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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3-01-05 11:28
조회 : 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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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 한행(閑行)
가평의 수은주가 연일 영하 20도 주위에서 맴돈다. 지구 온난화라는 이야기가 도저히 믿기지를 않는다. 연거푸 큰 눈이 내린 후, 이제 겨우 마을길 포장도가 까만 얼굴을 들어낼 즈음, 오늘 새벽 다시 눈이 내렸다. 일찍부터 백담사를 그려왔으나, 동해 쪽 나들이는 언제나 싱싱한 해산물이 유혹하는 속초 바다가 먼저였다. 그동안 빠듯한 일정과 올라 갈 엄두를 내지 못하여 스쳐 지나기만 하였지만 이번에는 꼭 백담사를 오르고 싶었다.
녹은 눈이 다시 얼고 있어, 조심스럽게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백담사 입구에는 설악을 넘어온 칼바람이 겨울나무들을 ‘윙-윙’ 울리고 있었다. 차량은 통제 되었고, 주차장과 매표소, 공원 사무소, 공중화장실 등, 모든 시설물들은 꽁꽁 얼어붙어, 정물(靜物)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 백담사까지는 7,2km, 걸어서 1시간 50분이 걸린다한다.
각오를 다지며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였으나, 눈과 얼음으로 겹겹 쌓인 내설악 길은 한 발자국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출발부터 전전긍긍, 얼마 가지 못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 즈음, 미끄러지듯 승합차 한 대가 우리 옆으로 다가선다. 젊은 기사는 셔틀차가 끊인 동절기에 오르기 힘들어 하는 참배객들을 태워주며 공덕을 짓는다고 한다. 낭떠러지가 이어진 눈 쌓인 곡선길이 계속되어, 조마조마하여 차에 오른 것을 후회하기도 하였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하얗게 분칠 단장한 설악이 고개를 내밀어 유혹하고 있었지만 눈길 한번 주지 못하였다.
30여분을 힘겹게 올라 백담사 일주문이 보이자, 반가움과 함께 조렸던 마음이 내려 않는다. 절 입구, 계곡에는 참배객들의 염원을 쌓아 올린 수많은 돌탑들이 봉곳봉곳 하얀 눈을 이고 고만조만 서있다. 외롭고 기댈 곳 없는 중생들이 부처님의 품안에서 갖가지 소원을 빌며 하나하나 쌓았으리라. 부처님은 그 간절한 기원들을 일일이 들어 주셨을까?
내설악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백담사는 평평한 분지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동해의 칼바람도 비껴가는지 적송들의 울음도 들리지 않고 낭낭한 염불소리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한객(閑客)의 심사(心思)를 진정시켜 준다.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백담사는 등 넘어, 외설악 신흥사의 말사이다. 일제강점기에 만해 한용운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지식인의 울분과 저항을 담은 시집, 님의 침묵과 불교유신론 등을 집필, 만해사상의 산실이 된 곳이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년여 동안 머물며 국민들에게 속죄하는 모습을 보였던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넓디넓은 오지랍으로 독립운동가도 독재자도 모두 품어주신 것이다.
만해기념관은 동안거에 들어가 깊은 침묵에 빠져있고, 하얀 눈에 아랫도리를 묻은 선생의 흉상만이 온화한 눈빛으로 방문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계신다. 선생은 자유와 평등, 인본주의 사상과 불교개혁 및 불교의 현실참여를 역설하셨다. 이곳에서 득도하신 선생은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중 한사람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다. 불행했던 한 시대의 선각자로서 고뇌하셨던 선생의 숨결과 모습을 엿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대표작으로 빼앗긴 조국을 님으로 비유한 시(詩), ‘님의 침묵’을 남기셨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 끝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중략------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곡조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만해
극락보전 앞 요사 채에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기거한, 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속을 들어 내 보여준다. 내외가 덮었던 이불, 손거울 등등의 소박한 용품들과 당시 생활을 읽을 수 있는 사진 몇 장을 전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닥친 권력 공백기에 무력으로 재빠르게 정권을 탈취하여, 희생자도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훗날의 역사는 그의 공과(功過)를 분명하게 심판할 것이다. 어쨌든, 설악의 냉기가 이불속을 비집고 들어왔을, 이방에 누워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만해 기념관은 굳게 잠그면서, 이 방은 공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 대통령이 이곳에 은거해 이토록 고생하며 반성하였으니, 이제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일까? 날개 꺾인 중생을 그만 놓아주자는 부처님의 배려였을까? 하해와 같으신 부처님께서는 아귀다툼하는 중생들 그 누구도 모두 다 불쌍하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산그늘이 내리기 전, 하산을 서둘렀다.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이제야 눈 덮인 설악의 속살과 시린 초록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청량한 비경(秘境) 속에서는 우리네 인간살이가 무상하기만하여 만해도, 전두환도, 방문객들도 모든 것을 훨훨 털어내고 가벼워진 어깨로 내려 갈 수 있었으리라. 나또한 고승은커녕 땡초 스님의 설법 한마디 듣지 못하였지만,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발걸음이 한결 가뿐해 졌다.
눈 쌓인 계곡 얼음 아래에는, 그래도 설악 옥수(玉水)는 흐르고 있다며 ‘졸졸, 콸-콸’ 노래 부르고, 키 큰 적송과 자작들은 설악 비탈에 서서 하늘 바람을 맞아 ‘훠이-휘이’ 휘파람을 불어 대고 있었다.
2012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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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1-05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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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 저도 강원도 춘천에 근무할 때 백담사를 거쳐서 우리 한국수필가협회 모임에 참석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마 그 때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갑자기 귀가하는 바람에 우리 모임에 오신 분중 저처럼 바쁘신분 한분과 길위의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어서 그 감회가 더욱 더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아무튼 백담사는 추억의 백담사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순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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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07 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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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년말에 산바람이 쏘이고 쉽어 한 번 갔다 왔습니다.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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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3-01-05 2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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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 좋은 때 다 뒤로 미루시고 하필이면 이 엄동설한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백담사 여행이라니 그럴만한 사정이라도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하기사 여행이란 마음 내킬때 앞뒤가리지않고 떠난다고 합니다만~ 선생님 성품처럼 담백한 내용의 글, 반갑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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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07 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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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님, 뭐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고, 잡다한 상념도 많고 하여, 시원한 산바람 쏘이려 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매운 추위에 건강 조심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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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3-01-06 1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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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접하는 만해의 ' 님의 침묵,' 그것도 그가 묵었던 백담사의 겨울 기행과 함께 들으니 그 정취가 새롭습니다. 백담 한행으로 한해를 마무리하신 선생님, 개운해진 마음으로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더욱 행복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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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07 1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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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 새해 년초를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이곳은 매일 영하 20도 위, 아래에서 기록을 깨어 가고 있습니다. 창밖 들에는 내린 눈이 녹지를 않아, 매일 하얀 설경입니다. 뭐가 잘 될 것 같은 풍경인데, 손에 잡히질 않아, 내일 또 떠나야 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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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순태 |
13-01-07 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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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반갑습니다.
눈 덮인 내설악의 정취가 만방으로 전해지는 무공해 새해 선물 고맙습니다.
티없이 맑은 하늘, 얼음밑으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
하얀 세상에 검푸른 소나무의 굳건한 자태...
선생님 덕분에 백담사도 한바퀴 돌아 본 상쾌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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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07 1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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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태 선생님, 반갑습니다. 추운 날씨에 잘 지내시죠. 백담사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깐 바람 쏘이고 왔습니다. 그런데 좋기는 하더군요. 눈이 덮이고 얼음이 겹겹 언,그 아래에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 왔습니다. 양선생님,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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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3-01-07 2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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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선생님 이 추운 겨울에 산행을 하셨군요. 선생님 글을 통해 백담사를 다시 그려봅니다. 백담사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계절이 다 좋은 곳이지요. 제가 갔을 때는 만해 기념관을 다 돌아보았는데 선생님이 가셨을 때는 닫아놓아서 많이 아쉬우셨던 것 같군요.
눈 쌓인 계곡 얼음 아래 ‘졸졸, 콸-콸’ 물 흐르는 소리, 키 큰 적송과 ‘훠이-휘이’ 휘파람을 불어 대는 소리 등 현장감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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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09 0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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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선생님,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 설악이 너무 청량하여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올라 갈때와 내려 올때의 기분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좋은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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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1-19 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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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고찰 '백담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울울답답해옵니다.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우국지사 '卍海 한용운'과 '독재권력자 전두환' 간의 거리도 한뼘에 불과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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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3-01-20 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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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앞에서, 만해와 전두환의 차이는?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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