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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男과 여자女 가르치기
  글쓴이 : 이방주 날짜 : 18-09-27 14:39     조회 : 575    
사내男과 여자女 가르치기

 

여섯 살 손자에게 ‘사내男’字를 가르친다. 손자 규연이는 50자 정도의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다. 할아버지 서재에서 ‘月刊文學’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다.
“할아버지, 여기 달月이 있어요. 어, 글월文도 있네.”
이렇게 신이 난다.
오늘은 사내男자를 가르치는 날이다. 아기들이 배우는 교재에는 ‘남자男’으로 되어 있다. 아기들은 이미 사내라는 고유어보다 남자라는 한자어에 익숙해 있는 현실이 할아비는 부끄럽다. ‘사내男’이라 가르치고 싶은데 한글을 아는 유식한 유아에게 어른의 기교는 통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사내男이 아니라 남자男이예요.”
“그래 그러네. 남자를 사내라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 남자를 왜 사내라고 해요?”
“예전에는 남자를 조금 겸손하게 사내라고 불렀고, 멋지게 부를 때는 사나이라고 했지.”
“와 그럼 나는 사나이 할래.”
“그래 우리 규연이는 멋진 사나이지. 남자는 한자말에서 온 말이야. 사내라는 뜻도 있고 사나이라는 뜻도 있어.”
“할아버지, 그런데 왜 남자男에는 밭田자가 있어요? 어 그 아래에는 힘力자도 있네.”
“오 그러네. 우리 규연이 똑똑하네. 어떻게 그걸 알아냈지?”
“할아버지, 지난번에 밭田자하고 힘力자를 다 배웠잖아요.”
“그래 맞아. 배웠어도 대번에 알아보는 규연이가 할아버지는 기특해 보여서 하는 말이야.”
“그런데 할아버지 왜 밭田자에 힘力자를 합체하면 남자男자가 되냐고요.”
“합체? 규연아 합체가 뭐야?”
“아니 변신 로봇 합체하는 거 있잖아요.”
“오 그래. 그건 말이야 남자는 밭에 나가서 힘들여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왜 밭에 나가서 일을 해요?”
“남자는 밭에 나가서 일을 해야 감자도 나오고 고구마도 나오지. 그래야 가족들을 배고프지 않게 하지.”
“아니 우리는 밥도 먹고 살잖아요. 쌀은 논에서 나잖아요. 외할아버지는 논에서 벼를 거두는 일을 하는데요.”
“맞아, 그런데 논도 한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발이었거든.”
“할아버지, 그런데요. 외할머니는 여자인데도 밭에서 일하시는데요.”
“그건 외할아버지가 회사에 나가시니까 일을 많이 못하시니까 대신 하시는 거지.”
“그럼 아빠는 남자인데 왜 밭에서 일을 안 하고 회사에 가셔요?”
“아빠가 일하는 밭은 회사야.”
“아빠 회사에 밭이 있어요?”
“아니 옛날 사람들은 회사가 없어서 밭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일하는 곳을 모두 밭으로 생각했어. 회사에 나가면 회사에서 월급을 주니까 그 돈으로 규연이 과자도 사주고 옷도 사주지. 회사에 가면 쌀 대신 돈을 주니까.”
“그럼 엄마는 여자인데 왜 학교에 가셔요?”
“누나들 공부 가르치러 가지.”
“어 엄마는 여자니까 일 안해도 되는데.”
“그래 맞아 요즘은 여자들도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 돼. 엄마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선생님이 되어서 많이 아는 것을 누나들에게 가르쳐 주는 거야.”
“할아버지는 왜 일 안 해요?”
“할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선생님으로 형아들을 가르치다가 규연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가 되어서 일을 안 해도 되게 되었어. 그 대신 봉사활동을 하며 사는 거야.”
“규연아 여기 밭田자를 잘 봐라. 이 글자 처음 배울 때 규연이가 뭐라고 했지?”
“뭐라고 해요?”
“무슨 글자가 합체한 거라고 했잖아.”
“아 그거 입口자 안에 열十자가 들어 있잖아요.”
“입口자는 사람의 입이야. 입같이 생겼지? 그러니까 남자는 열 사람이 먹을 것을 생산해낼 만큼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와 그럼 저도 그래야 돼요.”
“그럼 그래야지. 꼭 가족만이 아니라도 세상 사람들 열 명이 살아가는데 도움을 줘야한다는 말이야.”
“나 그거 싫은데요. 남자만 일을 하고 여자는 안 해도 돼요?”
“여자들은 그보다 더 소중한 일을 많이 하지.”
“무슨 일을 해요?”
“여자는 애기를 낳잖아. 엄마는 규연이를 낳고, 네 동생 연재도 낳고”
“할아버지는 누가 낳았어요?”
“할아버지 엄마가 낳았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규연이 증조할머니가 낳았지.”
“아빠는요?”
“아빠는 할머니가 낳았지. 엄마는 외할머니가 낳았고”
“엄마는 나를 어떻게 낳았어요?”
“아 그건 더 크면 할아버지가 말해줄게.”
“저도 알아요. 책에서 읽었는데 아빠랑 엄마랑 사랑해서 아빠가 엄마 뱃속에 아기씨를 넣어줘서 점점 자라서 제가 됐대요.”
“그래 그래서 아빠는 남자男이고 엄마는 여자女라는 거야.”
“…….”
“아빠는 밭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잖아.”
“그럼 엄마가 밭이야?”
“그렇지”
“할아버지 그런데요, 왜 여자女자는 이런 모양이에요?”
“그건 엄마들이 애기 낳을 때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해.”
“왜 아기를 이렇게 하고 낳을까?”
“그건 더 크면 말해 줄게.”
“아이 왜 크면 말해준다고 해요? 지금 궁금한데.”
“규연이가 조금 더 커야 알 수 있어.”
“예 알았어요.”
“남자는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 여자는 아기를 낳는 훌륭한 일을 하는사람이야. 하는 일이 차이가 있을 뿐 둘 다 소중해. 더구나 요즘에는 여자들이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 나가서 누나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니까 더 소중하지?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 때 여자女자를 남자男자보다 먼저 만들었다고 해. 그만큼 여자가 소중하니 엄마나 할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해.”
“알았어요.”
“남자男자를 써보자.”


나는 손자에게 한자를 가르치다가 곁길로 가버렸다. 그런데도 착한 규연이는 사내男자를 밭田자 아래 힘力자를 필순에 맞추어 또박또박 써 나갔다. 이 녀석이 어느새 사내가 되어가는 건가 바라보는 할아비는 입이 귀에 걸린다.

임재문   18-09-28 02:15
이방주 선생님 ! 손주 재롱이 부럽습니다. 저도 손녀가 초등학교 5학년 손자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이번 추석에도 한복 곱게 차려입고 왔습니다. 그런 것 보는 것이 인생의 참 맛이 아닌가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손자 손녀에게 사내와 여자의 의미를 가르쳐 보고 싶어 집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이방주   18-09-28 19:18
임재문 선생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자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인간관계를 슬슬 건드리면서 일러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병식   18-09-28 04:29
손주녀석이 아주 영특합니다.
여섯살짜리가 애기가 생가는 이치를 알고 있네요. 놀랍습니다.
한자에는 철학이 들어 있는데, 이선생님의 가르침을 읽으니
이런 손자나 손녀에게 깨우 침을 주는데는 한자만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손녀를 늦게봐서 이제 세살이라 보내주는 동영상으로 재롱부리는걸 보고 흐뭇해 합니다.
     
이방주   18-09-28 19:22
임병식 선생님
어찌 손주를 늦게 보셔씁니까?
한자에는 모든 삶의 철학이 들어 있고 요즘 아이들은 다 영특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앞서 갑니다.
애기 생기는 이치도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우고
아기들이 읽는 책에 그림까지 그려서 아기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한글은 언제 배웠는지 저희 유치원 아이들이 다 알고 저는 뒤떨어졌다고 걱정도 하는 걸 보내 요즘 교육이 두렵기도 합니다.
대화만으로 글이 될 수 있을까 한번 써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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