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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종교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변영희 옮김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8-09-28 07:42     조회 : 1421    
공부 종교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오래전의 이야기다. 어떤 분이 찾아왔다. 초면의 그분은 자신을 ‘시골 변호사’라고 밝혔다. 말이 시골이지 시골은 아니고 지방의 큰 도시였다. 이분 참 재미있는 분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분은 자신이 ‘○○법대’를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시골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지만, 수재들만 간다는 그런 학교를 나왔으니,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변호사건 농부건 어부건 초면인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법이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학벌을 밝히는 순간 나는 그를 무시, 아니 멸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부 잘하는 것, 재능의 한가지일 뿐인데

  ○○법대는 공부를 지극히 잘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그런데 ‘공부를 잘한다’는 센텐스는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초·중·고등학교의 국어·영어·수학 등의 교과목 성적이 탁월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성적이 탁월하다는 것은 그런 과목의 지식을 학습하는 데 유리한 두뇌를 타고났거나 부모의 열성과 지원이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개인의 노력은 물론 기본이다. 요컨대 우수한 성적이란 ‘학교 교과목’을 습득하는 재능과 지원,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세상에는 국어·영어·수학 등의 학교 교과목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수많은 분야가 있다.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기계를 만지고 만들거나 집을 짓거나 이야기를 잘 지어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등등 무한히 많은 분야가 있다. 이런 분야는 다만 학교 교육에서 점수로 측정되지 않을 뿐이다. 또 국어·영어·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이런 분야에도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학교 교과목의 학습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빈곤한 국가, 지역, 가정에서 태어난 죄로 인해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신체적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학교 교과목의 성적이 우수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수많은 재능 중 한 가지 재능과 외부 지원의 결과일 뿐이다(물론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동일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이런 이유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부모가 칭찬해 주면 그만일 뿐,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떠받들어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공부는 절대적 가치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집안에서도 동네에서도 칭송의 대상이었다. 대개 ‘범생이’였기에 그럴 확률은 낮았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어지간한 잘못을 해도 용서를 받았다. 고등학생에게 금지된 연애와 흡연을 하다 적발되어도 교사들은 묵인하였다. 학교에서는 특별히 비용을 들이고 따로 공간을 마련해 그들의 공부를 지원하였다. 곧 공부는 면죄부이자 특권이었던 것이다. 그 면죄부와 특권은 공부를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공부 종교’가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 시골 변호사인 초면의 그분이 ‘○○법대’라고 스스로 학벌을 밝힌 것 역시 당연히 ‘공부 종교’의 신앙에 근거한 것일 터이다.

면죄부와 특권을 주어 교만한 공부꾼을 길러서야

  이제까지 살면서 공부를 잘했던 이른바 ‘학벌 좋은’ 사람을 더러 만났다. 당연히 ○○법대 출신도 만난 적이 있다. 한데 나만 그런 것인지 내가 만난 ○○법대 졸업자들은 대개 희한한 행동과 생각으로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면죄부와 특권을 두 손에 쥐고서 일관되게 칭송과 존중을 한 몸에 받았던 삶의 이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길러진 교만의 아우라(타인을 무시하는 아우라)가 정중한 언사(言辭)의 외면을 뚫고 나온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법대를 나온 사람에 대해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극히 좁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한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는 것만큼 옳지 않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편견 역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수삼 년 이래 언론에 보도된, 그 대학 출신 검사들이 벌인 행각들은 보고는 나의 편견이 편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어쭙잖은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러다 최근 재판거래, 영장기각, 대법원, 대법관, 법원행정처 등의 어휘를 중심으로 하는 보도를 날마다 접하고는 내 편견이 도리어 정견(正見)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 대학 출신으로 존경받는, 또 존경받아 마땅한 훌륭한 분들도 적지 않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극소수일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그저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일 뿐이다. 요리를 잘하거나 농사를 잘 짓거나 기계를 잘 다루거나 만들거나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별로 없다. 사회적으로 특별히 떠받들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거의 종교처럼 되어 있다. 그 종교를 통해서 교만한 공부꾼들이 길러지고, 오늘날 재판거래의 담당자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공부 종교에 대한 신앙을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출처 : 실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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