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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13-11-01 07:35
조회 : 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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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편지
류인혜
innhea@hanmail.net
편지는 사람대신 그에게 간다. 생각과 마음과 손이 움직여 사연을 만들면 적막한 한 사람 전체가 움직여 간다. 나의 실체를 누구에겐가로 보내는 것이다. 뚜렷한 대상 없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에게도 편지를 쓴다. 그렇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마음의 편린을 적어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뚜렷하다면 많은 위로를 받는다.
생활이 세분화되니 더욱 분주해져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탈 빈틈이 없다. 마음들이 제멋대로 떨어졌다, 붙었다 하며 헤매고 다녀도 심각하게 여길 수 없다. 어쩌다가 붙은듯하면 반가워서 손을 잡고 흔들다가 한순간 슬그머니 떨어져도 별로 섭섭해 하지 않는다. 심심하거나 외로워서 불안해도 혼자 해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보내고 싶은 것은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직접 그에게 갈 수 없으니 편지로 대신한다. 편지 속의 긴 사연이 오가는 눈길속의 사랑의 기운처럼 값지게 느껴진다.
낯선 곳을 동경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가까이 당기고 싶은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특히《학원》지를 구독하며 알게 된 여러 이름을 향해, 그들의 글을 읽고 편지를 보냈다. 나중에 문단에서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사람을 직접 대하자 늙어 밉상이 된 모습이 고소해서 웃음이 나왔다.
제주도 친구도 그렇게 막연히 ‘몇 학년 몇 반 친구에게’ 라고 써 보낸 편지가 연결이 되었다. 납작한 글씨로 또박또박 편지를 써 보내던 그 친구는 11박 12일의 긴 수학여행을 와서 만날 수 있었다. 친구는 육지에 닿아 관광지를 돌아보며 서울로 오는 여정 동안 가방에 넣어 간직했던 귤 꾸러미를 주었다. 제주도의 귤을 싼 누런 종이가 그새 낡아 보였다. 그래선지 수십 년 전 친구의 이름을 잊어버린 요즘도 제주에 관한 일이라면 무조건 특별해지며 관심이 간다. 그곳에 관한 많은 자료를 모아 두었다. 오래 전 편지 친구에게 대한 보답이다.
어느 사람이 쓴 제주도에 대한 수필을 읽자 수필 속에서 제주 중산간의 거친 들을 만났다. 내가 보지 못해서 느낄 수 없었던 제주의 새로운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눅눅한 바닷바람과 숭숭 구멍 뚫린 검은 돌과 흩날리는 억새 속에서 누군가 손짓했다. 문득 그 수필이 내게 쓴 편지로 여겨졌다. 그렇게 수필을 읽으면서 내게 보낸 편지를 읽는 듯 두근거려지는 그 설렘을 아는가. 일정한 사물을 같은 방향에서 보는 수필에서는 다정한 사람의 편지를 받은 듯 감격한다. 얼마 전 받아든 수필집에서도 그렇게 나를 부르고 있는 듯 문장마다 애틋한 정인의 느낌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동안 숨어있던 편지귀신이 달려 들었나보았다.
편지지가 귀하던 시절, 노트를 찢어 아래 위 여백까지 작은 글씨로 빡빡하게 몇 장씩 적어 보냈던 편지가 생각난다. 두근거리며 읽은 편지의 앞부분이 아직도 생생한 것은 문장에 담겼던 그의 기상 때문이다.
"큰 야망을 가진 나의 온갖 생각들이 가슴을 터지게 하는데 그대가 이것을 알아 줄 유일한 사람이기에 이 글을 보낸다."
개화기 청년의 희망에 찬 내용 같아도 당시 그에게는 절실했을 것이다. 그 거친 야망에 동조할 수 없었기에 모른척했다. 그도 요즘의 나를 본다면 웬 할머니인가 고소하게 여길 것이다. 지나간 사연의 묵은 편지라도 그 사적인 영역에서 넘어설 수 없는 특별하고 절절한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편지라면 청마선생을 따라갈 감성이 없다. 우체국 창가에서 편지를 쓴다는 그 대목에 꽂혀서 일주일에 한번쯤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썼다. 종이냄새와 풀냄새가 풍기고 천정이 높은 중앙우체국의 고전적인 분위기에 푹 젖었다. 그 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같았다는 것을 이제 고백한다.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과 받고 싶은 마음이 평행선이다. 때를 가리지 않고 편지를 받고 싶다. 온갖 감성이 풍성히 넘칠 때는 편지를 쓰고 싶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간절함으로 편지를 쓴다.
마음으로 쓰는 편지는 외로움이다. 손으로 정성껏 쓰는 편지는 다정함이다. 그리고 생각으로 써내려가는 편지는 꿈이다. 수필로 쓰는 편지에는 꿈꾸는 자의 긴 사연이 담긴다. 柳
《좋은수필》 2013년 10월호
柳仁惠(류인혜)
* 1949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수필 <우물>로『한국수필』봄호 추천완료. 수필집:『풀처럼 이슬처럼』,『움직이는 미술관』,『순환』,『나무이야기』. 시집:『은총』. 인문서: 류인혜의 책읽기『아름다운 책』. 1999년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2007년 제23회 펜문학상(수필부문) 수상.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한국수필』자문위원. 국제펜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죽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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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11-01 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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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육필편지를 써본지가 언제인가 싶습니다. 마음을 전하는데는 전화도 좋지만 편지를 써서 전하면 한결 진심이 더 담겨지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등단 초창기에 교류했던 분들의 손편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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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2 2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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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가회 총무 시절, 회원분들이 보내준 편지를 정리했습니다.
버릴까 하다가 다시 봉투에 담아 간직하며 모두의 젊은 날을 생각했습니다.
동인지 원고 뭉치도 있지요. 그 모든 추억이 긴 편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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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11-01 2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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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되도록이면 사이버공간보다는 손으로 쓰는 편지를 보내고 싶어 합니다.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가 봅니다. 어떻든 편지는 추억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려서 성경통신공부할때 내가 보낸자료와 또 새로운 자료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좋았는지요. 이제 다시 편지를 써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인혜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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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2 2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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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가기 전에 마음에 남은 분들께 소식 전해야 되겠습니다.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설레이지요.
어제부터 오늘까지 강화섬에서 동인지 편집위원 모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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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3-11-01 2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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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진할수록 그와 나사이에 정답게 느껴지는 교감.
내가 꼭 받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알고 쓴 것같은 반가움..
그런것 같습니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일한 편지도 의미가 있겠지만
받아보고 싶은 사람과 받고 싶은 사람을 적어서 우체통에 붙이는
것도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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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2 2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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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에는 커다란 우체통을 만들어 놓고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엽서를 모아서 보내준다고 들었습니다. 편지를 받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편지를 보내는 일, 낭만적입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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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3-11-02 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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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가을편지'라는 詩가 떠오릅니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편지는 외로움이고, 다정함이고, 설레는 동경이 아니겠는지요. 더구나 감성아릿한 가을임에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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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2 2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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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만나러 갔던 길, 강화섬에서 단풍을 보고 왔습니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 속에서 쓰는 편지에는 시심이 가득하겠지요.
우리 모두 편지를 쓰자!!! 캠페인이라도 해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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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3-11-02 2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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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수필편지'를 받자오니
처자식 두고 입대하여 휴일이면 습관처럼 아내에게 길게는 스물일곱 장의 편지를 써보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전역하여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그 동안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편지들을 몽땅 불태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움으로 돌아온 날들을 선생님의 수필편지에 실어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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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3 0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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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받은 가장 긴 편지는 열서너 장인데 대단하십니다. 그 긴 편지를 받아든 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아니, 그 귀한 편지를 불태우다니요. 편지보다는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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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11-03 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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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보내 주시는 귀한 책을 받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 편지와 책을 보내기 위해서 봉투에 내 주소를 찾아서 주소를 써서 담고, 귀한 시간을 내어 우체국으로 가서, 적지 않은 돈 들여서 부치는-. 그러면서도 그 답장을 미루다가 말 때 늘 '이렇게 살면 안 되지-'하고 후회하며 삽니다.,
아마 그분들은 저를 어떤 때 고소한 마음으로 보실 꺼라 생각되네요. 그래야 마당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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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4 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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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저 역시 요즘에는 책에 대한 답을 거의 못보내고 있습니다. 겨우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로 면피만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발간하는 책으로 빚을 갚아야지 결심하지만 우편취급소 마저 멀리 있는 이곳에서는 정말 마음을 많이 써야 됩니다. 이상 산골사람의 넉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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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11-05 2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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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벽지학교에 근무하던 4년간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 많게는 네 번까지
엽서 한 장에서 원고지 열 장까지 편지를 주고 받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보낸 편지는 휴지조각이었을 텐데
그에게서 받은 편지는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글들이 한 자루가 넘었는데, 철부지 젊은 나이에 이사 다니는 과정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생각의 전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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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혜 |
13-11-06 0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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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편지 친구는 소중한 정신의 활력이지요.
생활의 편린 속에서 정신이 함께 성장하며 감성을 키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귀한 편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수필 편지를 쓰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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