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장 앞을 지나다가 봄맞이로 선보이는 꽃들이 무얼까 궁금했다. 화원에 들어서자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함초롬히 아직 터뜨리지 않은 싱그러운 꽃 몽우리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니 추운 겨울에 동면하는 꽃 뿌리에서 언제 이렇게 화려한 의상들을 입었단 말인가.
꽃시장 내에는 향기가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왼지 공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작 어느 꽃이 봄맞이로 선보이는 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봄엔 개나리 여름에는 장미 가을엔 국화 겨울엔 매화, 이렇게 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들어갔었나 보다. 이런 어리석음을 비웃듯 시장 안에는 여름 장미와 가을 국화가 어울려 있었고 품종은 물론 어느 나라 꽃인지도 모르는 온갖 꽃들로 풍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계절도 없고 국경도 없는 글로벌 화훼시장이 되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인공적으로 만든 造花도 보였다. 손으로 만져 보고서야 비로소 생화가 아님을 느낄 만큼 어쩌면 이렇게 감쪽같이 정교하게 만들어질 수가 있을까. 감탄을 넘어 인간의 능력이 새삼 경이로웠다. 지금은 생화조차도 인간의 다양한 취향에 맞도록 그 모양이나 향기까지도 맞춤으로 내어 놓는 세상이다.
한쪽에 어린가지를 철사로 비틀어 매어 난장이처럼 뭉뚝하게 만들어 화분에 받쳐놓은 분재가 보인다. 그윽이 감상하는 눈빛들이 섬뜩하다. 얼마나 잔인한가. 인간의 지능이 바꿔놓은 것이 어찌 꽃 뿐이겠는가마는 이게 글로벌 시대의 이로운 산물이라는 건가. 꽃이 핀 자리에 자연의 그림자가 없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꽃 한 다발을 사들고 그 향기에 취해 보려던 마음이 싹 가신다.
아무리 향기롭더라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향기가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시들해진다. 차라리 가까운 들길에 나가 잡초나 눈밭 속에서 솟아 나온 뿌리라도 몇개 주워 병에다 꽂고 봄맞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빈손으로 꽃시장을 돌아 나왔다.
새눈이 트는 듯하여
창문을 열어보니
겨울은 아직 나 여기 있소.
문득 포근한 기운이
살랑거리며 한번은 뺨에
한번은 손바닥을 간질거린다.
가시 넝쿨이 막아선들
봄은 어느새 겨울의 틈새로
저 혼자 살금살금 오고 있었다.
이렇게 봄바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그대는 세월인 것을.
(2013. 3. 정진철)
