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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4-12-17 20:04
조회 : 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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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의 수필 미학
얼마 전 한 문학 단체가 경북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개최한 문학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윤오영의 수필 미학’을 주제로 한 모임에 강사로 참여하였지요. 아래 글은 주제발표 내용 중 일부를 발췌, 보완하여 소개하는 것입니다.
수필가 윤오영(尹五榮, 1907~1976)은 피천득, 김진섭, 이양하, 김소운 등과 함께 우리 근‧현대 수필계에 큰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피천득이 전무후무한 대중친화적인 슈퍼스타였다면, 윤오영은 생전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에 이르러 높은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지요.
윤오영 수필은 탈속한 선비정신과 절차탁마한 세련된 문장이 두드러집니다. 만연체, 화려체의 난삽한 문장이 득세하던 당시 수필계에서 윤오영의 간결한 문체는 이채롭기만 합니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 소년시절에 대한 향수, 도교적 관조와 명상, 인물에 대한 묘사, 여성과 관능에 대한 헛헛한 경도(傾倒)가 윤오영 표 수필의 특징입니다.
윤오영 수필은 비교적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달밤’ ‘참새’ ‘조약돌’ ‘부끄러움’ ‘방망이 깎던 노인’ 등이 위 경향을 대표하는 글이지요. 대표작 중 한 편인 ‘염소’는 특이한 사례로 주제의식이 깊고 철학적이며 다방면의 인용이 조화를 이룹니다. 염소 장수와 뒤 따르는 염소 무리의 행각에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비극적 숙명을 짚어내는군요.
윤오영은 수필 평론으로도 일가를 이루었어요. 의고체(擬古體)로 쓴 ‘쓰고 싶고 읽고 싶은 글’에서 전개한 이론은 일세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효력을 잃은, 피천득 유의 ‘누에의 입에서 액(液)이 고치를 만들듯이 그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주장과는 궤를 달리한답니다. 윤오영은 현대수필작법의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 옛사람이 높은 선비의 맑은 향기를 그리려 하되, 향기가 형태 없기로 난(蘭)을 그렸던 것이다. (구체적 형상화)
- 작자와 독자 사이를 잇는 사랑은 시대(時代)의 공민(共悶)이요, 사회(社會)의 공분(公憤)이요, 인생(人生)의 공명(共鳴)이다.(소재와 주제)
- 감정은 여과된 감정이라야 아름답고, 사색은 발효된 사색이라야 정(情)이 서리나니.(감정의 정화, 사유의 깊이)
- 사랑이 깊은 여인은 밤새도록 하소연하던 사연도 만나서는 말이 적으니.(간결한 문장)
- 물밑의 흙과 같이 그림자 밑에 더 넓은 바닥이 있어 글의 배경을 이룸으로써 비로소 음미(吟味)에 음미를 거듭할 맛이 나는 것이다.(함축과 여운)
윤오영 수필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과 ‘염소’를 제외하면, 실존적 자각이라든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 사회적 약자인 이웃에 대한 연민, 엄혹한 시대상황 등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직‧간접 언급이 없다는 점이에요.
글 속에 삶에 대한 의미화나 성찰이 결여되었다거나, 사회성이나 시의성(時宜性), 역사 인식이 떨어지는 문제점은 윤오영에 한한 것은 아닙니다. 동시대 다른 수필가에게도 적용됩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양적 팽창을 거두어 수필 인구가 수천을 헤아리는 오늘날에 와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전승되고 답습되었을 뿐 아니라 강화된 측면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어요.
*‘동라(銅鑼)와 바이올린의 G현, 횔덜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크누트 함순의 이삼 절, 날아가는 한 마리의 창로(蒼鷺), 새의 주검 위에 떨어진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해석이 뒤따르지 않는 자연 예찬, 슬픔을 강요하는 파란만장한 삶의 곡절, 신변의 그렇고 그런 일을 적은 생활 글, 나와 가족에 대한 자랑 아닌 자랑(그러니까 결국 자랑), 그저 선행(善行)일 뿐인 감동적인 이야기의 범람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일상의 작은 일을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하는 자기고백적인 소위 ‘서정수필(문예수필)’로 범위를 한정하여도 지금 우리가 쓰는 글이 과연 윤오영 등 근‧현대 명편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윤오영 수필이 이룬 문학적 성과와 유산을 흠모하며 기리면서도 마음 한편에 돌멩이가 앉은 듯한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소이(所以)입니다.
고매한 수필가 윤오영은 우리에게 과제를 남기고 성찰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한층 분발을 촉구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수필의 주제는 시나 소설의 그것과 다르단 말인가?' 뒤따르는 고전적인 질문이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문학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림[畵]과 그림자[影]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 보일 뿐인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안톤 슈낙‧김진섭 번역)에서 따옴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 게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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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12-18 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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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 수필가의 수필작법만으로도 고매한 필력을 흉내낼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물론 삶의 의미화나 통찰력이 결여된 단점이란 지적도 그리고 그러한 풍조가 범람하고 있는 현상이 현재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점도 공감합니다만 윤오영의 수필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 영역을 뛰어넘어보려는것도 오만일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잘읽었습니다. 다만 많이공감되는 문장은 '사랑이 깊은 여인은 밤새도록 하소연하던 사연도 만나서는 말이 진짜로 적더군요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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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19 1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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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 선생님, 윤오영 수필론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궁금한 점은, 정 선생님께는 지금도 아직(?)그런 여인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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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12-19 2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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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면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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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27 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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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밀씀입니다, 정진철 선생님. 상상적 경험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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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4-12-18 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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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님은 수필을 곶감에 비유하여 곶감을 만들려면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하듯 좋은 글이 되려면 먼저 文章氣를 벗겨야 한다고 했지요. 한국적인 정서와 동양 고전의 바탕에,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와 빼어난 시각적 이미지, 서정적이고 여백 함축미가 돋보이는 작품세계, 본격적인 수필 창작과 이론 정립, 한국 수필의 전문성, 심미성 확보에 기여한 수필가였으니 요즘 이런 작가가 아쉽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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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19 1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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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께서 윤오영 수필의 정채를 짚어주시는군요.
윤오영 선생은 초기 수필가 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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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순태 |
14-12-18 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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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식의 수필을쓰야하나 피천득식으로 쓰야하나
그러나 결론은 각기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기록한다는 사실입니다.
유행가를 좋아하는 층 팝송을 즐기는 층이 있듯이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독자층도 이루어지지않나 생각해봅니다.
윤오영의 수필을 재조명 하신데 대한 의견층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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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19 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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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태 선생님의 말씀에 저 또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린 개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의 주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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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18 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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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윤오영선생님은 어려모로 배울점이 많은 수필가로 알고 있는데
참석하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
양해해 주신다면 이 글을 제 카페에 옮겨 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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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19 1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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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선생님께서 제 글을 옮겨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글은 '허무주의적 달관과 그리움의 미학'(40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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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4-12-18 2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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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줄 모르는 김선생님의 문학열정이 그저 존경스럽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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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19 1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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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은 무슨! 이 글은 기운 있을 때 쓴 글입니다, 강승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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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4-12-19 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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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망이 깎던 노인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수필의 표상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항상 배우는 마음으로 작품활동 하고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김창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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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19 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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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깍던 노인'이 가장 완성도가 있습니다, 임 선생님.
전 사실 원본 작품론에서는 '염소'를 주로 다루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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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4-12-20 0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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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윤오영 선생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그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분석에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특히 윤오영 선생의 작품이 역사에 대한 인식이나 시대 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당시의 문화에 대해 뒤적거림은 있어도 보존과 전승에 대한 고민이 뒤따르지 못한 것도 아쉽고요.
그러나 저는 그 분이 한국 수필문학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일조를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습니다.
원문을 보고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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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21 1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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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윤오영 수필 문학의 성과와 유산에 공감합니다.
원본 글은 이메일을 통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방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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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4-12-21 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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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 수필가와 ilman은 같은 점이 많습니다. 생전에 이름없는 무명작가이셨다거나 보성학교 국어선생, 역임이 그렇지만 사후에라도 유명한 분이 되셨으니 ilman에게는 부러운 분이십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이 교과서에 실림으로써 그 명성을 알게 되었다고도 생각하구요.
김창식 작가님 덕분에 그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감사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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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21 1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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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 선생과 일만성철용 선생님이 닮으셨군요!
그러고 보니 그런 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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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4-12-24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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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들이 '지록위마'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지요.
지록위마에는 공감하지만 뽑았다는 데는 결코 공감하고 싶지 않습니다.
윤오영 님의 활동시기를 생각하며 올해의 사자성어 선발하듯 속으로만 하는 것이 역사인식이고 시대의식이라면 윤오영 님은 이미 그렇게 하고도 남았겠지요.
작가의 시대적 배경을 되짚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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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4-12-24 1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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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가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공감과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이희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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