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해서 제일 재미있었던 시간은 생물시간이었다. 그 과목에 남다른 취미가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생물 선생님이 재미있었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좀 특이했는데 어떤 명제를 던져주고 연구해오라는 것이었다. 하루는 꽃의 구조를 관찰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는 시절도 아니었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편리함도 없었기 때문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꽃을 찾아 나서야했다. 우리학교가 경희궁터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뒷동산에 올라 개나리 숲을 뒤지며 돌아 다녔다.

 공부 보다는 짝을 이룬 친구들끼리 노는 것이 즐거운 시절이었다. 연구한 흔적은 있어야 했으므로 개나리꽃을 꺾고 길가에 떨어진 벚꽃 잎을 주어 책갈피에 끼어 놓고 그 꽃들의 모양을 암술 수술을 포함하여 정밀화처럼 그리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한참 그리다 보면 선생님이 설명해주었던 물관부와 체관부 관다발 같은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다음 시간에 발표를 했는데 앞에 나가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한 노트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마음에 들면 A 라고 표시하며 칭찬해주었는데 그 표시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호기심이 많았던 시절이라 개구리를 잡아다 놓고 해부하는 시간도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항상 가슴을 쿵닥쿵닥하게 만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성교육 시간이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잘 몰랐다. 남들처럼 엄마한테 물어보기도 했었지만 엄마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뱃속에서 저절로 아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시집이 곧 아기를 만드는 요술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고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생소한 단어들로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끔 뒷좌석에 앉아 있던 조숙한 아이들이 여자모델 잡지를 꺼내놓고 이상한 소리를 하여 웃기는 했었는데 그냥 따라 웃었을 뿐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몰랐다. 그리고 수업이 좀 무료하다 싶으면 한 아이가 “선생님 방금 창문에 앉았던 새가 삐리릭 하고 날라 갔는데 새 이름이 뭐에요” 하여 아이들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성교육시간만큼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들 숨죽여서 진지하게 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도 나를 많이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은 쌍둥이는 어떻게 생기나하는 문제였는데 이 문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해답을 얻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참 둔했던 것 같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열띤 토론을 했으나 정답이라고 인정할 만큼 신뢰감이 가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머리가 제법 굵어지면서는 더욱 친구끼리 붙어서 갑론을박하며 인생을 논했다.

 왜 이런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들을 꺼내는가 하면 우리는 그런 철없는 토론을 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을 만나면 반갑고 안 보면 그립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었다.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니 한 줄에 일곱 명씩 앉는데 모두다 손에는 휴대폰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있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면 컴퓨터로 뒤져서 나팔관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만큼 조숙하다고 한다. 구태어 꽃잎을 관찰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꽃을 따러 다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시간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은 시간이 있으면 친구 대신 컴퓨터하고 산다. 컴퓨터가 친구이고 휴대폰이 애인이다. 부모들 세대가 가지고 있는 친구라는 재산이 없어지는 것 같다. 같은 또래끼리 인생을 논해봤자 시간 낭비이고 인터넷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앞으로 삭막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걱정하는 것은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