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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3-05-01 08:20
조회 : 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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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품의 향기
임병식
감각으로 나타낼 수 없는 인품을 향기로 표현한다면 난향(蘭香)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예로부터 인품의 향기는 천리밖까지 풍긴다 했으니 어디 난향 정도에 비할까 마는 감각으로 느껴는 향기는 냔향만한 것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한데 나는 어디서 난향 못지 않게 강력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기분좋은 내음을 맡게 되었다. 깨를 볶으면서 풍겨내는 구수한 내음이 퍼져나와 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내음은 방앗간 모퉁이를 돌아나오면서 조우하게 되었다. 산책을 하고 내려오는데 마을 어귀에 있는 방앗간에서 스멀스멀 풍겨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방앗간은 평소에는 주로 떡을 만들지만 가끔은 찾아오는 손님들의 부탁으로 고추 가루를 빻거나 미숫가루를 만들기도 한다. 한데 이 날은 기름주문이 받았는지 캐를 볶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방향은 이미 주변을 점령하고 한길까지 퍼져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집을 이미 지나쳤는데도 옷에서는 계속 냄새가 풍겨났다. 나는 풍기는 향내를 즐겼다. 마침 비가 온 뒤라 하늘은 청명하고 살랑대는 봄바람까지 감미로운데 색다른 미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향기는 종류와 풍기는 강도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음식점에서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는 향기로 느껴지기 보다는 식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날의 깨 볶은 향내는 그렇지를 않고 미감마저 돋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코 안으로 밀려드는 강한 향내을 맡다가 불현 어떤 다른 향기를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인품의 향기. 사람도 보면 은근히 향기를 풍기는 이가 있지 않던가. 그러면서 큰 그늘을 드리워서 품어주고 깨우침을 주기도 하지 않던가.
그런 사람으로는 우선 법정스님이 떠오른다. 아마도 당신의 일생이 향기로운 삶으로 채워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당신 살아생전에 한번도 뵌 적이 없고 별로 아는 것도 없었다. 그저 구전으로 듣고 단편적으로 얻어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막연하게 나름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이해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당신이 시주 받아 불사를 일으킨 길상사에 얽힌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자신이 지주로 있으면서도 단 하룻밤을 기숙하지 않았다니 노랍지 않는가. 그러면서 남 몰래 선행을 실천하고 수행에 정진했으며 잠이오는 때는 대꼬쟁이를 깎아가며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한다. .
뿐만 아니라 당신은 적멸에 들면서도 법구를 입는 옷 그대로 다비하도록 유언하는 등 세상떠난 순간까지도 일점일획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삶에 전신이 번쩍 들어 나는 당신이 세상을 뜨자 남긴 저서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어떤 품귀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진정 책을 통해서 당신의 삶을 깊이 들어다 보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난 감동은 컸다. 넉넉한 인품과 인격이 그야말로 맑고 향기로워 청량제 갗았던 것이다. 스님은 입산을 하면서 세권의 책을 지참했다고 한다. 선(禪)입문서, 유교의 본질, 영한사전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학문정진과 종교의 뿌리를 깨보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당신은 그런 의지로 수행정진한 뜻에 말마다 글마다 행동마다 ‘맑고 향기로운’ 행내를 풍기는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당신은 세상을 뜨면서 각별히 자신의 저서들을 더는 출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바르게 향기롭게 살고 갔으면서도 행여 독자에게 누를 끼치지나 않을가 염려했던 것이다. 그런 무욕의 삶을 종단에서는 사후이기는 하지만 ‘대종사’라는 최고의 법호(法號)을 내려 예우했다.
스님을 생각하면서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는 다음의 몇가지가 생각난다. 우선 무소유의 실천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씀대로 아끼던 만년필을 다른 이에게 선물한 것이나, 선물받아 키우던 난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준 일이 그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신이 거래하는 출판사 사장이 인세지급 독촉이 했다. 한데 그 독촉을 받은 사장은 처음에는 ‘웬 스님이 돈을 밝히는가’하고 몹시 오해를 했단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고 가난한 학생의 등록금을 대주기 위해서 등록마감일이 닥쳐오니 그리했던 것이었다.
또 한번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있었던 일로 요양지인 제주도에서 가난한 이웃에게 남몰래 식량을 대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후에 알려진 일들이다.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인가.
스님은 속세에 나와 강연을 하고는 꼭 되짚어 돌아가곤 했는데, 그곳이 먼곳인 강원도 땅인 줄은 알았으나, 그렇게 까지 오지 인줄은 몰랐는데, 한 신도가 나중에 가보니 그곳을 가려면 징검다리도 없는 시내를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비가 오나 눈이오나 건너 다녔던 것을 생각하고 절로 고개가 숙여져서 써놓은 글을 보았다.
세상에는 이런 향기와 그늘을 남긴 분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실망스런 행동을 보여 씁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이완용을 들 수 있다. 그의 무덤이 직계 후손에 의해 파헤쳐진 것은 인과응보일 것이다.
일전에 고서화 감정프로에서 그의 필적과 낙관이 찍힌 작품이 출품된 적이 있다. 알고보니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기 이름을 써넣었는데. 그 때문에 그림값은 무려 50%나 깎긴 것이었다. 추한 이름의 평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실망스런 일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도 반복되고 있다. 경우는 좀 다르다해도 청문회를 열어보니 , 도덕적인 흠결이 이만저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위장전입에 부동산투기는 기본이고, 세금탈루와, 병역기피, 논문 표절 등 비리종합 백화점인 인사가 많았다.
그걸 보면서 왜 우리나라 지도층은 한결같이 이 모양 이꼴일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입맛이 썼다. 자연스레 자기 관리를 철두철미하게 행하였던 법정스님이 그리워졌다.
내가 방앗간을 지나치며 그곳에서 풍기는 구수한 향내를 맡으면서 ‘인품의 향기’를 생각해 본 것도 실은 오늘날 지도층들의 문란한 도덕적 해이를 떠올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귀감을 삼을 만한 인물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디서 향원익쳥(香遠益淸)의 맑은 향기를 품어내는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주위에 포진해 있다면 지금처럼 경기가 안좋고 불안해도 용기를 얻을 터이다. 그런 도덕적인 힘, 향기로운 인품이 훈풍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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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5-01 2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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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게 인품의 향기를 발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저는 도대체 그 무슨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지 되돌아보게도 합니다. 아마 막걸리 냄새나 풀풀 풍기고 다니는지 어쩐지 세상사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앞으로 남은 여생을 그렇게 아름다운 삶으로 마감하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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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5-02 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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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볼 때 쾌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어렇게 구수한 내음을 풍기는 사람을 만나볼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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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05-14 1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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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대로 훌륭한 인품을 지닌 분들은 말씀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말은 순간적이기 때문에 가식은 금방 표가 나고 순간 순간 튀어 나오는 말에 배어 있는 향기...... 순간 순간 감동을 주는 인품일 것입니다. 인품과 향기를 접목시키셔서 감동 스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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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5-14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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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남의 본을 보이지 못하니 자연스레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그리워지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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