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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2-02-27 22:40
조회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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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아침을 먹고 비료 마중을 나갔습니다. 약속시간을 어기고 나타난 화물차한테 고갯마루의 찬바람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우리 집 모가치 200 포를 도로에서 200 미터 떨어진 농장에 떨어뜨려 달라하니 이장님은 트럭기사하고 알아서 하라며 낯을 돌립니다. 농장까지는 조금 비탈진 농로길이긴 하지만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기사는 5만원을 요구합니다. 칼자루를 기사가 쥐고 있으니 나는 분을 삭이느라 끙끙거립니다.
우리 농장이 마수걸이인지라 5톤 트럭에는 비료 600 포가 오롯합니다. 12톤을 실은 채로 비탈길을 내려오기엔 아무래도 무리일 듯합니다. 트럭기사도 나와 같은 생각 이었는가 봅니다. 결국 마무리를 우리 농장에서 하기로 하고 트럭은 근동으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400 포를 부리고 돌아온다 해도 한 시간이면 낙낙할 것입니다.
두터운 파카의 지퍼를 목 언저리까지 올리고 마스크를 하고나서 밭에서 꼬무락거리며 트럭을 기다립니다. 한 시간이 흘렀는데 오는 기척이 없습니다. 기사를 호출하니, 십 분이면 도착할 거라며 자신만만합니다. 하늘은 맑아질 기미가 없고 기압이 점점 낮아집니다. 이제나 저제나 다시 한 시간을 더 기다리는데 들려오는 기사의 대답이 답답합니다. 후진하다가 뒷바퀴가 배수로에 빠져버렸다는 겁니다. 아침의 결정이 후회스럽고 약속해놓은 운임이 아까워집니다. 트럭이 농장 마당에 들어서기까지 네 시간 걸렸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는 트럭에 좌회전을 한 다음 후진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는데 기사는 마당 깊숙이 들어와서 후진을 합니다. 그러잖아도 밉상인 판국에 청개구리가 따로 없습니다. 트럭이 꽁무니를 거꾸로 빼는 바람에 비료를 마당가에 쟁이려던 내 복안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속에서 천둥이 울고 벼락이 치는데 기사는 더 후진할 거냐고 자꾸 묻습니다.
‘그래, 더 빼라 더 빼.’
바로 그때, 뒷바퀴가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아뿔싸, 얼마 전에 웅덩이를 메운 자립니다. 일단 비료를 내렸습니다. 가축분뇨를 발효시킨 비료라서 냄새가 꽤 견딜만합니다. 포장한 상태에서도 발효가 계속되므로 가스가 잘 빠져나가도록 포대에 뚫어놓은 자잘한 구멍으로 악취가 뿜어져 나오는 겁니다. 아무튼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입니다.
트럭은 온갖 재주를 다 부려보지만 끝내 진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빠져들어 헛바퀴만 돌아대는 후륜구동이 원망스럽습니다. 승용차로 5톤 트럭을 끌어낼 수 있을까하니 어림없다 합니다. 1톤 화물차로는 어쩌면 가능할 듯도 하다기에 막내동서를 불렀습니다. 막내동서가 전화기 속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소형트럭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발버둥을 쳐도 ‘5톤’은 두어 번 움찔할 뿐입니다. 하는 수 없이 견인차를 수배하고 나니 두 시가 다 되어갑니다. 함께 읍내에 나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가욋돈 나갈 일에 아내가 짜증을 냅니다. 트럭기사는 제 딴에 부담스러웠던지 현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견인비용을 걱정합니다.
견인을 취소하고 이장님한테 사정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배수로에 빠졌을 때 굴착기(백호우)를 끌고나와 트럭을 건져준 마을주민 권 씨에게 한 번 더 부탁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한궤도 굴착기가 1킬로미터가 넘는 아스팔트길로는 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포장도로가 망가진다는 겁니다. 트랙터도 있지만 고장이라며 되레 미안해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그와 휴대전화로 나눈 대화입니다. 출타한 이장님은 애가 타는가봅니다. 우리 농장이 그 마을 근처에 있어 전화로 비료를 주문하게 되었을 뿐 오늘 아침에 처음 만난 이장님입니다. 마을 아래 논배미에 자기 트랙터가 있으니 그 사람을 찾아가보라 당부를 합니다. 트럭기사와 둘이서 권 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인부 셋을 데리고 집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습니다. 이장님 네 트랙터는 그 집에서도 한참 떨어진 논바닥에 있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트랙터와 함께 우리 농장에 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좌중의 기대와 달리 트랙터는 ‘5톤’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처절한 사투를 벌였으나 트랙터마저 그 큰 바퀴로 돌부리에 검은 항서를 쓰고 만 것입니다. 트랙터의 마력이 시원찮은 탓이라며 권 씨는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제는 견인차를 부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권 씨가 자신의 단골 업소를 통해 반값나마에 견인차를 불러줍니다. 그 무렵 출타했던 이장님이 달려왔습니다. 대형 견인차가 몇 번 힘을 쓰자 트럭이 쑤욱 빠져나옵니다. 후륜구동, 정말이지 밥맛없습니다.
트럭이 무사히 빠져나올 때까지 이장님도, 권 씨도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약속대로 트럭 기사한테 운임을 건네니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두들 기사더러 운임을 받으라합니다. 나는 문득 이 이상하고 낯선 풍경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장님과 권 씨와 트럭기사는 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나에게 십년지기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홀로 남아 크고 작은 바퀴 자국이 어지러운 진창을 둘러봅니다.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들이 남겨두고 간 자취에 취하여 나는 어둠이 다가오는 농장마당에 마냥 서있었습니다.
연둣빛 바람결에 봄소식은 매화꽃 향기로 벙글어지고 있었습니다.
고운님 내 맘에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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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2-02-28 1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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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보았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의 풍광이 떠오릅니다. 무엇 하나 버리고 싶지 않은 그곳의 정서가 향수에 젖게 합니다. 바람도, 햇빛도, 농로의 수로까지도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련하게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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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3-01 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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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의 과분한 도움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희생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러 들어보았지만
막상 제가 그 대상이 되고보니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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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02-28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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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봄이 오면 또 전원생활이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아니 벌써부터 채비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저도 전원생활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말농장 식으로 밭을 얻어 고구마도 심고 배추도 심어 김장도 담그고 그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떻든 조그마한 일에도 감동스러운 것이 전원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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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3-01 2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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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그렇게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걸 짐작도 못했습니다.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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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2-02-29 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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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저는 경기도 가평에 삽니다. 우리는 농가가 아니어서 비료 신청이 되지 않아, 이웃집에 부탁하여 30포를 가져 왔습니다. 이웃집에서 우리 텃밭까지 400여m를 오는데, 승용차로 3번 갔다 날랐습니다. 30포를 싣고,내리고 들어서 옮기고, 며칠째 온 삭신이 쑤십니다. 손바닥만 텃밭에서 작년에 온갓 야채를 다 심었습니다. 가을 배추, 무를 저장하여 아직까지 먹고 있으니, 올해도 정성 들여야 할것 같습니다. 농사 잘 지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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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3-01 2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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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이라는 것이 규모에 관계없이 고생은 매 한가지인 듯합니다.
저는 밭 귀퉁이에 그대로 쌓아두고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관리기가 전소되어 버려 서둘러 경운기를 구해야 할 것같습니다.
정말이지 농사일은 만만한 게 한 가지도 없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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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2-02-29 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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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바퀴 자취 속에서 이웃의 인정과 봄의 훈기를 보시는 선생님의 마음 속에 이미 고운님이 와있습니다.
새봄에 바빠지는 농부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땀과 노래 속에 올해의 농사가 대풍이 되길 바랍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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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3-01 2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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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귀퉁이의 매실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오종종하기에 봄이 왔는가보다 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베풀어준 따뜻한 인정은 제 가슴 속에 찾아온 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봄은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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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2-03-13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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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풍광이 가슴 촉촉스며드는 작품입니다. 이장님의 후덕한 인품, 아름다운 인정은 그 마을의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요즘 한층 빛나는 작품을 읽으며 먼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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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3-13 2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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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날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제게 베풀어준 훈훈한 인정은
최고의 봄소식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을 봄소식, 그것은 바로 '정'으로 제 가슴에 다가온 '고운 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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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2-03-17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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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간혹가다 있습니다. 계속 꼬이기만 하다가 오히려 헤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각종 운송수단이 등장하는 작은 소동과 농촌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이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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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03-22 1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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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을 품은 이웃 사람들 덕에 올봄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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