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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03-05 05:49
조회 : 2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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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박 영 보
주변은 벌써 봄의 색깔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지가위가 쉴새 없이 싹둑 거리며 지나쳐간 자리의 땅바닥에는 잘린 가지들로 가득하다. 한여름 무성했던 잎새들, 꽃들과 열매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먹은 가지마다에 매달린 꽃망울이며 새싹을 바라다 보면서 사정없이 가위질을 하고 있자니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싹이 돋기 전에 뒷마당의 각종 과수나무와 장미를 비롯한 꽃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매년 늦은 가을이나 이른 봄 사에 연중행사이기나 한 것처럼 가지치기를 하게 된다. 전지를 하게 될 때는 자기가 원하는 나무 전체의 모양새를 염두에 두기도 하고 너무 밀집돼 있는 부분을 솎아 주기도 한다. 통풍을 염두에 두기도 하고 모양새로나 결실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묵은 가지도 잘라내게 된다. 수십 수백의 가지들을 땅바닥에 떨어트리며 마음속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과 너무나 이기적이기만 한 인간이라는데 대한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의 시각과 미각을 위해 이렇게나 무자비하게 아픔을 주고 있다는 데에 일말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일개 나무 가지에 불과 하지만 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는데~.
가지들을 모아 쓰레기통속에 선뜻 던져버리지 못하는 것도 아마 그런 연민 같은 게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가지들을 모아 7~8인치 정도의 길이로 고르게 잘라 나무 그늘 밑에 마련해 둔 모래 구덩이에 심어 놓고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물도 주고 정성을 쏟는 일도 귀찮지가 않다. 뿌리가 내린 후지 사과나 자두 또는 석류나 포도넝쿨을 이웃에 나누어주는 것도 그나마 사랑을 흉내 내며 용서를 바라는 마음에서일지도 모르겠다. 잘린 작은 가지 하나하나가 뿌리를 내려 또 하나의 개체를 이루어 나무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데 대한 기쁨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되고.
‘나무 한 그루만을 바라보지 말고 숲 전체를 보라’고 했다던가. 이런 말을 생각해가며 ‘나무 가지 하나를 바라다 보는 게 아니라 한 그루씩의 나무 전체를 생각해가며 하는 행위’라는 생각만으로 나의 이런 매몰참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지 하나하나에 정이 가고 귀하게 여기며 안쓰러워 하면서도 까짓 실한 열매 몇 개를 먹어보자고, 꽃 몇 송이 더 탐스럽게 피워보자고 이렇게나 무자비한 인간성을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위 끝에서 벗어나 땅바닥에 떨어지는 가지를 바라다볼 때면 나 자신의 처지 같은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 묵은 곁가지, 잘려져야 할 가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잘려진 나무 가지들은 지난 해에는 그래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고 알찬 열매를 남기기도 했었다. 그것으로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도 해 주며 작으나마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기도 했었다. 나에게도 이들 나무들처럼 잎이 무성하고 꽃을 피운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아무런 줄 것도 남길 것도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있자니 그들 앞에 얼굴을 내밀수가 없을 것 같아 주눅이 들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아있는 얼마의 시간들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으로 메워 나가야 할지 생각을 해본다.
기대가 될만한 요란한 계획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겉모습만이라도 심하게 일그러뜨려 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상관이 없는 정도의 존재만으로는 삶의 가치로서 충분하지가 않을 것 같다. 잘라도 되고 그대로 놔 두어도 되는 그런 정도로만은 만족스럽지가 않으니 아직도 욕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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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09-03-06 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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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선생님의 가지치기 글을 읽다보니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운 느낌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과감히 잘라야하는 가지가 있음을 ...
그러나 마음처럼 쉽게 잘라내지 못하는 것도 탐욕에서 오는 애착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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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5 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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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이 잘라 업새야 하는 불필요한 잔가지가 아닐까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써본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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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3-14 1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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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심이 어디 끝이 있나요.
선생님 글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을 생각케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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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5 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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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하나하나에도 생명이 있고 부여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저 자신에게도 무슨 의비같은 것을 부여받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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