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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3-01-06 22:44
조회 :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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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돌아왔다. 5년만의 귀환이다. 그동안 나무들은 더 무성해지고 사람들도 새 얼굴로 바뀌어 조금은 낯선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이 곳 아파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우리가 떠나기 전이나 다름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동네 앞 공원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엔 여유마저 감돌았다. 팽배한 긴장감으로 서둘러 공원길을 빠져나가던 아침 출근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운동하는 모습도 다양해 각종 기구에 몸을 맡긴 채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가 하면 넓은 운동장 둘레를 무리지어 걷기도 하고 마라톤 선수처럼 달리기를 하는 등 각양각색이다.
아빠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아이는 손에 쥔 라켓이 아직은 힘에 부치는 듯 이리저리 공을 날려 보내는데 젊은 아빠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싱글 벙글 이다. 나는 그런 광경들을 이어폰의 음악과 함께 눈과 귀로 쫓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상은 지극히 평화롭고 안온했다. 모처럼 가져보는 마음의 여유. 얼마나 그리웠던 삶의 모습들인가.
이제야 말이지만 떠나면 그만일 줄 알았다. 소소한 추억이나 그리움 따위는 애초 남기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떠날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그 때 우연히 찾아온 새 아파트의 유혹.
그 날 아내와 함께 찾은 모델하우스는 오밀조밀한 공간배치와 현란한 실내 장식이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잠시 눈요기나 하고 가자던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는 둘러보는 내내 감탄사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충동구매의 유혹을 차단하느라 서로를 다잡았다.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라는 게 의례 그런 것이라는 둥, 괜한 시비를 걸어보기도 하며 행여 갖게 될지도 모를 환상을 경계 했다. 그러나 후유증은 오래지않아 엉뚱한데서 나타났다.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혀 왔다. 답답해 보이는 실내 구조와 퇴색한 가구들. 질서 없이 널려진 삶의 소품들이 눈에 거슬렸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오던 집이 어느 한 순간 구닥다리로 변하기라도 한 듯 마음을 어둡게 했다. 알 수 없는 조화였다. 한 번 맺힌 모델하우스의 잔상(殘像)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부부를 괴롭혔다. 그리고 마침내 새 아파트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살고 있는 집에 조금만 더 웃돈을 얹으면 된다는 분양회사의 그럴듯한 권유와 우리의 허영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새 아파트에선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용했고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을 열면 펼쳐지는 푸른 초원과 불어오는 맑은 바람,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루어진 결실이어서인지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음미하듯 숨기고 다녔다. 그렇게 새 아파트와의 밀월은 한동안 지속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어찌 예상인들 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회의감이 고개를 들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독감. 하루 종일가도 사위는 쥐죽은 듯 정적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고 곧잘 전원도시에 비유되던 동네는 적막강산으로 절해고도나 다름없었다.
점차 떠나온 아파트와 그 곳 사람들이 눈앞을 어른거렸다. 베란다에 서면 끝없이 이어지던 차량들의 행렬과 내뿜는 매연. 하루에도 몇 차례 들려오는 소방차의 사이렌과 구급차의 경적들로 전원도시와는 처음부터 인연이 먼 동네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모두가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정문 앞 노점 상인들의 모습역시 지나고 보니 그리움의 대상이다. 구청의 단속을 피해 해 질 무렵이 다 되서야 장이 서곤 했다. 잡상인이 없어야 아파트의 ‘브랜드’가치가 높아진다고 관리사무소와 부녀회에서 그렇게 외쳐대며 불매운동을 펼쳐도 끈질긴 생명력은 어쩌지 못했다.
다 팔아본들 몇 푼 남길까 말까한 고만고만한 분량의 채소와 나물, 혹은 청국장과 두부 따위의 식품들을 앞에 놓고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를 지키던 그들의 고단한 삶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듯 향수처럼 다가왔다.
두고 온 고향을 떠올리듯 그렇게 나는 밤마다 그리움으로 열병을 앓았다.
이제 이곳으로 귀환한지도 4년을 넘는다. 한 번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 온 경우가 흔치 않아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연을 궁금해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우물거리는 말이 있다.
" 아무려면 정든 옛집만 할 까요!"
정말이다. 그 곳이 궁전이라 해도 나는 다시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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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3-01-07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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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전말기, 잘 읽었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들여놓고 잊힌다는게 떠난다는게 어디 그리 녹록한 일이겠습니까. 세상만사가 그럴진데 多感하고 多情하신 선생님의 일탈과 귀환은 어찌보면 우리 기성세대의 정서가 아닐런지요. 지금 머무는 곳, 그곳에서 항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목척교 다리위에서 물으시던 어머니의 향수 같은 ' 무엇 사 줄까? ' 그 눈물겨운 그리움을 동경하며 항시 평안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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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7 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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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情때문이지요. 나이들어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닐 것이 아니라 낯익은 이웃과 진득하니 정붙이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그렇습니까, 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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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07 1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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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님, 선생님의 정서가 이해가 갑니다. 나도 40여년 뿌리를 내렸던 곳에서 한 번 옮기게 되니까, 또 쉽게 옮기게 되고, 어느 곳에서도 정 붙이기가 힘이 듭니다. 이번에는 따뜻한 남쪽으로 옮겨 볼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도 문제 될 것이 없으니, 항상 새로운 곳으로 유목민처럼 살다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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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7 2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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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거처를 옮길 계획이라도 있으신지요? 가평의 전원이 참 좋아보이던데 아쉽습니다. 김선생님은 유목민의 삶의 방식이 썩 어울릴 것도 같은데~ 낭만 도 있고, 적극 권하고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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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1-07 1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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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금의 아파트를 구입해서 벌써 십여년이 되어갑니다. 부곡 메일 시장하며 왕송호수의 철새들하며 오분만 걸으면 시골길이 이어지고, 그러니까 시골과 도시의 혼합형이라고나 할까요. 산책로도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좋구요. 공기가 맑고 깨끗한 이곳이 정녕 길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재건축이 되면 떠나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승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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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7 2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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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본적은 없어도 임선생님 사시는 그곳, 사람을 참 편안하게 감싸주는 곳일것 같은 느낌입니다.선생님의 글에 몇번 등장했던 '왕송호수'는 특히 정겹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하신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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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1-08 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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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로 이사하셨나요. 귀한이라고 하는 걸 보면 전에 사시던 아파트같기도 한데요. 소음해결이 되었다니 그이상 좋은 집은 없을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단지는 옛날 지은거라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윗집에서 물내리는 소리가 폭포수 처럼 들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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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9 2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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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 새 해를 맞이하여 이 자리를 빌어 안부를 여쭙습니다. 작년 여수 박람회 다녀오면서 문득 임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임선생님이 계신곳이라 생각하니 남다른 정이 느껴지더군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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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3-01-09 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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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사시던곳으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사는 집은 편아함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다가 단독으로 이사를 왔는데요 잠간 살다가 다시 아파트로 들어가려했던 것이 옥상의 텃밭 때문에 그냥 눌러 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곳에 정겨웠던 풍경, 우리가 떠나올 때 아쉬워하던 사람들의 모습에 많이 아쉽고 그립기만 합니다.
선생님 글에서도 그리움이 물씬 풍겨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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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9 2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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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살던 그 아파트, 그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 날,고향에 온듯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마음 편하고 정든 이 곳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지요. 감사합니다. 김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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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월 |
13-01-09 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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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누구나 하는 말이 시골의 전원 주택 운운하는데
실제로 살다보면 그게 아니라는게 주변에서 들려오던군요.
강 선생님도 조용한 곳에서 다시 시끄런 옛집으로 돌아 와
마음의 평안을 얻는군요.
역시 사람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 좋은가 보네요.
저는 도봉산 밑에서 서민 아파트에 만족하며 그냥 10여년째 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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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9 2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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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지나친 정적보다는 약간은 시끄러운 주변환경이 오히려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좋은 것 같더군요. 도봉산 자락의 서민 아파트,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날 것만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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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1-19 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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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의 여러 좋은 글 중에서도 전 이 글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엣 선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속(俗)'에 (居)하되 '속(俗)'에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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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19 2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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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俗)'에 (居)하되 '속(俗)'에 머물지 않는다" 짧은 말속에 숨어있는 선현의 가르침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김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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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1-20 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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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들었던 아파트에서 5년간 떠나 귀환하시어 승전고와 같은 울림은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좋은 곳'이 가장 좋지요! 뭐. 세상 사람들이 만가지 좋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싫은 것이지요.
다시 귀환하신 宅에서 천수를 누리시고 세세 행복하소서.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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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20 2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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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 감사합니다. 한동안 뜸하셨지요?나이 들면서 생각하는 것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쓸데없는 욕심 버리고 눈에 익은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는 것, 더이상 바랄것이 없겠지요. 겨울도 중반을 지나는듯 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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