇게 지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할 수 없었죠. 아버님의 명령이니깐요. 보내고 나서 바로 그 닭을 도난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요. 왜냐하면 애지중지 강아지처럼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도둑에게까지 마음을 터놓고 사라져간 그 닭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정녕 그시절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부르면 강아지처럼 따라오기만 하던 그 꿩 암탉의 그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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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2-20 2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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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동물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매우 정서적인 소년이셨나 봅니다. 저는 속속들이 개구쟁이라 어른들의 속을 많이 썩여 드렸습니다. 좋은 말씀 아름다운 추억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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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3-02-22 0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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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러 재미있는 글 읽었습니다.
동화 한 편을 감상한 기분입니다.^^*
좋은 글 많이 읽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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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2-22 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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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득 생각난 개구쟁이 시절을 그려보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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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3-02-23 1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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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부드러운 닭고기만큼 맛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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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2-25 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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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하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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