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많았다.

포은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살해되었고 두문동 72현도 비명횡사하였다. 그러나 지역민이 수령과 함께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킨 유례는 오직 여수에서 찾아야 한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사자를 보냈으나 여수현령 오흔인은 석창성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자를 잡아 가두었다. 오흔인은 5년을 버텼으나 결국 체포되었다. 조선은 그를 성에 유폐하여 아사시켰다. 이성계는 반역향이라 하여 여수 현을 폐하고 여러 부곡을 순천부에 복속시켜버렸다. 세조는 오흔인의 지조를 높이 평가하여 호조판서를 추증하였다. 그러나 여수현은 조선의 명운이 사위어가는 고종 때에야 복현 되었다. 조선은 오흔인보다는 여수 현의 거민을 반역의 뿌리로 보았던 것일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복현은 여수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이 거둔 결실이라고.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1895년 조선은 대대적 군제개편을 단행하였다. 이때에 전라좌수영이 혁파되었다. 관아 곧 행정관청이 없었던 여수지역에서 사실상 관아역할을 해 온 전라좌수영이 사라졌으니 조정에서는 이 공백을 메워야 했다. 복현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때에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였고 십여 년 뒤에는 대한제국의 군대가 완전히 해산되고 말았다.

삼도수군통제영 겸 전라좌수영은 객사에 전패를 모시고 매월 두 차례 망궐례를 올렸다. 이러한 객사는 지방수령이 정무를 보던 동헌보다 격이 높았다. 선조는 관아가 없는 전라좌수영에 웅장한 다목적 건물을 세워 이순신과 함께 필사의 각오로 왜적을 물리친 지역민을 위무하고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 관민이 매월 두 차례 망궐례를 올리도록 함으로써 여수 지역민도 엄연한 조선의 백성임을 천명한 것이다. 관아가 있었다면 따로 객사를 지을 필요는 없었을 터이다. 진남관은 숙종42년(1716년)에 소실되었고 2년 후 95대 수사 이제면이 재건하였다.

여수는 일찍이 반역의 땅이었으나 그 여수 사람들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이순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연전연승으로 왜적을 격파하여 나라를 구하였으니 조선왕조에 있어 여수는 더 이상 반역향이 아니라 빛나는 구국충절의 땅으로 떠올랐다. 선조임금은 임란으로 소실된 진해루를 복원하기보다는 시급히 대규모 객사를 짓도록 함으로써 세세토록 여수의 구국충절을 기리게 하고 오랜 세월 소외되고 고통받아온 여수사람들의 한을 위로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진남의 대상은 남방의 왜국이 아니라 바로 지난날 반역의 고을이었던 여수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진해’는 바다를 진압한다는 뜻이다.

중국 광저우에는 바다에 출몰하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세운 진해루가 있고 강화도에도 진해루가 있다. 전라좌수영의 진해루에서는 작전회의가 열리고 활쏘기가 행해졌다. 1904년, 도고가 이끄는 일본연합함대는 진해만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대마도 근처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섬멸하였다. ‘진해’라는 지명은 일본인들이 러일전쟁의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추측된다. 예부터 우리의 바다에는 왜구가 출몰하였고 나라에서는 왜구 격퇴에 심혈을 기울였다. ‘진해’는 단순한 방어차원을 넘어 바다를 제압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학자연하는 사람들은 근거도 없이 강변해왔다. ‘진남’은 남쪽의 왜구를 진압한다는 말이라고. 여수는 정체모를 ‘진남’에 취하여 축제도 시장도 건물도 상호도 학교도 교회도 단체도 온통 ‘진남’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진남’을 남쪽의 왜를 진압한다는 의미로 썼다는 기록은 눈에 띄지 않는다.

현존하는 ‘진남’을 찾아보았다.

고려시대 구주성의 남문이 진남루인데 구주성은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 시이다. 고려의 수도 개경의 북쪽 내륙에 있는 진남루의 의미가 쉽사리 읽히지 않는다. 남한산성에도 진남루가 있다. 공주시에 있는 공산성의 남문도 진남루이다. 공산성의 진남루는 조선시대 때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진남루는 제천시에도 있고 진주의 북장대에도 있다. 경주의 기림사에도 진남루와 진남문은 있고 전주객사에도 진남루가 주관으로 버티고 있다. 화성행궁의 남문도 진남루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서산시 해미읍성에는 진남문이 있다. 대구 팔공산의 가산산성과 문경 석현성과 고모산성에도 진남문이 있다. 보령시 오천성에도 진남문은 있고 황해남도의 연안읍성에는 진남문은 물론이고 진동문, 진서문도 있다.

곳곳에 산재한 진남루는 성읍의 남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성읍의 남문인 진남루에 대응하는 북문은 ‘공북루’이다. 조선은 구한말에 이르기까지도 350여 개의 성읍국가였고 공북과 진남은 성읍의 정형이다. ‘공북(拱北)’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하여 공손하게 절을 올린다는 뜻이다.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신하의 예이다. 따라서 ‘진남’이 ‘왜구진압’이라는 해석은 ‘공북’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진남’이 남쪽의 왜구 진압이면 허다한 진동루와 진동문, 진서루와 진서문은 누구를 진압한다는 의미인가. 1910년 병탄 직후 조선의 성읍 말살에 나선 일제가 그들을 진압한다는 ‘진남’을 남겨두었겠는가.

임금의 신하된 자는 하인을 막론하고 북문을 드나들면서 예를 갖추며 충성을 다짐하고 남문을 출입하면서 임금의 통치권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북문이 한양도성의 북문이든 경복궁의 북문이든, 그 남문이 숭례문이든 광화문이든 달라질 일은 없다. 국태민안을 바라는 임금의 통치권은 한 글자 곧 ‘진(鎭)’에 수렴하니 진(鎭)은 다름 아닌 임금의 덕치에 의한 나라의 안정과 평안이다. 그러므로 평안도에 진남루가 있다하여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북쪽은 임금의 자리이니 임금이 굽어보는 방위는 남쪽이고, 임금이 둘러보는 좌우는 두 말할 나위 없이 동과 서다. 임금의 입장에서는 동, 서, 남이 다 통치대상이니 진동, 진서, 진남 곧 삼방을 진무(鎭撫)하여 평화와 안정을 기함이 당연지사이다. 신하의 처지에선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공경의 예를 표함이 마땅하다. 임금은 북좌남면하였다. 임금의 자리는 신의 자리와 같다. 임금은 좌청룡과 우백호와 남 주작을 거느리고 다스린다. 동서와 남방은 모두 신하와 백성이다.

왜구는 삼국시대에도 발호하였으며 특히 여말에는 극에 이르렀다. 조선왕조도 왜구 때문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왜구는 비단 삼남지방뿐 아니라 서해와 동해, 심지어 내륙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출몰하여 살인과 약탈과 납치를 자행하였다. 그러나 왜구가 한양도성 남방의 대마도를 근거지로 활동했다하여 사료의 제시도 없이 ‘진남’을 ‘왜구진압’으로 단정하는 것은 비약을 넘어 역사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왜구는 바다에 출몰하였으니 ‘진해(鎭海)’가 어김없다하겠다.

진남관은 여수의 실질적 행정기관이었다. 전패를 모셨으며 교지가 수교된 객사이다. 객사이니 사신이나 중앙관리의 숙소로도 제공된 다목적 건물이다. 객사는 관찰사의 동헌(감영)보다 격이 높았다. 조선팔도에 진남관의 위용에 견줄만한 객사가 없을뿐더러 웅장한 본관에 ‘진남’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사례도 없다. 선조는 태조대왕 때 반역 향이었던 여수를 아주 특별한 지역으로 승격시켜 준 것이다. 여수 현이 복현된 배경을 되짚어보면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여수 현은 전라좌수영이 혁파된 후에 복현되었다. 선조임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웅장한 객사를 하사하여 여수백성의 구국충절을 기리고 여수의 평안을 축원해 준 것이다. 아울러 전패를 모시도록 허락함으로써 태조 이후 2백 년 동안 소외되었던 여수가 더 이상 버려진 고장이 아니라 왕조의 엄연한 통치권역이며 여수지역민이 어엿한 임금의 백성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진남관은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진남관은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중심이 여수임을 묵묵히 증거하고 있다. 충민사도 오충사도 타루비도 대첩비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진남관은 오늘날의 도청보다 격이 높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수 지역민은 비록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부에 속하여 오랜 세월 갖은 굴욕과 고통을 받아 왔지만 삼도수군통제영과 전라좌수영의 아주 특별한 백성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고 풍전등화의 조선왕조를 구해낸 아주 특별한 백성 말이다. 이러한 백성은 고금동서에 없다. 여수는 고려 백성의 절개를 지켰으며 조선을 구하였다. 마침내는 파현된 여수를 팔도의 감영보다 더 높은 성읍으로 회복하였다.

진남관, 가만히 웃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