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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 보성
  글쓴이 : 임병식 날짜 : 18-10-14 06:53     조회 : 652    
내 고향 보성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내 고향 보성은 산수가 빼어난데다 예맥이 도도히 흐르는 고장이다. 거기다  충의의 전통이 유구하게 전승되어 내려온다. 조선말 보성은  의병활동의 중심지이면서 최후의 보루였다. 의병장으로서 마지막 까지 항전하다  순절한  임창모(林昌模)선생  부자를 비롯하여  의병활동으로 혁혁한 공은 세운  안규홍의병장이  있다. 거기다가 백범선생은 치아포에서  왜군 '쓰치다'를  처단하고  쇠실마을에 숨어들기도 했다.  이것만 보아도 보성이 얼마나 절의의 기운이  넘치며 충의가 충만한  고장인가를 알 수 있다.
 보성고을에는  특별히  군사군(軍)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두 곳 있다. 전투와 출진이  있었던 곳으로 하나는  군머리라고 하는  군두(軍頭)이고,  다른 하나는  예전 이름이 군영구미(軍營龜尾)이던  군학이 그것이다. 흔히 군두를 일러  모르는 사람은 군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줄로 안다. 여기에는유래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최대성장군은 왜적이 읍으로 진출하려면 통과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기러기재 아래서 진을 치고  막다가  전사 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군의 우두머리가 싸우다 전사했다는 뜻으로  그리 불리게 되었다. 한편,  군영구미는  명량대첩을 거둔  출진기지와 관계가 깊다. 이순신 장군은 정유재란시 주로  보성고을에서  군량미와 군사를 모우고,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의 수졸이 궤멸을 당하자 배설이  끌어다 놓은 열 두 척의 전함에다 한 척을 더 보태어  이곳에서 출진했던 것이다.
이 군영구미의  '구미'는  접미사적인 성격이 짙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으로 흔히 남해안에는  할구미, 뻘구미등 구미가 들어간 말이 많은데 주로 포구를 이룬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주로 보성에서 전력을 갖추어  군영구미를 출발,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세계 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공으로  불과 13척의 전선으로 적선 133척을 격파하여 물리쳤던  것이다. 
장군은 그 직전에  모함을 받고  선조임금으로 부터 친국을 당했다. 이때 장군을 구명한 사람은  정탁대감이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서  눈물어린 신구차(伸救劄)를 올렸다. 그 내용은 절절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장군은  1597년(정유년) 4월 1일 어렵사리 풀려나게 되었다. 이후 백의종군 길에  들어섰고  원균의  대패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지리멸렬하여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군사는 흩어지고 군량미는 고갈되었다. 이런 상황을 맞아  장군은 모병과 군량미 확보를 위해  여러 고을을 돌았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그런데  보성에 이르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여기서 희망의 끈을 잡게 되었는데,  바로 조양창에서  수백석의 군량미를 수습하고  피신해 있던 장정 다수 모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성 득량에는 일견 보기에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바위가 서 있다. 바로 칼바위로서 그 밑에는 천혜의 동굴이 있어 수 많은 사람이 몸을 숨길 수 있다. 여기서 은신해 있던 장정들로  군사를 충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다수가 해안에 사는  사람들이라  노를 저을 줄 알아서  노꾼으로 참전해  대승을 거두는데 크게 기여 했다.
바로 직전의 상황이다. 음력 8월 15일,  장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선전관 박천봉이 임금의 유지를 가지고 내려 왔는데 개봉해 보니 휘하의 수군을 이끌고 육지에 나아가 권율장군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장군은 난감했다. 여기서 장군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장계를 올리게 된다. 바로 그것이  널리 알려진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즉,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신(이순신)은 죽지않았습니다"
 결의를 굳힌 장군은  곧바로 군영구미로 향했다. 적이 턱 앞에 까지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도망 온  경상 우수사 배설은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  장군에게 그를 호되게  질책과 함과 동시에  곤장을 치게  된다.
마침내 장군은  일전을 치르기 위해  8월 17일 장도에 올랐다. 보성에 머문 지 9박10일만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하루 차이의 이설이 있다. 하나 그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1914년) 이전만 해도 일대의  회령과 천포가  장흥군에 속했던  것이다. 그러니 옛날과 오늘날에  보는 시각이  차이 날 뿐이다.  아무튼  출전은 차질이 없이 이루어졌다. 보성일원에서 모집한 힘센 장정들이 배를 모는 주력군이  되어 주었다.
보성은 장군 말고도 장군의 부인인 방씨 부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온다. .때는  장군의 장인 방진이 보성군수로 있던 어느 날,  화적패들이 종들과 내통하여 명궁인 군수의 화살을 모두 없애버린 후 관아로 쳐들어 왔다. 이때 따님인 방씨가 꾀를 내어 배를 짤 때 도투마리에 끼우는 뱁댕이를 마루바닥에 힘껏  내던지며 말했다. 
“아버지 여기 화살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화적패들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얼마나 대범하고 기지가 빛나는가.
보성군에서는 옛  열선루가 있던 터에서 초석을 발견하고 복원을 위해  모아 두고 있다. 서둘러서  옛 모습대로 갖춰놓았으면 한다. 장군이  열선루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며 건곤일척의 기회를 삼았던 곳이니  얼마나 의미가 있는 누각인가. 꼭 시그히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보성은 단지 전쟁물자를 대고 병력을 충원한 장소를 넘어서 진정 나라를 지켰던 보루이다 . 새삼  보성이 달리 보배보(寶)에 재성(城)을 쓰는지를  알만하다.(2018)

이방주   18-10-14 22:50
선생님
보성이라는 고장은 요즘 그냥 차의 고장이라는 생각 뿐이었는데
애국와 의기의 고장이라는 생각이 새삼듭니다.
더구나 그런 보배로운 고장이 선생님의 고향이라는 더욱 정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18-10-15 06:15
보성을 일러 흔히 3향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의향 예향 다향을 이르는 것으로, 의향은 나라가 어려울때 분연히 일어난 고장이며 예향은 판소리 서편제와 보성소리로 이어지는 소리의 고장을 이르지요. 그리고 알다시피 녹차의 고장으로서 전국 녹차의  60%이상을 공급합니다.
남해안 일대는 이충무공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데 보성은 특히 정유재란시 크게 힘을 보탠 고장이기도 합니다.
임재문   18-10-16 04:09
임병식 선생님 ! 맨 아랫동서가 보성사람이어서 보성을 여러번 간적이 있습니다. 보성 녹차밭이 참으로 기억에 오래오래 남습니다. 기후도 좋고 해수욕장도 있고 보성은 참 살만한 곳이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보성의 역사를 볼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고향이 해남입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임병식   18-10-16 06:53
보성사람으로 태어나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보성을 알리는 글을 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성에 관한 긇을 틈틈이 쓰고 있습니다. 해남도 땅이 비옥하고 살기 좋은 고장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일만성철용   18-10-16 16:33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보는 듯이 쓰셨네요.임 작가님이 아니면 모르고 지나칠 일들을. 수고 수고하셨습니다.
임병식   18-10-16 17:32
일만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더듬어 보다가 내고향 보성과 관련이 있는 사연이 생각나
군량미와 병사를 모은 자취를 한편 써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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