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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1-11-18 04:26
조회 :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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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그 날의 상황이라는 것이 좀 묘했다.
저녁 식사를 끝으로 모임이 파한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행과 함께 전철역을 향해 발길을 옮기던 중이었다. 갈림길에 이르자 H가 갑자기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자기와 함께 가면 목적지인 서울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데 번거롭게 두 번씩 차를 갈아탈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 역시 모르는바 아니었으나 그동안 불편을 모르고 쭉 반복된 동선이었다. 대오를 이탈하면서까지 그녀를 따라나선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뿐 아니라 쑥스럽기도 하여 잠시 주저하는데 반응은 의외로 일행에게서 먼저 나타났다.
돌발적인 그녀의 권유가 의외인 듯, 그동안 둘 사이에 남모르는 은밀함이라도 있었다는 말이냐는 듯 모두들 뜨악한 얼굴들이 되어 나의 선택을 지켜보는 눈치였는데 나는 그 한 순간이 그렇게 혼란스러울 수가 없었다.
평소 무덤덤한 얼굴로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던 그가 오늘이라고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제의를 하는지 어리둥절한 것은 차치하고 원망스럽기조차 한 것이었다.
진퇴양난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일행을 따르자니 혼자 남을 여자의 처지가 딱하고 제의를 받아들이자니 행여 있을지 모를 파장이 두려웠다. 판단이 서질 않는 가운데도 잠시 숨을 고르니 그래도 여자를 따라 나서는 편이 낫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마음을 정하고 몸을 돌리는데 순간 일행의 얼굴을 스치는 배신감의 그늘이 또다시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온다.
잠시 후 둘이 되어 나란히 걸으니 여럿이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남녀 간의 호젓함이 묻어나온다. 아내 이외의 여자와 함께 걷는 일이 얼마 만인가 싶다. 분위기에 맞게 뭔가 한 마디를 꺼내야겠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리저리 굴리다 겨우 찾아낸 것이 ‘여기는 젊음의 거리군요!’
말을 마치고 흘낏 옆을 올려다보니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하는 눈치였다. 가만 들어보니 가까운 사람인 듯 했다. 세탁물을 가지고 이리로 오라는 둥, 그래서 같이 가면 된다는 둥 이야기의 내용이 매우 실용적인 것이었다. 좀 더 귀를 기울이자니 상대는 남편이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몇 발자국을 더 걷다가 여자는 통화를 끝냈는지 비로소 나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를 던졌다. 여기서 1호선을 타면 한 번에 쭉 서울역까지 갈수 있다고.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녀가 다니는 1호선 코스는 우리 일행 중 많지 않았다. 있었던 한두 명마저 그날따라 결석을 했고 길동무가 필요했던 그녀는 대타로 나를 선택한 것일 뿐 더 이상 다른 해석이 발붙일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때로는 상황을 잘못 짚을 때가 없지 않았지만 이 날처럼 제 분수를 모른 적도 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날의 기억이 나쁜 것만이 아닌 것이 잠시 동안의 나의 동행이나마 그 녀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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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순태 |
11-11-18 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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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중에 수필로 엄지손가락 3번 꾹 꾹 꾹입니다. ㅎㅎㅎ
낙엽의 계절인 요즈음 장충단 공원에는 인부들이 쓸어모아둔 낙엽으로 크다란 하트를 두개 그려놓았더랍니다 그 다음날 보니 나란히했던 하트 하나가 큐피터 화살로 어딘가를 겨누고 있었지요 짝은 옆자리를 지키는데 대상도 없는 허공을 향하고 있는 폼이 허허롭게만 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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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1-19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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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습니다. 하트 두개가 끝까지 그대로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을까요? 이제 스산한 바람 불기시작하는 것이 가을도 마지막인 듯 싶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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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11-18 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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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튼, 남자들의 헛 발질은 나이도 없습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려. 그 분도 영감 꼬셔서 뭣에 쓰려고요. 집에 있는 영감님도 지겨울 터인데.......ㅎㅎ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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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1-19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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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라? 아이구 왜 하필 그런 말씀을~ 분명한 것은 그날 저는 헛발질도, 순간의 착각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김선생님이라면 모르겠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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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11-18 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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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젊음의 거리를 지나 1호선 전철을 타시고, 무사히 서울역에 도착하셨나요.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착각과 혼돈 속에 한 생을 거는 것, 하지만 자주하다보면 착각이 현실이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판단하건데 머지 않아 그런 일들이 선생님에게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도 합니다. 부디 자중하시고 그때를 위해 힘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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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1-19 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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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 날이 온다니 희망을 가지고 기댜려볼까요? 좋은 시절 다 흘려보내고, 생각하니 조금은 후회도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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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11-18 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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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착각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지요.
다음엔 몇 호선을 타실 건가요? 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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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1-19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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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가던 대로 다닐랍니다. 괜히 이리저리 줏대없이 흔들리다간 어리버리만 더 늘어날것 같아서 ~ 이선생님이야말로 늘 긍정의 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분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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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11-19 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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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런 상황이 나에게 발생했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아무튼 남녀가 함께 걷는 다는 것은 좋을 호자이니 그냥 좋은 일 겪었다.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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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1-20 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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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도 항상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 남녀 관계인듯 싶습니다. 다시 뵐 수 있어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나날 되시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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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11-26 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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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가끔은 여럿이 함께 하는 일행과 동행이냐
간절히 부탁하는 개인과 동행이냐를 놓고
망설일 때가 종종 있더군요.
그게 이성은 아니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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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1-26 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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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든 동성이든 동행이란 언제나 고맙고 귀한 존재가 아닐는지요? 금년 한 해 최선생님 많이 바쁘셨지요? 그만큼 거두신 수확도 풍성하시고~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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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 |
11-12-02 2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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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강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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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1-12-03 1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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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 안녕하시지요? 박선생님과 함께~ 지난 총회땐 못오셨더군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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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2-07-11 1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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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 글이 이 글이 었군요! 뒤늦게 찾아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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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혜자 |
12-07-18 1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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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글보고 사나흘은 웃은 듯^^*
담에 제대로 함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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