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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3-11-30 15:22
조회 : 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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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맛 7
-성황당 떡 신령-
정월 대보름 전날은 집집마다 고사를 지냈다. 친구와 나는 그때마다 떡 신령이 되었다. 그날도 어머니가 일찍 지어 주신 오곡밥을 먹고, 고사떡이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대문을 빠져 나와 친구를 만났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소쿠리를 하나씩 머리에 쓰고 성황당으로 향했다. 집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작은 고개를 두 개나 넘어서 후미진 자드락길로 세 번째 고개를 찾아 가야 한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날망에서 부엉이가 운다. 으스스 추위가 몰려온다. 부엉이 우는 곳에는 큰짐승도 따라다닌다는데 낮에는 포근하더니 봄추위가 아직 남았는가?
친구가 그냥 돌아가자고 내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고개를 둘이나 넘었는데 어떻게 포기하고 빈손으로 갈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친구의 잡은 손을 내치고 빠른 걸음으로 어둠을 헤쳤다. 해토머리에 풀렸던 길이 질척거린다.
성황당에 도착했다. 돌 더미 뒤에 향나무가 있다. 향나무 뒤에 숨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묵은 거미줄이 얼굴에 쩍 묻어난다. 향나무 바늘잎이 얼굴이며 목덜미를 마구 찌른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 숨을 죽이고 아주 조용히 숨어 있기만 하면 횡재를 한다. 성황신에게 올리는 떡을 훔쳐 먹는 짜릿한 재미를 우리 말고 누가 또 알까?
한식경은 기다렸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호롱불을 앞세운 사람들이 성황당 앞에 나타났다. 이럴 때는 기침 소리도 방귀소리도 내면 안 된다. 성황당 앞에 짚을 깔고 기름접시에 불을 밝혀 놓는다. 사방이 환하다. 그 작은 불이 세상을 이렇게 훤하게 비칠 수 있다니 놀랄 일이다. 깔아 놓은 깨끗한 짚 위에 순아네 머슴이 지고 온 시루를 내려놓는다. 순아 할머니는 시루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빌기 시작한다.
"성황님 그저 올해는 우리 마을엘랑 역병도 없이 가뭄도 없이 홍수도 없이 그저 무탈하게만 하여 줍쇼. 우리 순아 애비 농사도 잘되고 하는 일 만사형통하게 하여 줍쇼. 아이들 공부도 잘하고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줍쇼. 성황님 비나이다."
조급증이 난 우리는 순아 할머니가 떡을 시루 째 쏟아 놓고 돌아가자 튀듯이 나갔다. 가져온 소쿠리에 시루떡을 담았다. 떡 위에 있는 몇 푼 지전은 순아 할머니 정성을 생각해서 그 자리에 두었다. 떡은 따끈따끈하다.
훔쳐온 떡은 감추어 두고 몰래 몰래 먹었다. 성황당 떡을 훔쳐 먹으면 재수 없다는 할머니 말씀에 조금 켕기기는 했지만, 숨어서 떡을 먹으며 키들거릴 때마다 그날의 긴장감이 살아나 더 맛있었다. 가끔 걱정을 했지만 한해를 지나는 동안 순아네도 우리도 아무 탈도 없었다.
열다섯 살 개구쟁이 시절, 성황당 떡 신령이 되었던 기막힌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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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11-30 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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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선생님은 어려서 토속적인 성황당 체험을 잘 하셨군요!
요즈음은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보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짜릿하고 호기심나는 옛 추억. 아름다운 옛날 이야기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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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12-01 1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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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그 시절은 그렇게 훔쳐 먹어도 크게 야단 맞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속으로는 아이들을 성황당주만큼 여겼나 봅니다. 어린날 개구쟁이 추억이 아련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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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12-01 2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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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그 시절 배고프고 어렵기만 하던 그 시절이 왜 요즘들어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워지는지요. 오늘은 아내에게 어릴적 라디오 들으려 이웃집에 갔던 이야기를 하고 웃었습니다. 차마 라디오 핑게치고 여자친구 만나러 갔다는 이야기는 입밖에 내놓지 못했네요. 저도 어릴적 떡, 특히나 찰 시루떡을 좋아했지요. 그래도 소화불량증에 시달리던 터라 먹으면 배탈이 나곤 했지요 그래도 참을 수 없는 미각때문에 혼나고도 또먹곤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아니 산신령 도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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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3-12-02 1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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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그시절 웬만한 서리는 어른들이 다 용서해 주셨잖아요. 지금은 어림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성황당 고사떡을 훔치는 일은 아무래도 어른들의 꾸중을 들을만 한 일이었습니다. 장난치고는 좀 심했지만 그 추억이 지금은 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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