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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변영희 |
날짜 : 14-11-30 18:36
조회 : 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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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김치며 달랑무김치 갓김치 등 일련의 김장 작업이 대강 마무리되자 책상 앞에 좌정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 여름이 지나 1년이 흐르는 동안 내 마음은 목적지도 없이 동서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가을 하늘에 떠돌고 있는 구름처럼 멀리 달아나고 있는 마음을 잡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해야 조금씩 잊혀 질 거라고 했다. 어느 정도라는 그 때가 언제인가, 그 때는 내 마음이 고요해질까.
갑자기 겨울이 온 것처럼 날씨가 추워지더니 거친 비바람에 아파트 단지의 단풍잎들이 마구 흩날리고 구절초 화단은 처참하게 스러진다.
며칠 후 날씨는 다시 포근해졌다. 호수공원의 개나리가 피어나고, 해마다 세계꽃박람회가 열리는 장소, 장미넝쿨이 아치형으로 어우러진 곳에는 빨간 장미꽃이 피어 계절을 분간하기 어렵게 했다.
기온이 오르고 내리면서 김장 김치가 알맞게 익어갈 무렵 대구에서 사돈네가 오셨다. 저녁 식사하러 오라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잘 익어 유산균 향기를 솔솔 뿜어내는 달랑무김치를 퍼 담았다.
더 무엇을 가지고 갈까 했지만 과일을 비롯해서 각종 먹을거리가 지천 아닌가. 가끔 아들네 집에 가보면 먹을 것 입을 것, 장난감, 학용품이 집안을 온통 잠식하고 있었고 그게 요즘 더욱 심화된 감이 있었다. 손주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그들 아빠는 물론, 손주들의 고모가 옷이며 먹을 것들을 바리바리 사들고 가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들네로 갔다. 손주 외조모가 달려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의 손에서는 마늘 냄새가 났다. 베란다에서 시들고 있는 육쪽마늘을 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 시방 시들고 있는 게 어찌 마늘뿐이랴. 베란다에 둥지를 튼, 1학년 손주가 심어놓은 나팔꽃 잎과 가지를 몽땅 갉아먹고, 양란의 두터운 꽃이며 이파리까지 야금야금 다 쪼아 먹고 살이 통통 쪄 있는 앵무새 한 쌍을 빼고는 우리들의 마음은 시름시름 시들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고, 얼굴이 많이 여뷔셨네요.”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많이 드시소. 꽃게가 하 싱싱해서 시래기 듬뿍 넣고 진잎국을 끓였습니다.”
꽃게 진잎국은 간도 삼삼한 것이 국물 맛이 시원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진잎국을 자주 끓였다. 김장철이 지난 다음 그 흔해빠진 시래기에 돼지뼈를 넣었는지, 사골 고은 물에 시래기와 선지를 넣고 끓였는지는 모르지만, 먹으면 속이 든든해지던 어머니의 구수한 진잎국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진잎국을 끓일 수 없을 때는 장이 서는 날 나에게 큰 냄비를 들려주며 진잎국을 사오라고 하셨다.
“언년이는 일이 너무 바쁘니 네가 좀 갔다 와야 되겠다.“
나는 어머니의 명령에 한 마디 거역도 못하고 양은냄비를 들고 시장으로 갔다. 거기 가면 나 말고도 진잎국을 사러오는 친구들을 더러 만날 수가 있었다. 시장에서 큰 가마솥에 장작불로 막 끓여내는 진잎국은 어머니의 진잎국과 재료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국물이 진하고 맛이 일품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멀리서 오신 분을 제가 대접해야 옳은데 이렇게 얻어먹어서 어쩝니까?”
“잘 드시니 제 마음이 좋습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H초등학교 앞을 빠르게 걸어 집으로 왔다.
집으로 들어서자 나는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딩동 딩동!”
“십초 안에 문 열어라 오버!”
나는 현관으로 나아가 문을 활짝 열었다.
“마, 이거 드시고 몸 추스르시소! 기양 계시면 큰일 납니데이.”
문이 열리자 10초 안에 문을 열라고 호통읗 치던 녀석들은 날래게 숨어버리고 녀석들의 외조모가 보자기에 싼 것을 나에게 주었다. 보자기를 풀자 구수한 진잎국 냄새가 폴폴 새어나왔다.
거실 벽 한 가운데 걸려있는 하늘나라에 주소를 둔 딸의 사진과, 사위와 손주녀석들 사는 모습 보면 사돈댁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질 터인데 어찌 진잎국이랴!
나는 아들네 집에 간 것을 후회했다. 안 보고 안 만나는 게 차라리 덜 슬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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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4-11-30 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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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 저도 시래기 국 좋아합니다. 전라도 말로 시래기국이라고도 하고 실가리국이라고도 해요 진잎국을 요즘은 무우청이라고들 해서 혼란스럽습니다. 전라도에서는 배추시래기 무우시래기 다 그렇게 짚으로 엮어 매어달았다가 겨울이 오면 된장국 끓여 먹었지요. 그맛이 고향의 맛입니다.
요즘 김장철이어서 시래기국 많이 먹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래기 국 드시고 모든 시름
떨쳐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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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4-12-03 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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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동안은 아무 말도 안 나왔어요.
매사에 어리버리한 본성도 한 몫 하긴 하지만. 어쩌면 안 나온다기 보다는 하기가 싫었었는지도 모르죠.
시래기국 먹고 잘 이겨내야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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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11-30 2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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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갈수록 슬픈기억은 되살아 납니다. 겨울에는 더 심하지요. 진잎국에 얽한 사연이 절절히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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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4-12-03 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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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금처럼, 복병처럼 혹은 도둑처럼
그렇게 무시로 덮쳐올 때는 아주 큰 소리로 음악을,
아파트 천정을 두들기고, 경비실 인터폰이 울릴때까지 쿵쿵 요란하게.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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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4-12-01 0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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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년대의 어려운 시기를 거친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시래기국의 향수가 날 것입니다.
요즘도 가끔 밥맛이 없거나 쭐쭐할 때는 시래기국이 간절합니다.
인생이란 추억 속에 젖어 이렇게 늙어가는 모양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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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4-12-03 1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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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가 국 무침 볶음으로
근사한 손님 대접하는 한정식집 특메뉴에 들어가는 건 아닌가요?
우리 시대에 시래기에 얽힌 추억거리는 더 많다고 봐야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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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4-12-02 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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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예전에는 사돈은 멀어야 좋다고들 했는데 요즘은 사돈댁과도 가까이서 잘 지내며 서로 아픔을 나누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두 분 서로 시름을 위로하시며 함께 나이 드시는 모습 좋아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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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4-12-03 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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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하고 형제처럼,
피를 나눈 동기간처럼 지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굳이 멀리 바라보며 살기 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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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02 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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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람이나 마음속에는 바윗돌 한개쯤은 얹고 살지 않는가 합니다.
선생님의 가슴아픈 사연을 알고 있기에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기왈 지난 과거사이니 앞날만 생각하시고 건강 추스리시면서 좋은 작품
많이 남기시기 바랍니다. 사돈의 마음씨가 따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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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4-12-03 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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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돌이 한 개이면 다행이게요.ㅋㅋ
계속 바윗돌이어서 어깨를 쳐들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성경의 욥 이야기, 맹자의 말씀을 끌어와야 하나요?
선생님의
전남문학상 수상을 멀리서나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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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4-12-03 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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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수필이네요. 글이 흘러가는 멋이 천의무봉입이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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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희 |
14-12-03 2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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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솔직히
일만선생님 글 읽으면 저는 똑 저런 심정이라는 거지요.
감사드립니다. 건필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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