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가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제각각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박근혜씨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총탄에 잃은 불행한 가족사를 가슴에 안고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역경을 헤쳐온 용기에 인간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첫 일정으로 국립 현충원 참배중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소에서 헌화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는 냉정한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이 여인의 눈물을 앗아 갔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선거 캠프에 있는 요원들은 박근혜씨가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차갑게 메말라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30여년전 박근혜씨와 청와대에서 함께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집에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박근혜씨는 대통령의 딸이었고 나는 월급 받고 근무한 직원에 불과했지만 어떻든 한 울타리에서 몇 년간 같이 산 것만은 사실이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박근혜씨가 유학 생활을 접고 22살 때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대부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잘 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박근혜씨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총탄에 잃은 불행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고 본인 의사와는 상관 없이 육여사 대신 청와대 안주인이 되었다. 안주인이라고 해도 대외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육여사 대신 한것이지 육여사처럼 한 가정의 어머니 같은 안주인은 아니었다. 나이도 어려서 그런 것 까지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녀들중 육사로 진학한 박지만군과 둘째 딸인 박근영씨가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대신 박근혜씨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라는 것, 큰 영애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출타하지 않고 집안에 머무른다는 것. 가족경호원들이 작은 영애는 심심치 않게 말썽을 부리는데 큰 영애는 어려울 정도로 빈틈이 없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육여사 생전에는 청와대 안 팍에 은행잎 낙엽이 떨어질 때면 운치를 즐기라고 쓸지 못하게 했는데 박근혜씨는 그런 주문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수줍고 겸손했다. 또 육여사는 추석이나 설에는 아내들에게 줄 선물이나 그때마다 유용한 먹거리들을 직원들에게 챙길어 주었다. 겨울이 되면 동태도 한 짝씩 나눠주어 집에 가지고 가서 도끼로 떼어 가면서 끓여 먹던 기억도 있고 때마다 보너스도 받고는 했는데 박근혜씨는 그런 것 까지는 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직원들도 어린 박근혜씨에게 그런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박근혜씨는 선대위원장인 김성주씨의 권유로 처음에는 어색해 있으나 여성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어머니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국민들을 보살피겠다고 했다. 물론 성실하고 정직하고 인정어린 통치를 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30여년만에 대통령의 자격으로 청와대를 다시 들어가는 감격과 남다른 감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묘소앞에서 조차 눈물을 보이지 않는 냉정한 모습을 보고 착잡한 심경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연습을 해본일이 없을 텐데 어머니 같이 여리고 세심한 마음으로 바라 보는 눈을 가질수 있을까. 차라리 어머니 같은 여인이라기 보다는 철의 여인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