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해놓고 사냐?” “아, 죄송합니다. 금방 치울께요.” 아들 내외가 사용하는 피아노 방을 들여다 보다가 한 핀잔에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해 하는 며느리의 반응이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살다보니 불편한게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도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던가, 대충 참고 넘어갔으나 얼마전부터 관절염등으로 매사에 짜증을 부리는 아내가 재대로 치울줄도 모르고 산다고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불평을 하던 말이 생각나서 겸사 겸사 내뱉은 말이다. 사실 며느리도 대학 재학중 결혼 하는 바람에 졸업을 못하여 나머지 수업을 받으러 다니면서 손녀를 키우고 시부모를 모시는 형편이라 정신없이 사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왠만한 것은 못본체 하고 살고 싶은데 집에서 며느리와 항상 살을 부딪치며 사는 아내의 짜증이 신경 쓰이게 만들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마디 한것이 결과적으로는 시어머니의 역성을 든 꼴이 되었다. 아무튼 속에 있던 말을 드러내어 시원하기도 했지만 아들 내외가 상처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은 찜찜했다.
남쪽에 사는 친구가 연락이 왔다. 매화가 아주 탐스럽게 피어난다고 하며 시간이 괜찮으면 한번 다녀가라고 한다. 부산에 사는 딸네 집에 가 본지도 오래되어 가는길에 한번 들러 볼겸 집을 나서 KTX 열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니 막바지 겨울 추위도 물러 가고 사뭇 봄기운이 완연하다. 부산에 도착하기전부터 딸과 사위가 번갈아 가며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지 묻는다.
둘 다 직장에 매인 몸들이라 퇴근전까지 집에서 쉬고 계시라고 하면서 비밀 번호를 알려준다. 딸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혀가 끌끌 차진다. 거실도 어지럽지만 건너방을 열어 보니 가관이다. 얼마나 바빴는지 벗어 놓은 옷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먹으러 부엌 싱크대 앞에 가보니 설거지 통에 아직 씻지도 않은 그릇들이 재멋대로 쌓여 있다.“얘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람.” 시댁 어른 들이라도 들이 닥치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치우지도 않고 사나하고 걱정이 되었다.
딸 내외가 퇴근하기 전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청소를 시작하였다. 우선 널려 있는 옷가지들을 챙길어 장롱속에 넣고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고무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했다. 깨끗이 씻어서 찬장에 집어 넣고 보니 식탁위에 김치 국물 자국이 보여 행주로 닦아 낸다음 빨아서 국물 자국을 지우고 널어 놓았다. 내가 아버지는 분명히 아버지인데 시아버지와 친정 아버지의 두 얼굴을 가진 아버지이다. 문득 며느리에게 지저분하다고 핀잔을 주었던 처신이 부끄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