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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 기행에서 만난 건물과 음식 / 황 상 민 (심리상담가)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7-07-22 08:00     조회 : 2038    
동정호에 갔다. 그리고 악양루에 올랐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두보의 유명한 시, ‘등악양루’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오래전 동정호에 대해 들었지만,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나는 두보의 시를 직접 본 것이다.

  ‘좋은 음식과 술, 차가 제공된다’는 문구에 끌려 참가한 중국인문기행(호남성)이었다. 여행 내내 송재소 교수님의 설명과 해석이 이어졌지만 특히 두보 시와 삶에 대한 해설을 들을 때는 나 자신이 잠시 두보로 빙의됐다. 그런데 내가 동정호를 바라본 악양루는 두보가 올랐던 그 악양루가 아니었다. 같은 위치에 있는 누각이지만, 다른 모습의 악양루였다. 당, 송, 한, 명, 청 왕조에 따라 5번이나 그 모습이 바뀌었다고 한다. 동정호 옆 공원에 왕조별로 다른 악양루 청동 미니어처가 번듯하게 서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각 시대의 삶과 마음을 담았기에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라던 두보 마음은 흔적도 없이, 더위에 지친 나에게는 ‘동정호’ 바람만이 느껴졌다. 두보는 동쪽과 남쪽으로 오와 초를 나눴다는 말을 빌려 동정호의 장대함을 노래했는데, ‘악양루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남았다. 악양루의 시작은 삼국시대 동오의 장수였던 노숙이 만든 누각이란다. 오나라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을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인 장열이 수리하면서 ‘악양루’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이후 ‘그때그때’ 수리할 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현된 것이다.

  과거의 유적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악양루를 시대별로, 아니 왕조별로 각기 다르게 만들었던 중국 사람의 심리와 확실히 다른 듯하다. 2008년 남대문이 불탄 후 재건할 때, 우리는 제대로 고증하여 원래 모습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후, 당시 사용된 안료와 아교가 국산이 아니라 일본제품을 사용했다는 것이나 기증된 소나무는 빼돌리고 대신 러시아 소나무가 사용된 부실 공사였다는 논란이 더 크게 역사에 남았다. 광화문 복원의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현판의 글자가 한글에서 한자로, 그리고 글자색깔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를 따졌다. 막연히 ‘있었던 그때 그대로’의 모습대로 ‘재현’되어야 한다고 믿는 복원, 건물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의미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겉모습만 원형대로 복원하면 된다고 믿는 마음이다.

  신기하게도 나의 이런 혼란에 대한 예방약을 미리 체험했다. 여행 첫날에 방문한 중국의 피카소라는 제백석(치바이스) 화가의 기념관에서 보게 된 비파 그림을 통한 학습이었다. 그림에는 이런 글이 함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사이에 있다. 기묘함이 되는 것은, 너무 비슷하면 세속에 영합하는 것이요. 너무 비슷하지 않으면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作畵, 在似與不似之間. 爲妙, 太似爲媚俗. 不似爲欺世. [齊白石]”

  우리가 찾아간 악양루는 보수공사 중이었다. 혹, 내부를 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송 교수님의 아쉬움 담긴 탄식이 멀리서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 내부는 개방되어 있었다. 강의에서 미리 배운 1층과 2층의 복사판 ‘악양루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긴 역사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는 중국인들이라 그럴까? 그들은 왜, 건물이 ‘그때 그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아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복원하는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겉모습 아닌 마음을 찾아야 

  사실, 악양루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름도 기록도 없는 어쩌면 그저 그런 누각의 하나였다. 하지만 당나라 범중엄이 친구 등자경의 요청으로 ‘악양루기’를 쓴 이후, 이 누각은 천하 묵객들이 꼭 한번 찾아보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범중엄의 ‘악양루기’나 두보, 이백의 ‘등악양루’와 같은 시가 있었기에 악양루는 자신의 진짜 이름뿐 아니라, 분명한 정체를 가진 마치 생명체와 같은 어떤 존재가 되었다. 더이상 겉으로만 보이는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가득 담은 쇠락한 건물이 아닌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어떤 존재가 된 것이다. 남대문을 복원하고, 광화문을 재건한다고 할 때, 우리가 정작 찾아야 하고 복원해야 했던 것은 건물이 아니라 잃어버린 우리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유물들에 담긴 우리의 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우리는 보여지는 것에 더욱더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맛있는 음식, 즐거운 술, 편안한 차를 떠난 나의 문화 탐방은 미식의 경험이었다. 악양루에 오른 나는 두보의 삶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건물로 그 사람을 느끼려 했다. 보이는 건물이 아닌 역사 속에 살았던 그 사람들의 마음이 단지 건물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 것이다.

  악양루에서 자신의 고단한 삶을 확인해야 했던 두보와 달리, 나는 여행 중에 계속 풍요로운 음식을 통해 문화기행의 정체를 체험했다. 내 수준에서 최고의 욕망이 충족된 것이었다. 이 와중에 화려하고 큰 식당의 음식 보다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식당에서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 마음의 양식보다 아무래도 먹고, 마시고, 느끼는데 더 의미를 두는 사람이 나란 존재인가 보다. 하지만 만족스러워하는 일행 속에서, 평소 식탐이 있는 나조차도 더 자제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을 열심히 먹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약간은 나를 속이면서 세속에 영합하는 체험을 한 듯했다.

  치바이스는 "그림을…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고 했지만, 건축물이든 음식이든 어쩌면 그 안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동떨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오리지널을 재현하는 건축물이나 화려하고 큰 식당의 음식들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복원과 시골 식당의 음식에서 내가 얻은 통찰이었다.
 
- 출처 다산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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