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어느 일요일 날 대낮에 송파구 잠실 주공 아파트 단지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의 50세가량 된 부인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자기 집에서 자녀들도 출타하고 혼자 있다가 피해를 당한 것이다. 사건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사체를 살펴본바 여러군데 칼에 찔려 피를 많이 흘리고 사망한 정황이다. 옷장은 열려 있었고 그 속에 있는 이불 위와 벽면 마다 피자국이 홍건히 묻어 있었다.

현장 상태로만 봐서는 항거 불능한 상태에서 조용히 살해된 것이 아니고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심한 몸싸움 끝에 살해된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에 피를 묻힌 모습이었다. 강도가 나타나서 몸싸움 끝에 살해된 것이 아니면 잘 아는 면식범에 의해서 다툼 끝에 살해 된 것이었다.

일차적으로 용의 선상에 오르는 것은 어쩔수 없이 남편이다. 평소 자주 다투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남편의 알리바이를 조사했으나 아침에 산에 가서 사건이 끝난 훨씬 후인 저녁 무렵 돌아왔다. 돌아온 후의 충격받은 모습과 행동거지에서도 특이한 점은 없었다. 수사회의가 열렸다. 남편의 알리바이는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한팀은 피해자의 보험 가입관계, 채권채무관계, 원한관계나 치정관계등 주변 조사를 하고 한팀은 강력 범죄 전과자들에 대한 수사, 한팀은 피해자의 현장 정황으로 보아 그 정도의 피투성이가 되었으면 범인이 도주할 때 흔적이 남든지 목격자가 있을 것이므로 현장 주변 탐문수사를 하기로 했다.

사건 발생후 일주일이 경과되었음에도 수사의 진척이 없었다. 수사본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통상 사건 발생 일주일 이내에 단서를 얻지 못하면 자칫 미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던중 남편의 행적에 의문이 발견 되었다.

사건 당일 아침에 산악회 모임에 참석한 사실은 확인했으며 저녁에 귀가시까지 그 모임에서 같이 있었다는 진술을 얻은바 있었다. 그래서 일단 알리바이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산악회 회원 여러명을 재조사한바 도중에 결혼식에 간다고 일찍 내려왔다는 것이다.

남편을 다시 불렀다. 이렇게 피해자의 남편등 가족이 혐의가 의심되어 조사를 받게 되면 수사 결과 결백이 밝혀지게 될 경우 어머니가 참변을 당한 상처와 범인으로까지 의심받았다는 상처로 이중의 상처를 받게 되어 미안하기 짝이 없다.

남편이 도중에 산에서 내려온 사실은 인정했다. 대략 사건 발생 전후의 시각이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간 사실은 없었다. 남편의 행적을 추궁했으나 산악회원들과 떨어져 혼자 걷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사가지고 올라간 김밥도 혼자 먹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석연치 않아 자녀들을 불러 평소 부모사이가 어떠했는지 조사했다.

자주 다투었다는 진술은 들었으나 결정적인 내용은 없었다. 다른 팀의 수사에서도 진척이 없었으므로 일단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집중수사를 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친정 가족들에 대한 탐문수사, 남편의 원한 관계, 보험및 채권채무관계, 여자관계등을 수사했다.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으므로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는 의지를 가지고 끈질기게 달라 붙는수 밖에 없다. 범인은 범죄를 은닉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수사관은 어떻게 하든 파헤치려고 한다. 남편은 차라리 자기를 잡아 넣으라고 할 정도로 찾아오는 수사관을 징그러워 했다.

어떻든 용의자의 진술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에도 의심을 가지고 확인해야한다. 수사하다가 막히면 현장을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반복해서 찾는다.

그것도 사건 발생 시각에 맞추어 가봐야 한다. 현장에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 할 수도 있고 그 시각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성을 새롭게 찾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시각에 세탁소 사람이 지나간다든지. 야구르트 아줌마가 들락거린다든지 의외의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cctv로 용의자의 동선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cctv가 없었다. 남편을 수사해본바 의심은 가는 점이 많았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찾아 내지 못했다.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남편은 긴장했다. 수백항의 질문 사항중에 아내를 죽인 사실이 있느냐는 물음에 많이 반응했다.

그러나 거짓말 탐지기 반응만 가지고는 범인으로 단정할 수도 없고 그런 증거가지고는 법정에서 부인해버리면 유죄로 인정 받지도 못한다. 남편을 일단 풀어주었다. 다시 부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수사요령상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뿐이다. 용의자는 혐의를 벗어낫다고 안도한다. 수사관은 바로 이점을 노리는 것이다. 용의자를 바싹 미행하는 것도 이때 부터이다. 남편이 범인이라면 실수는 안심하면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후 남편의 새로운 행적이 발견되었다. 남편에게는 애인관계로 지내는 여자가 있었다. 산악회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후 애인과 만났던 것이다. 그 여자도 가정이 있는 유부녀였다. 남편은 끝까지 그 여자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사관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당연히 남편을 다시 불러 혹독한 취조를 했다. 남편의 여자 관계로 인해 피해자와 자주 다투었던 점도 실토를 받았으나 범행은 끝내 부인했다. 그때 강도 전과자들을 수사하던 팀에서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했다,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칼을 샀던 가게와 그 칼을 버린 장소에서 찾아낸 것이다.

사건은 다른 곳에서 해결 되었지만 용의자로 몰렸던 남편의 불투명한 여자관계로 한동안 수사에 차질이 있었다.  처음부터 여자관계를 밝혔으면 다른 곳으로 수사를 집중하여 범인을 일찍 검거했을텐데 공연히 시간 낭비만 하게된 것이다. 결국 남편과 자녀들 모두 깊은 상처를 입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